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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 김부와 태조왕건 ⑤ (경순왕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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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09-02 19:23 조회3,0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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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 김부와 태조왕건 ⑤ (경순왕의 자녀)







◈ 윤만 종친께서 올리신 자료에는



첫째 왕비는 죽방부인 죽주박씨로 슬하에 마의태자

그리고 경주김씨 관조 영분공을 바롯한 3남1녀가 계셨고



후비는 태조 왕건의 따님이시고 충주태사 유긍달 외손녀이신

낙랑공주 개성왕씨로 슬하에 5남2녀를 두셨으며,



그리고 또 한분 육비께서는 1남을 두셨습니다.







◈ [김씨의 뿌리] 책자에는



昭元王后 박씨 소생으로

1남 김일

2남 김굉(범공)

3남 김명종



왕씨(낙랑공주) 소생으로

4남 김은열

5남 김석

6남 김건

7남 김선

8남 김추



순흥안씨 소생으로

9남 김덕지

라고 정리되어 있고.



경순왕에게는 아홉 아들 이외에 세딸이 있었는데, 첫째딸은 제5대 경종의 왕비 獻肅夫人이 되었고, 둘째딸은 長水人 黃瓊(황경)의 부인이 되었으며, 셋째딸은 신라 시중 李今書의 부인이 되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경순왕의 딸에 대한 내용을 종합해 보변



월악산 국립공원내 미륵사지와 덕주사, 덕주산성, 덕주골 등지에는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과 마의태자와 관련된 전설이 산재해 있고



문화유적총람을 보면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 산 25-2에 있는 원주황산사지(原州黃山寺址)의 내용중에 전설에 의하면 경순왕의 공주가 이 절에 와서 부왕의 존상을 산정 석벽에 조각케 하였고, 그후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존상을 보고 환경한 후부터 산명을 대왕산(大王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귀한 분이 왔다 하여 동리 이름을 귀래(貴來)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 기록에는 경순왕의 딸 중에 덕주공주 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덕주공주가 경순왕의 딸이 맞다면 윤만 종친의 의견대로 첫째부인 죽방부인의 3남 1녀중 1녀일 것입니다. 덕주공주는 신라가 망하기 전의 신라공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순왕에게는 딸이 셋이 있었다고 하는데 덕주공주가 첫째부인 죽방부인 소생이라면 딸 셋 (경종왕비, 황경, 이금서)은 경정왕비는 낙랑공주 소생이고 낙랑공주는 2녀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딸 하나 (이금서)는 어느 소생인지 불분명해지게 되고, 전체적으로 경순왕의 딸은 넷(덕주공주, 경종왕비, 황경, 이금서)이 되게 됩니다.







★ 또한 관련기록에는 경순왕의 셋째 부인은 평주호족 박수경의 둘째딸(성무부인 박씨)과 왕건과의 사이에 낳은 왕씨로 되어 있고, 육비나 순흥안씨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리고 문화유적총람에 보면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왕피리에 있는 왕피성지(王避城址) 내용중에 신라 말에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태자는 부왕에게 그 불가함을 역설하였으나 불가항력으로 부득이 천년사직이 넘어가게 되자 마의(麻衣)를 입고 모후(母后) 송씨와 함께 이 성에 과 있다가 모후는 이곳에서 작고하고 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한다.

당시 모후를 따라온 송씨들의 후손들이 지금도 울진군내에 살고 있다. 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 경순왕의 아홉 아들이 어떻게 퍼져 나갔는가를 [김씨의뿌리] 책자에 나와있는데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1남 김일

첫째아들 金鎰(김일)은 昭元王后 박씨 소생으로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바치자 이를 통분히 여겨 금강산에 들어가서 움막을 짓고 산 마의태자를 가리키는데, 기록에 보면 그에게는 입산 전에 낳은 金較(김교)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마의태자 김일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부령(부안)김씨, 부여김씨, 통천김씨



마의태자와 관련해서는 KBS1TV 역사스페셜 홈페이지(http://www.kbs.co.kr/history)중 [2000.4.15 신라최후의 미스테리, 마의태자]를 보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고, 인제군청홈페이지 (http://www.inje.kangwon.kr/)를 보면

김부대왕각 동제

김부리와 군량리(軍糧里)

김부리의 옥새바위

마의태자 유적지비

김부 대왕각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2남 김굉



장남 김일과 함께 소원왕후 박씨 소생인 차남 金 (김굉)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들어가자 자기도 머리를 깍고 화엄종에 들어가 중이 되었는데, 법명은 梵空(범공)이었으며 나중에 해인사에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이 범공이란 중이 마의태자의 막내아들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己未譜 같은 족보에 보면 범공은 둘째아들 김굉이었던 것으로 되어 있고, 사가에 전하는 족보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는 이 설을 택했다.



김굉은 중이 되기 전에 낳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장남의 이름은 金雲發(김운발)이고, 차남의 이름은 金雨發(김우발)이었다.



김굉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교하김씨, 나주김씨, 안로김씨, 해주김씨









⊙ 3남 김명종



3남 金鳴鍾(김명종) 또한 소원왕후 박씨 소생이다. 각간을 역임했으며 시호은 永芬公(영분공)인데 뒤에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경주김씨의 시조는 3남 김명종과 4남 김은열 두 명인데, 이처럼 경주김씨의 시조를 두명으로 한 것은 김명종이 소원왕후 박씨 소생인 데 반해, 김은열은 왕건의 장녀인 낙랑공주 소생이었기 때문이다.



3남 김명종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강화김씨, 경주김씨, 계림김씨, 낙안김씨, 배천김씨, 부평김씨, 상원김씨, 영천김씨, 우봉김씨, 월성김씨?, 임하김씨, 창원김씨, 충주김씨, 평산김씨, 해남김씨, 현품김씨, 화순김씨, 황주김씨, 희천김씨?









⊙ 4남 김은열



4남 金殷說(김은열)은 왕씨 소생이다. 왕씨란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를 가리킨다. 大安君에 봉해졌으며, 김명종과 함께 경주김씨의 시조로서 가장 많은 후손을 남긴 사람이다.



김은열에게는 김태화, 김숙승, 김염(→김품언, 김심언) 세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서 나오는 손자들이 또 분파를 해나갔기 때문에 많은 성씨가 나오게 된다.



첫째아들 김태화는 김은열의 경주김씨를 이어받으나, 둘째아들 김숙승은 안동김씨(구안동)의 시조가 되며, 셋째아들 김염은 김해김씨(후김)의 시조가 되었다.



김염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아들 김품언은 수원김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아들 김심언은 영광김씨의 시조가 괴었다.



그런데 안동김씨에서 대구김씨, 사천김씨가 갈라져 나가게 되며, 수원김씨에서는 용담김씨, 용성김씨, 인동김씨, 한남김씨가 갈라져 나가게 된다.



김은열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를 가나다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 많아 생략>



김은열 모지명은 경주김씨 홈페이지 (http://kyongkim.or.kr/) 에서 볼 수 있습니다.









⊙ 5남 김석



5남 金錫(김석)은 왕씨 소생이다. 김석은 金重錫이라고도 불리며 의성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의성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석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개성김씨, 고령김씨, 광주김씨, 설성김씨, 의성김씨, 적성김씨









⊙ 6남 김건



6남 金鍵(김건) 역시 왕씨 소생이다. 강릉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강릉김씨에는 두 파가 있는데, 하나는 무열왕의 후손인 김주원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고, 다른 하나는 김건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다. 이 두파를 구분하기 위해 김건의 강릉김씨를 후강릉김씨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김건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강릉(후)김씨, 강서김씨, 청주김씨, 홍주김씨









⊙ 7남 김선



7남 金繕(김선) 역시 왕씨 소생이다. 언양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언양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선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담양김씨, 언양김씨, 예천김씨









⊙ 8남 김추



8남 金錘(김추) 역시 왕씨 소생이다. 일선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선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일선은 선산의 옛 이름이다.



김추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고 같다.

경산김씨, 남원김씨, 삼척김씨, 선산(김추계)김씨, 영월김씨, 원주김씨, 진주(신라)김씨, 춘양김씨, 희천김씨









⊙ 9남 김덕지



9남 金德摯(김덕지)는 순흥안씨 소생이다. 학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뒤에 울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학성은 울산의 옛이름이다.



김덕지 계열은 울산김씨 하나밖에 없다.









⊙ 기타 경순왕의 후손들



경순왕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문헌이 전해지지 않아 경순왕의 아홉 아들 중에서 구체적으로 누구의 후손인지가 분명치 않은 김씨는 다음과 같다.

고양, 금화, 남포, 동래, 봉산, 수주, 안강, 영암, 영주, 장연, 진잠, 청산, 파평, 함양









▣ 경주김씨와 관련된 내용중 아래 내용을 참고할만 합니다.



13. 경주김씨



신라김씨의 대종인 경주김씨는 시조가 두명이다. 하나는 신라 경순왕의 셋째아들인 김명종이고, 다른 하나는 넷째아들인 김은열이다. 이 두 사람을 시조로 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첫째아들인 김일은 세상을 버리고 금강산에 들어가 버렸고, 둘째아들인 김굉은 중이 되었다. 따라서 셋째아들인 김명종이 경주김씨의 시조가 된 것이다.



첫째아들과 둘째아들과 셋째아들은 모두 소원왕후 박씨의 소생이다. 그런데 넷째아들부터는 왕건의 맏딸이 낳았으므로, 이 왕씨 부인의 소생 가운데서도 신라김씨의 종성을 이어받는게 좋겠다 하여 넷째인 김은열이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명종 계열을 영분공파라 부르고, 김은열 계열을 대안군파라고 부른다.



경주김씨에는 김명종, 김은열 계열 이외에 세계를 알 수 없는 분파가 또하나 있는데, 그것이 장군 金順雄을 시조로 하는 장군공파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한 후 김명종은 경주군에 봉해졌다고 하며, 김은열은 공부시랑을 거쳐 대안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김순웅의 계대는 분명치 않으나 장군을 지냈다고 한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는 왕건의 맏딸인 낙랑공주를 부인으로 얻었고, 김부 자신도 조카딸을 왕건의 후비(신성왕후)로 들여보냈다. 또 자신의 친딸을 고려 5대 경종에게 시집보냈다. (헌숙왕후). 경종은 즉위하자 장인인 김부에게 상부, 도성령의 호를 더하고 식읍을 1만호 늘린다. 이처럼 신라의 왕족은 고려조에 들어와서도 큰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김부의 조카딸인 신성왕후는 고려 8대 현종의 할머니가 된다. 이후 고려 왕실이 현종의 후손에서 이어지게 되므로 고려왕실은 신라왕실의 외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려의 지배세력으로 자리잡은 경주김씨는 고려 전기에는 최고의 문중으로 행세했으며, 고려 인종조의 김부식 대에 이르로 최고의 번영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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