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金時敏 장군 02 (유년시절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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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11-30 20:42 조회1,657회 댓글0건본문
충무공 金時敏 장군 02 (유년시절의 일화)
김시민 장군의 인간상
김준기 (아우내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2. 유년 시절의 일화
김시민은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어서 방안에서 글공부에 전년하는 것보다 밖에서 뛰어 놀기를 좋아하였다. 그의 성격은 영특하고 대담하였으며 영도력이 출중하였다. 그 시대에는 선비의 자손들에게는 글공부만을 철저히 강조하는 때였다.
그러나 김시민은 시대의 사조와는 관계없이 후일 위대한 무인이 될 강인한 성품이 이때부터 형성되어 갔다. 그의 8,9세 되던 때의 일화를 소개하여 그의 용기와 지략의 한 면을 엿보고자 한다.
(1)전쟁놀이
김시민이 8세때의 일이다. 이웃 마을의 아이들과 부대를 짜서 길가에서 진을 치고 전쟁놀이를 하고 있을 때 마침 천안 고을의 원님이 지나가게 되었다. 이를 본 김시민은 한 아이를 시켜서 "여기는 진중이니 못간다" 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하였다. 원님이 그 자리에서 내려서 김시민의 손을 잡으며 이마을 쓰다듬어 주고 김충갑에게 데리고 가서 크게 칭찬하면서 하는 말이 "진을 치고서 놀이를 하는 것은 의지와 기개가 보통이 아니라, 官長을 말에서 내리게 함은 그 기세가 가히 두렵고 모습이 雄傑함이 출중하니 前程이 만리라" 하였다.
과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정언신(相國)이 4명의 장수를 천거하면서 이순신, 김시민, 신립, 이억기는 명장 중에서도 上駟(상사)라 하였다. 또 조헌은 이순신, 김시민, 이억기의 세 장수를 천거하면서 외부로 보내지 말고 있다가 때를 따라 완급을 보아서 쓰도록 하라 하였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 실기 p141)
(2)射蛇岩記
김시민의 遺基는 栢田에 있다. 앞에는 龜石과 雙槐樹가 있는데 괴수의 앞에는 큰 내가 있어서 潭水를 이루었고 담수가에는 큰 바위가 있다. 바위 안에는 큰 뱀의 굴이 있었는데 민간이나 가축이 물에 가까이 하면 뱀이 꼬리로 쳐서 잡아 먹었다.
시민이 나이 아홉 살에 마을 아이들과 더불어 弓矢를 끼고 가서 괴수에 의지하고 마을 아이들로 하여금 바위에 올라가게 하였다. 그들의 그림자를 물에 비추게 하니 큰 뱀이 물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마을 아이들을 향하였다.
그때에 시민이 재빠르게 3,4개의 화살을 연하여 쏘아 뱀을 죽였다. 10여일이나 뱀의 붉은 핏물이 흘렀으며 바위와 괴수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어른들도 뱀이 무서워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린 김시민은 흔히 이무기라고 하는 큰 뱀을 퇴치하여 마을의 근심을 해소하였다고 하니 그 담력과 용기가 출중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일화이다. (국역 대록지 p81)
위의 일화에서 보여준 智謀와 용기가 후일 김시민 장군이 여러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기골이 장대하고 건장하였다. 깨우침이 어질고 의지와 도량이 크고 높았다. 말을 큰 소리로 하기를 좋아하였으며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여 불굴의 장군으로서의 기질이 다져져 갔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김시민 장군의 인간상
김준기 (아우내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2. 유년 시절의 일화
김시민은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어서 방안에서 글공부에 전년하는 것보다 밖에서 뛰어 놀기를 좋아하였다. 그의 성격은 영특하고 대담하였으며 영도력이 출중하였다. 그 시대에는 선비의 자손들에게는 글공부만을 철저히 강조하는 때였다.
그러나 김시민은 시대의 사조와는 관계없이 후일 위대한 무인이 될 강인한 성품이 이때부터 형성되어 갔다. 그의 8,9세 되던 때의 일화를 소개하여 그의 용기와 지략의 한 면을 엿보고자 한다.
(1)전쟁놀이
김시민이 8세때의 일이다. 이웃 마을의 아이들과 부대를 짜서 길가에서 진을 치고 전쟁놀이를 하고 있을 때 마침 천안 고을의 원님이 지나가게 되었다. 이를 본 김시민은 한 아이를 시켜서 "여기는 진중이니 못간다" 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하였다. 원님이 그 자리에서 내려서 김시민의 손을 잡으며 이마을 쓰다듬어 주고 김충갑에게 데리고 가서 크게 칭찬하면서 하는 말이 "진을 치고서 놀이를 하는 것은 의지와 기개가 보통이 아니라, 官長을 말에서 내리게 함은 그 기세가 가히 두렵고 모습이 雄傑함이 출중하니 前程이 만리라" 하였다.
과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정언신(相國)이 4명의 장수를 천거하면서 이순신, 김시민, 신립, 이억기는 명장 중에서도 上駟(상사)라 하였다. 또 조헌은 이순신, 김시민, 이억기의 세 장수를 천거하면서 외부로 보내지 말고 있다가 때를 따라 완급을 보아서 쓰도록 하라 하였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 실기 p141)
(2)射蛇岩記
김시민의 遺基는 栢田에 있다. 앞에는 龜石과 雙槐樹가 있는데 괴수의 앞에는 큰 내가 있어서 潭水를 이루었고 담수가에는 큰 바위가 있다. 바위 안에는 큰 뱀의 굴이 있었는데 민간이나 가축이 물에 가까이 하면 뱀이 꼬리로 쳐서 잡아 먹었다.
시민이 나이 아홉 살에 마을 아이들과 더불어 弓矢를 끼고 가서 괴수에 의지하고 마을 아이들로 하여금 바위에 올라가게 하였다. 그들의 그림자를 물에 비추게 하니 큰 뱀이 물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마을 아이들을 향하였다.
그때에 시민이 재빠르게 3,4개의 화살을 연하여 쏘아 뱀을 죽였다. 10여일이나 뱀의 붉은 핏물이 흘렀으며 바위와 괴수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어른들도 뱀이 무서워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린 김시민은 흔히 이무기라고 하는 큰 뱀을 퇴치하여 마을의 근심을 해소하였다고 하니 그 담력과 용기가 출중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일화이다. (국역 대록지 p81)
위의 일화에서 보여준 智謀와 용기가 후일 김시민 장군이 여러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기골이 장대하고 건장하였다. 깨우침이 어질고 의지와 도량이 크고 높았다. 말을 큰 소리로 하기를 좋아하였으며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여 불굴의 장군으로서의 기질이 다져져 갔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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