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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 수리사업의 대가 김뉴(金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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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12-07 03:55 조회1,6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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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 수리사업의 대가 김뉴(金紐)





재주가 있고 학문을 좋아하여 글을 잘 지었고, 행서와 초서 등 글씨에 능하였으며, 거문고도 잘 하여 ‘3절(三絶)’이라 불리었고 그림 또한 잘 그렸다. 는 (안정공파) 김뉴(金紐) 선조님의 행적을 보니,



황해 평안도의 땅을 개간하고, 도성 측량과 지도 작성, 전라도 순천지방에 석보를 쌓고, 함경도 회령과 마도달량어란 사이에 보를 설치하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충렬공(휘방경) 할아버지와 김자점 선조와 더불어 간척 수리사업의 대가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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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뉴(金紐)

1420(세종 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고(子固), 호는 금헌(琴軒)·취헌(翠軒)·쌍계재(雙溪齋)·관후암(觀後庵) 또는 상락거사(上洛居士). 아버지는 중엄(仲淹)이고, 어머니는 조준(趙浚)의 손녀이며 대림(大臨)의 딸이다.



1464년(세조 10) 녹사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황해·평안도의 땅을 개간한 공으로 벼슬에 나가 성균학유가 되었다. 곧 사복직장으로 옮겼으며, 이듬해 호조좌랑으로 《경국대전》 편찬작업을 위해 이전(吏典)을 수교하였고, 또 경차관으로 전라도에 파견되었다.



1466년 발영시·등준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안효례(安孝禮)·유희익(兪希益) 등과 함께 도성(都城)을 측량하고 지도를 작성하였다. 또한, 예문관직제학으로 《세조실록》·《예종실록》 등을 편찬하는 데 기여함이 컸다. 1470년(성종 1) 완성단계에 있는 《경국대전》을 다시 수교하였다.



1472년 동부승지를 거쳐, 이듬해 참찬관으로 저화법(楮貨法)사용을 강조하는 방안을 주장하였다. 이어 공조참판·충청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478년에는 대사헌으로 군비확충을 위해 전라도 순천지방에 석보(石堡)를 쌓고 군인을 늘리며, 함경도 회령과 마도달량어란(馬글達梁於蘭)사이에 보를 설치하고 식량을 저축할 것을 제의하여 실천하게 하였다.



1479년 겸성균관동지사가 되고, 1481년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1484년 행사직이 되고, 이듬해 시를 지어 바쳐 왕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1490년 다시 이조참판이 되었다.



재주가 있고 학문을 좋아하여 글을 잘 지었고, 행서와 초서 등 글씨에 능하였으며, 거문고도 잘 하여 ‘3절(三絶)’이라 불리었고 그림 또한 잘 그렸다. 글씨로는 해동명적(海東名跡)·초로관주(草露貫珠) 등에 모간(模刊)한 것이 있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睿宗實錄, 成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용12齋叢話,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朴定子〉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발용 -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피는 속일수 없는 것이라고 하죠.

▣ 태영/문 - 휘 뉴 할아버지께서 황해도 어느 곳에 외직으로 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 김윤만 - 전라도 순천지방에 석보(石堡)를 쌓았다함은 장기간에 걸쳐 반영구적인 보를 만들고자 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 규모가 상당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가계를 살펴보니 안정공(구덕)--김오문--김중엄--김뉴 이렇군요, 안정공의 증손이 되십니다.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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