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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최문본(崔文本)과 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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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12-12 21:10 조회1,8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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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본(崔文本)과 최온





● 최온(崔溫){2} ----- 최문본(崔文本)의 父

?∼1268(원종 9). 고려의 문신. 본관은 동주(東州). 평장사(平章事) ★유청(惟淸)의 증손으로, 좌복야(左僕射) ★종재(宗梓)의 아들이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 1258년(고종 45) 추밀원사로 당시의 집정자인 최의(崔#의26)를 제거하려는 ★김준(金俊) 등의 모의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아들인 견룡행수(牽龍行首) ★문본(文本)이 중랑장(中郎將) ★이주(李柱) 등과 함께 이 모의를 ★최의에게 밀고하였다. 최의가 제거된 뒤에 앞서의 밀고가 발각되어 김준과 유경(柳璥)이 ★문본을 죽이려 하였으나 왕이 이를 반대하고 귀양보냈다. 이에 대하여 원망하자 김준 등이 탄핵하여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그뒤 장군 ★이주인(李柱仁)의 청으로 풀려나와 1260년 추밀원사에 복직되고 수사공좌복야(守司空左僕射)를 역임하였다.

1262년 판공부사(判工部事), 이듬해 수태부 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郎平章事)에 올랐다.

시호는 문신(文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朴性鳳〉









● 최문본(崔文本)

1233(고종 20)∼1276(충렬왕 2). 고려의 문관. 본관은 동주(東州). 수태부 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郎平章事) ★온(溫)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이 되고, 견룡행수(牽龍行首)에 임명되었다.

1258년(고종 45) ★김준(金俊) 등이 권신 최의(崔#의26)를 제거할 때 그 계획을 ★최의에게 누설하여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아버지 ★온이 ★김준과 함께 거사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면하고 섬으로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 친종장군(親從將軍)을 역임하였고, 1271년(원종 12) 관노(官奴)인 ★숭겸(崇謙)과 ★공덕(功德) 등이 무리를 모아 다루가치(達魯花赤)와 국내의 관직에 있는 원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진도(珍島)로 도망가려고 하자 이들을 잡아 국문하였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승선이 되어 응방(鷹坊)의 횡포를 간하였으며, 1276년 밀직부사 판도판서(密直副使版圖判書)에 올랐으나, 이해에 죽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대신의 체모가 있었으므로 몽고의 사신이 “너의 나라에 이같은 자가 몇 사람이나 있느냐?”라고 하였다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孫弘烈〉









● ??? 최온(崔,日+血) ----- ??? 최문본(崔文本)의 子





▣ 솔내영환 - 제 생각에는 최온은 최문본의 아버지임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漢字가 틀리는데 고려시대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문본의 생몰년으로 보아 충렬공의 매제일듯 싶습니다. 영가군부인이 남편이 최문본, 시아버니는 최온. 시어머니 전씨. 이렇게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솔내영환 - 金敏成 / 金孝印 / 宋氏夫人 / 宋耆 / 崔文本 / 上洛公金氏 / 朴氏夫人 / 崔  / 田氏夫人 순서별로 보면 친정할아버지(민성)-친정아버지(효인-친정어머니(송씨)-외할아버지(송기)-친정오라버니(김방경)-시아버지(최온)-시어머니(전씨)

▣ 솔내영환 - 외할아버니(송기)와 친정오라버니 사이에 남편(최문본)이 빠졌네요.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아들(최문본)이 아버지(최온)의 거사 계획을 최의에게 밀고하는 경우가 있었군요

▣ 郡/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 태영/문 - 안개 속에 쌓인 고려사가 하나하나 베일을 벗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인쇄해서 자세히 읽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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