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점할아버지 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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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12-28 07:17 조회2,452회 댓글0건본문
자점할아버지 이야기(5)
【앞(3)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인네들의 단순한 다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또하
나의 사례가 시누이 효명옹주와 올케 인평대군의 부인인 동복오씨와의 자리다툼 이
야기다.】
--효종의 누이동생인 효명옹주는 아버지인 인조가 살아있을 때는 유일한 딸로서 금
지옥엽으로 자랐다. 그러나 그녀는 훗날 비극적인 생애를 마치게 되었는데 이는 왕
실에서의 지위와 관련되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옹주가 혼례를 치르고 3일째 되는
날 궁중에서 큰 잔치가 베풀어 졌는데 종실, 외척, 벼슬아치들의 부인에서부터 궁녀
들까지, 소위 내·외명부들이 다 참예하였다. 이 때 올케인 인평대군 부인과 시누이인
효명옹주가 자리다툼을 하게 된 것이다.
--즉 대군부인은, “비록 옹주가 신분이 높다 하더라도 내가 적자의 부인이니 내가
옹주의 오른편에 앉음이 옳다”는 것이고, 한편 옹주는 옹주대로 “부왕이 位(위)에 앉
아 계시니 왕녀가 위”라는 주장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한치의 양보가 없이 팽팽하여
결정을 못짓고 있었는데, 이 말이 大內(대내)에 알려져서 결국 “옹주가 상석에 앉아
야 한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이후 인평대군 부인의 친정과 옹주가가 원수지간이 되었으며 낙성위 김세룡이 효
종 2년에 희생이 된 데에는 이 때의 앙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효종은 일
곱 딸(6공주에 1옹주)를 두었는데 옛 일을 거울로 삼아 반드시 오씨(인평대군 부인)
를 공주네들보다 윗자리에 앉혔다는 것이다.『전주이씨 대관』
<인조대왕과 친인척/지두환/역사문화/2000>
【옹주가인 자점할아버지 집안과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인평대군 부인 동복오씨 가계
를 살펴보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즉 동복오씨의 큰아버지가 오
준이고 오준이 비변사회의에서 지방사림을 추천할 때 후일 산당으로서 자점할아버지
를 역모로 몰아 복주케 한 사계 문인(송준길· 송시열 등)과 자제(김집 등)들을 추천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반대파는 서서히 자라고 뭉치고 있었던 것이다.】
--吳端(오단)의 할아버지는 직장 吳世賢(오세현)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증 우의정
吳百齡(오백령)이며, 어머니는 高景龍(고경룡)의 딸인 제주고씨와 梁思行(양사행)의
딸이다. 생모는 고씨이다. 부인은 이조판서 沈詻(심액)의 딸인 청송심씨이다.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대사헌 吳挺一(오정일), 승지 吳挺垣(오정원), 참의 吳挺
緯(오정위), 吳挺璧(오정벽), 진사 吳挺昌(오정창)이다. 둘째사위가 인평대군이다. 오
단의 형님이 吳竣(오준)이고 동생이 吳竤(오굉)이다.
<인조대왕과 친인척/지두환/역사문화/2000>
--·인조 26년(1648년) 10월에 김집을 시강원 찬선에, 송시열을 진선에, 권시를 자의
로 임명하는 문제가 재론 되었다.(인조실록 권49, 인조 26년 10월 갑진조) 이는 15개
월 전에 사계문인의 추천을 중단하라고 했던 명령을 인조 스스로가 철회한 조치였
다. 같은 날 인조는 비변사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지방사림의 기용 문제를 적극
적으로 추진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지방사림의 기용 논의가 활발해지자 김자점
은 洪宇定(홍우정)· 趙從耘(조종운)을, 이경석은 鄭道應(정도응), 吳竣(오준; 주1)은
장현광과 김장생의 문생과 자제들을 추천하였다.(인조실록 권49, 인조 26년 10월 갑
진조)
<출전 : 인조·효종대 정치사 연구/국학자료원/이기순/1998>
주(1) : 오준은 인평대군 부인 동복오씨의 친정 백부이다. 인조 때 왕명으로 삼전도
------비문을 쓰고는 그 한을 안고 현종 7년(1666년)에 죽었다. 위 이경석과는 삼전
------도 비문을 함께 쓴 인연이 있고, 위 글에서와 같이 김장생의 문생(송준길· 송
------시열 등)과 자제(김집 등)들을 추천하였다.
▣ 김주회 - 형님! 잘 보았습니다. 인용자료가 무궁무진하군요.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오준은 제 누님 시가의 13대조(?)이십니다. 오준을 삼절공이라 하지요. 상기의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윗글과 관련된 일부의 내용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 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송시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정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김태서 - 윤만아저씨 자점할아버 자점할아버지 하시더니 결단을 내리셨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은회 - 형님!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드디어 해내시는 군요. 열정에 감복한 다름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앞(3)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인네들의 단순한 다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또하
나의 사례가 시누이 효명옹주와 올케 인평대군의 부인인 동복오씨와의 자리다툼 이
야기다.】
--효종의 누이동생인 효명옹주는 아버지인 인조가 살아있을 때는 유일한 딸로서 금
지옥엽으로 자랐다. 그러나 그녀는 훗날 비극적인 생애를 마치게 되었는데 이는 왕
실에서의 지위와 관련되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옹주가 혼례를 치르고 3일째 되는
날 궁중에서 큰 잔치가 베풀어 졌는데 종실, 외척, 벼슬아치들의 부인에서부터 궁녀
들까지, 소위 내·외명부들이 다 참예하였다. 이 때 올케인 인평대군 부인과 시누이인
효명옹주가 자리다툼을 하게 된 것이다.
--즉 대군부인은, “비록 옹주가 신분이 높다 하더라도 내가 적자의 부인이니 내가
옹주의 오른편에 앉음이 옳다”는 것이고, 한편 옹주는 옹주대로 “부왕이 位(위)에 앉
아 계시니 왕녀가 위”라는 주장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한치의 양보가 없이 팽팽하여
결정을 못짓고 있었는데, 이 말이 大內(대내)에 알려져서 결국 “옹주가 상석에 앉아
야 한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이후 인평대군 부인의 친정과 옹주가가 원수지간이 되었으며 낙성위 김세룡이 효
종 2년에 희생이 된 데에는 이 때의 앙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효종은 일
곱 딸(6공주에 1옹주)를 두었는데 옛 일을 거울로 삼아 반드시 오씨(인평대군 부인)
를 공주네들보다 윗자리에 앉혔다는 것이다.『전주이씨 대관』
<인조대왕과 친인척/지두환/역사문화/2000>
【옹주가인 자점할아버지 집안과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인평대군 부인 동복오씨 가계
를 살펴보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즉 동복오씨의 큰아버지가 오
준이고 오준이 비변사회의에서 지방사림을 추천할 때 후일 산당으로서 자점할아버지
를 역모로 몰아 복주케 한 사계 문인(송준길· 송시열 등)과 자제(김집 등)들을 추천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반대파는 서서히 자라고 뭉치고 있었던 것이다.】
--吳端(오단)의 할아버지는 직장 吳世賢(오세현)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증 우의정
吳百齡(오백령)이며, 어머니는 高景龍(고경룡)의 딸인 제주고씨와 梁思行(양사행)의
딸이다. 생모는 고씨이다. 부인은 이조판서 沈詻(심액)의 딸인 청송심씨이다.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대사헌 吳挺一(오정일), 승지 吳挺垣(오정원), 참의 吳挺
緯(오정위), 吳挺璧(오정벽), 진사 吳挺昌(오정창)이다. 둘째사위가 인평대군이다. 오
단의 형님이 吳竣(오준)이고 동생이 吳竤(오굉)이다.
<인조대왕과 친인척/지두환/역사문화/2000>
--·인조 26년(1648년) 10월에 김집을 시강원 찬선에, 송시열을 진선에, 권시를 자의
로 임명하는 문제가 재론 되었다.(인조실록 권49, 인조 26년 10월 갑진조) 이는 15개
월 전에 사계문인의 추천을 중단하라고 했던 명령을 인조 스스로가 철회한 조치였
다. 같은 날 인조는 비변사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지방사림의 기용 문제를 적극
적으로 추진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지방사림의 기용 논의가 활발해지자 김자점
은 洪宇定(홍우정)· 趙從耘(조종운)을, 이경석은 鄭道應(정도응), 吳竣(오준; 주1)은
장현광과 김장생의 문생과 자제들을 추천하였다.(인조실록 권49, 인조 26년 10월 갑
진조)
<출전 : 인조·효종대 정치사 연구/국학자료원/이기순/1998>
주(1) : 오준은 인평대군 부인 동복오씨의 친정 백부이다. 인조 때 왕명으로 삼전도
------비문을 쓰고는 그 한을 안고 현종 7년(1666년)에 죽었다. 위 이경석과는 삼전
------도 비문을 함께 쓴 인연이 있고, 위 글에서와 같이 김장생의 문생(송준길· 송
------시열 등)과 자제(김집 등)들을 추천하였다.
▣ 김주회 - 형님! 잘 보았습니다. 인용자료가 무궁무진하군요.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오준은 제 누님 시가의 13대조(?)이십니다. 오준을 삼절공이라 하지요. 상기의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윗글과 관련된 일부의 내용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 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송시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정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김태서 - 윤만아저씨 자점할아버 자점할아버지 하시더니 결단을 내리셨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은회 - 형님!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드디어 해내시는 군요. 열정에 감복한 다름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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