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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3) 간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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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2-12-28 19:32 조회1,5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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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대란 어떤 것인가 ?



우리나라의 역법은 세종때에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이 당시 천문학은 아라비아와 중국만이 유일하게



정확한 태양고도와 지구의 위치, 달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당시 세종께서는 여러 학자를 중국에 보내기도 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역법 만들



기에 노력한 결과 당시 세계에서 아라비아, 중국에 이어서 세번째로 태양의 궤도, 지구의 궤도를 계산



해 낼 수 있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일본도 약 200년 후에 우리나라에서 전해주어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 당시 한양의 위도를 계산한 일화가 전해 옵니다.



당시의 천문학자인 이순지(양성이씨)는 이 분야에 대가 였습니다. 어느날 세종께서



"경이 천문학에 밝다하니 그럼 우선 한양의 위도룰 계산해보라"하셨습니다.



이순지가 계산하여 세종께 말씀 드렸습니다.



"한양의 위도는 38도1/4입니다."



요즈음 38도는 한양보다 약간 북쪽(현재의 판문점윗쪽,))인데 틀린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원을 360등분하여 1도로 정했지만,



당시 조선에서의 계산은 이랬습니다.



원을 1년으로 보아 1일을 1도로 계산한 것입니다.



남극에서 북극까지 1년이 걸리는 계산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1도는 360분1 이지만, 당시의 1도는 365일 5시간 48분46초(정확한지 모르겠슴)분



의 1을 1도로 계산한 것입니다. 이렇게 1도의 크기가 다르므로 현재 이를 대입해서 게산하면



서울의 위도가 당시 계산으로 38도1/4가 틀림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한양의 위도를 설정하고 태양의 주기를 계산하고, 지구의 위치를 계산하여



당시에도 일식을 계산해 냈다니 얼마나 정교한 계산입니까?



이러한 천문이 계산 되지 않고는 해시계, 별시계가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김돈 선조님은 당시 이러한 일련의 작업에 골고루 참여하신 듯 합니다.



이순지와 함께 태양력 계산이라든지, 장영실과 함께 시계의 제작이라든지, ...



동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러한 과정을 자세히 글로서 남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종때 꽃피운 과학문명의 일익을 담당하신 김돈 선조님의



업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여 몇번에 나누어서 선조님의 자료를 연재할까 합니다.









우선 간의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은 명나라의 책봉(冊封)을 받았으므로 명나라 황제가 매년 동지절에 각국에



배포하는 대통력(大統曆)이라는 역서(曆書)를 받아다 써야했다. 조선시대에 이 역서를 받으러



중국에 가는 사신이 바로 동지사(冬至使)라는 사신이다. 사신이 역서를 받아 귀국하는데는 몇 달이



걸렸으므로 한양에서는 정월이 지나서야 새해의 책력을 볼 수 있었다. 책력은 연중 날짜와 24절기의



정확한 시각을 비롯하여 기념일이나 농사에 필요한 시기 등 일상생활에 긴요한 내용이 들어 있어



새해가 시작되는 동지절에는 바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월이 지나서야 나누어



주게되니 이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는 체통이 서지 않는 일이었음은 물론 받아오는 책력의 부수도



적어(명나라 실록에 따르면 조선에는 황력 10부, 민력 100부 정도가 배정되었다) 대소 신하들에게



나누어주기에도 턱없이 모자라 이것을 다시 인쇄하여 나누어주어야 하는 불편까지 겪어야했다.



더구나 대통력은 북경을 기준을 작성된 역서여서 한양을 기준으로 할 때는 시간의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이에 세종은 한양을 기준으로 하는 역서를 만들어 백성에게 반포하기로 결심하고 역서 교정에



필요한 천문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먼저 한양의 북극출지(위도)에 맞는 천체 관측기와 시계들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역법 독립을 위해 세종이 착수한 의표창제(儀表創製)사업인데 이 사업에



대한 전말과 성과를 기록한 것이 김돈(金墩, 1385-1440)의 간의대기(簡儀臺記)이다.



이 사업은 세종 14년 초가을에 착수되어 7년 만인 세종 20년 봄까지 계속되었다.



먼저 북극출지를 확정하기 위해 대간의를 제작하고 이것을 설치할 간의대를 축조하였다.



여기서 간의대란 경회루 북쪽 야외에 간의 등을 설치한 축대시설을 말하는데 한편으로는 7년여에



걸쳐 제작한 모든 기구와 시설물을 총칭하는 천문대를 통칭하기도 한다.



간의대기는 천문대 시설과 기구 전부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에 언급된 시설물과 기구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천체관측 기구인 간의와 정방안(正方案) 그리고 이것을 설치한 축대시설



2. 소형화시킨 간의



3. 해와 별을 이용하여 시각을 결정하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와 이것을 소형화시킨 소정시의



4. 동지에 해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하여 일 회귀년(回歸年)의 길이를 정하는 동표(銅表)



5. 천체 운동을 모형화한 혼의와 혼상 그리고 이것을 설치한 건물



6. 표준시계와 이것을 설치한 보루각 7. 천문시계와 이것을 설치한 흠경각 8. 해시계인 앙부, 현주,



천평, 정남 일귀



9.도량형의 기본 척도인 주척(周尺) 이다.



글 남문현 건국대 교수, 한국산업기술사학회장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대단한 과학자였던 듯 합니다.

▣ 김주회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놀라울 뿐입니다.

▣ 김정중 - 감사합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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