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증 교관공 김규찬·효부 전주최씨(孝子 贈 敎官公 金奎贊 孝婦 全州 崔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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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1-06 21:24 조회1,702회 댓글0건본문
효자 증 교관공 김규찬·효부 전주최씨(孝子 贈 敎官公 金奎贊 孝婦 全州 崔氏)
공은 문정공 김질의 16세손이며 교관공 김성추의 아들이고 부인은 효부, 전주최씨는 자부이다. 공은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엄숙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후하고 총명하시며 남달리 효심이 많았다. 어머니의 효행을 지켜보고 부친께서 효성이 지극하였다는 말을 들어서 깨닫고 시전 육아편을 읽고 성현들의 가르침을 깨닫고 되새기며 스스로 채칙을 하면서 홀어머니를 지성껏 모셨다. 성년이 되어 인자하고 부덕을 겸비한 한 살 아래인 전주최씨와 결혼하였다. 이들 부부는 화합하여 양친께서 행했던 효성을 본받아 홀어머니를 외롭지 않게 홀어머니의 방에 부인과 같이 들어가 잠자리를 보살피며 편안히 주무세요 인사를 하고 새벽이 되면 세수물을 떠올린 후 문안 인사를 공손히 하기를 매일 잊지 않으셨다.
가난했지만 구미에 맞는 반찬으로 봉양해 드렸다. 부인 최씨는 청춘에 홀로 되시어 윗대 어른들을 모시고 생활을 해와서 성품이 변해 괄괄하고 잔말이 많아 졌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어려운 살림에 종사하였다. 1년 내내 여름철에도 하루 삼시 밥을 지어 공양하였다. 모친께서 62세때 타계하시니 공은 1년 동안 문밖 출입을 하지않고 비통해 하였고, 청춘에 홀로 되시어 어린 자식을 키운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명복을 빌었다. 이처럼 김성추와 김규찬 부자와 두 부부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지방사림에서 2세에 걸친 이분들의 효행을 높이 찬양하고 2세 효자부부 발천문을 조정에 주선하여 나라에서 이들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1905년(고종광무9년)에 효자효부의 정려문을 내리고 공의 부자에게는 종사랑 중학교 교관 벼슬의 교지를 내려 2세 2효자 2효부의 정려문이 현재 전남 곡성군 곡성읍 죽동리 242의 2번지에 세워져 있고 이곳에 안동김씨 2세4효 정려비를 세웠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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