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돈(8) 천체시계=일성정시의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3-01-07 20:12 조회1,670회 댓글0건본문
김돈 선조님의 시계제작에 관여하신 기록을 통해 업적을 조명해보고 있습니다.
당시의 시계는 해시계, 물시계가 있었습니다.
해시계는 정확하지만, 흐리거나, 밤에는 알수없는 단점이 있고,
물시계는 계속 시각을 알 수 있지만, 정확하지가 않았습니다.
이에 해와 별의 움직임으로 시각을 재는 방법을 연구하게 됩니다.
이의 완성품이 [일성정시의]입니다.
일성정시의 銘과 序를 김돈 할아버님이 쓰신 것으로 보아 이의 제작, 설계에 직접
참여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선 일성정시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초기 세종대(世宗代)에는 당시 시각법(時刻法, 또는 時制)인 1일(日)을 12시(時)와
100각(百刻)으로 나누었고, 밤시간은 5경(五更)으로 나누어 시간을 측정하는 많은 종류의 시계가
제작되었다.
그 중에는 자격루, 옥루와 같이 잘 알려져있는 물시계와 앙부일귀(仰釜日晷) 등 여러 종류의 해시계가
있었다. 특히 천문시계의 일종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독창적인것으로서 당시의 과학 기술을
세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천문시계들은 당시에 사용하였던 다른 계시기(計時器)들과 달리 크게 두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한양의 북극 고도인 한양의 위도를 정확히 측정하여 일성정시의의 정극환의 방향을 한양에서의
북극고도에 맞추어 사용함으로서 한양을 기준으로한 국가 표준시계라 할 수 있다. 둘째 지구의
자전축 방향인 북극에 맞추어 천문에 사용하는 적도좌표계(赤道座標系)와 일치하도록 설치함으로서
지구의 자전운동으로 인한 하늘의 태양이나 천체의 일주운동의 변화량을 측정하여 주야(晝夜)로
시간을 알 수 있는 주야겸용측시기(晝夜兼用測時器)인 정밀한 천문시계이다.
이것은 낮에 태양뿐 아니라 밤에는 당시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항성(恒星)이 규칙적으로 일주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구상에서 회전하는 북극성 주위의 별들의 위치를 측정하여
밤 시간(夜時刻)을 측정하였고, 그 시간을 궁중에 알려주고 또한 자동시보 장치인 자격루의 시각
교정에 사용하였다.
일성정시의의 구조와 원리 그리고 사용법은 세종실록 77권에 실린 김돈의 「간의대기」 서문 중,
「일성정시의명병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성정시의는 당시 동양에서 사용하던 원둘레 365.25도를 적용하였으며, 주천환(周天環, 주: 원둘레를
365.25도로 매긴 환으로 1도는 1일을 나타낸다), 일귀백각환(日晷百刻環, 주: 해시계의 눈금을 새긴
환이며, 당시의 하루 시간은 100각이다), 성귀백각환(星晷百刻環, 주: 야간에 항성시를 측정하는
별시계의 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용이 이들을 물고 있는 형상을 하도록 하였다. 세종은 이와
같은 일성정시의를 4개를 제작하여 하나는 경복궁에 두고, 하나는 서운관에 주고 나머지 2개는
평안도와 함길도의 원수영에 내려보내 군사에 활용하도록 하였다. 세종대의 유물은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성종대에 이것을 소형화시킨 소정시의의 유물이 하나 남아있어 홍능 세종대왕기념관
에 전시하고 있다. 또한 중종대에도 창경궁에 보루각을 하나 더 건립하면서 일성정시의대를 축조하였는
데 이는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보물 85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1980년대에 영국의 Needham박사는 <세종실록>과 유물을 바탕으로 일성정시의를 복원하였다.
최근 이용삼 교수(충북대 천문우주학과)와 필자는 Needham의 복원도를 바탕으로 세종
일성정시의를 복원하는데 성공하였다
일성정시의는 원대의 천문학자 곽수경이 만든 성귀의(星晷儀)를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하나 성귀의에
관한 기록은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없으며 유물도 남아 있지 않다. 일성정시의는 분명 세종의
발명품으로서 필자는 이를 자격루, 흠경각루, 현주일귀, 측우기와 더불어 세종대의 5대
발명품으로 꼽는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항용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당시의 시계는 해시계, 물시계가 있었습니다.
해시계는 정확하지만, 흐리거나, 밤에는 알수없는 단점이 있고,
물시계는 계속 시각을 알 수 있지만, 정확하지가 않았습니다.
이에 해와 별의 움직임으로 시각을 재는 방법을 연구하게 됩니다.
이의 완성품이 [일성정시의]입니다.
일성정시의 銘과 序를 김돈 할아버님이 쓰신 것으로 보아 이의 제작, 설계에 직접
참여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선 일성정시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초기 세종대(世宗代)에는 당시 시각법(時刻法, 또는 時制)인 1일(日)을 12시(時)와
100각(百刻)으로 나누었고, 밤시간은 5경(五更)으로 나누어 시간을 측정하는 많은 종류의 시계가
제작되었다.
그 중에는 자격루, 옥루와 같이 잘 알려져있는 물시계와 앙부일귀(仰釜日晷) 등 여러 종류의 해시계가
있었다. 특히 천문시계의 일종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독창적인것으로서 당시의 과학 기술을
세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천문시계들은 당시에 사용하였던 다른 계시기(計時器)들과 달리 크게 두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한양의 북극 고도인 한양의 위도를 정확히 측정하여 일성정시의의 정극환의 방향을 한양에서의
북극고도에 맞추어 사용함으로서 한양을 기준으로한 국가 표준시계라 할 수 있다. 둘째 지구의
자전축 방향인 북극에 맞추어 천문에 사용하는 적도좌표계(赤道座標系)와 일치하도록 설치함으로서
지구의 자전운동으로 인한 하늘의 태양이나 천체의 일주운동의 변화량을 측정하여 주야(晝夜)로
시간을 알 수 있는 주야겸용측시기(晝夜兼用測時器)인 정밀한 천문시계이다.
이것은 낮에 태양뿐 아니라 밤에는 당시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항성(恒星)이 규칙적으로 일주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구상에서 회전하는 북극성 주위의 별들의 위치를 측정하여
밤 시간(夜時刻)을 측정하였고, 그 시간을 궁중에 알려주고 또한 자동시보 장치인 자격루의 시각
교정에 사용하였다.
일성정시의의 구조와 원리 그리고 사용법은 세종실록 77권에 실린 김돈의 「간의대기」 서문 중,
「일성정시의명병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성정시의는 당시 동양에서 사용하던 원둘레 365.25도를 적용하였으며, 주천환(周天環, 주: 원둘레를
365.25도로 매긴 환으로 1도는 1일을 나타낸다), 일귀백각환(日晷百刻環, 주: 해시계의 눈금을 새긴
환이며, 당시의 하루 시간은 100각이다), 성귀백각환(星晷百刻環, 주: 야간에 항성시를 측정하는
별시계의 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용이 이들을 물고 있는 형상을 하도록 하였다. 세종은 이와
같은 일성정시의를 4개를 제작하여 하나는 경복궁에 두고, 하나는 서운관에 주고 나머지 2개는
평안도와 함길도의 원수영에 내려보내 군사에 활용하도록 하였다. 세종대의 유물은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성종대에 이것을 소형화시킨 소정시의의 유물이 하나 남아있어 홍능 세종대왕기념관
에 전시하고 있다. 또한 중종대에도 창경궁에 보루각을 하나 더 건립하면서 일성정시의대를 축조하였는
데 이는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보물 85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1980년대에 영국의 Needham박사는 <세종실록>과 유물을 바탕으로 일성정시의를 복원하였다.
최근 이용삼 교수(충북대 천문우주학과)와 필자는 Needham의 복원도를 바탕으로 세종
일성정시의를 복원하는데 성공하였다
일성정시의는 원대의 천문학자 곽수경이 만든 성귀의(星晷儀)를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하나 성귀의에
관한 기록은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없으며 유물도 남아 있지 않다. 일성정시의는 분명 세종의
발명품으로서 필자는 이를 자격루, 흠경각루, 현주일귀, 측우기와 더불어 세종대의 5대
발명품으로 꼽는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항용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