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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궁금증을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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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3-01-09 08:18 조회1,8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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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궁금한 점이 있던 차였습니다.



<궁금증>

1978년에 처음 선배 따라 난설헌시비를 탁본하러 안성으로 갔거든요.

(구체적인 장소는 지금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을 수소문 중입니다.)



거기 시비가 있었기 때문인데, 난설헌 할머니 묘소는 인근에 없었습니다.



마침 시비 가까운 곳에 우리 일가분(아마도 서운관정공파겠지요.)이 살고 계셨는데,



지게를 지고 들일을 나가던 참이었습니다.



그분에게 묘소를 물어 보니 손가락으로 산 너머를 가리키면서



"(경기도) 광주" 쪽에 있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장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이 부분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장했다"는 기억이 맞다면 혹시 대부님이 제기하신 것처럼



무갑산에서 경수산으로 이장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경수산에서 이장 문제는 1985년도입니다. 이 문제는 2번째 문제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왜 묘소도 없는 곳에 시비를 세웠을까 하는 의문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당시 시비 옆에는 작은 규모의 묘소가 대여섯 기 잘 모셔져 있었습니다.





<휘 정립 할아버지와 난설헌 할머니 묘소 배치>

-- 묘소 이장과 두 분의 묘소가 떨어져 있는 문제(서운관정공파 부회장 증언)



지난 2002년 9월 경수마을 서운관정공파 선조님 묘역 참배 때 현지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본래 묘소 위치는 현재 위치에서 약 200미터 아래쪽에 있었는데,



중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1985년도에 6개월간 묘역 조성공사를 한 다음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묘역 입구에 세워져 있는 송덕비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이 송덕비에는 서운관정파에서 고속도로 수용에 기꺼이 협조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한국도로공사와 (중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시공 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장 전부터 휘 성립 할아버지와 난설헌 할머니 묘소는 같은 단에 나란히 있지 않고



한 단 아래 떨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장을 하면서도 웃대 어른들께서 묘소를 그렇게 쓴 본래 뜻을 받들어



옛 형태 그대로 옮겨 모셨다고 했습니다.



이 증언으로 보아 이장하면서 묘단을 달리하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중부고속도로 건설 시기(1985년)를 기점으로



이장 전이 무갑산, 이장 후가 경수산으로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본래 위치는 현재 위치(경수산)에서 불과 200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앞에서 제 궁금증을 말씀드리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장했다"는 일가분의 말씀대로라면



이때가 중부고속도로 건설 이전인 1978년이므로



처음에는 경수산이 아닌 다른 곳에 모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무갑산과 경수산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네요.











▣ 광주에서김 - 무갑산은 광주초월면 무갑리에위치하고있는데요 그리고 경수산은 초월면 지월리이고요 무갑리와 초월면은 바로인접인데 누군가가 인근에 제일 높은 산을가리키기위해서 아마무갑산이라고 하시지는않았는가봅니다 경수산이 무갑산 바로밑이니까요?

▣ 솔내 - 이장안했으리라는 증거. 난설헌 묘만 이장했을리 없고, 이장했다면 성립선조님도 이장했어야 했는데. 답사시 서운관정공파회장님 말씀대로, 성립선조님의 유골발견문제를 들어보면 성립선조님은 처음 봉분을 열어본 것임에 틀림없으니, .. 그런연유로 난설헌,성립묘소는 이장하지 않고, 전위치(고속도로)에 게속 계시다가, 현위치로 이장한 것이라 추정합니다.

▣ 광주에서김 - 무갑리와지월리는인접경계입니다 그리고 경수산은 무갑산 자락은 아니지만 바로밑이라고 할수있지요

▣ 김은회 -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金在益 -

▣ 김윤식 - 광주 일가분께 감사드립니다. 중요한 궁금증 하나가 풀렸습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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