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찾아보다 발견한 사실(3)<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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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1-22 15:31 조회1,480회 댓글0건본문
자료를 찾아보다 발견한 사실(3)<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려시대에 편찬된 정치 참고서. 현존하지는 않으나《주례(周禮)》·《통전(通典)》을 전형(典型)으로
삼아 고려의 문물제도를 고려 성종대에 확립된 육전체제(六典體制)에 따라 정리한 정치 참고서로 생각된
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들이 있다. 김구용(金九容)·김경숙(金敬叔)·김지(金摯)·김지
(金祉) 등 4인이 거론되었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김지(金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었다. 그
의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본관이 영광(靈光)이고, 1362년(공민왕 11)에 예부시(禮部寺) 을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떠나 저술에 힘썼던 것으로 전하여 진다. 이색(李穡)이 그의 저술로 알려진 <선수집>
과 이 책의 서문을 써주어 <목은문고(牧隱文藁)>에 실려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뒤에 이루어진 여러 저술
속에 인용되고 있다.<고려사> 예지(禮志)의 편찬에 인용된 서목(書目) 중에도 들어 있어서 그 편찬자료
가 되었음을 알 수 있고, <세종실록>과 <선조실록>에도 고려의 답험손실(踏驗損失)·염법(鹽法)·부세(賦
稅)·산장수량(山場水梁) 등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언급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삼한(三韓)과 삼
국·고려 등의 역사와 지방사 및 지방의 토착성씨 등과 관련하여 자주 인용되었다. 그리고 이색의 서문에
서 고려 역대의 전장(典章)을 체계화한 법전이었음을 지적하고 있고, 내용편제상 정도전(鄭道傳)의 <조
선경국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법전으로, 또는 역사서·
지리서로 다양한 측면에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편찬 동기는 고려 전성기의 문물제도를 복구하고 육
전체제를 충실하게 함으로써 무신집권기 이후 와해된 관제 등을 복구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참고
문헌》高麗史, 世宗實錄, 宣祖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牧隱文藁, 高麗史의 硏究(邊太燮, 三英社, 1982),
金祉의 選粹集·周官六翼과 그 價値(許興植, 奎章閣4, 1981), 周官六翼と其の著者(花村美樹,京城帝國大學
法學會 論文集12-3·12-4合輯,1926)---<李炳熙>
▣ 솔내영환 - 김지의 선수집,주관...(허흥식)은 제가 갖고있는데, 화촌미수의 주관육익과 그의 저자]는 구하지 못햇습니다. 아시는 분 알려 주세요. 서울대 도서관에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서울대 도서관 가시는 길 있으시면 부탁합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드립니다.
▣ 김항용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척약재 선조님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나 봅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선초에 편찬된 고려사나 관찬 지리지 등에 인용된 내용의 표현을 보면 적어도 이때까지는 주관육익이 실재했던 것은 아닐까요?
--고려시대에 편찬된 정치 참고서. 현존하지는 않으나《주례(周禮)》·《통전(通典)》을 전형(典型)으로
삼아 고려의 문물제도를 고려 성종대에 확립된 육전체제(六典體制)에 따라 정리한 정치 참고서로 생각된
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들이 있다. 김구용(金九容)·김경숙(金敬叔)·김지(金摯)·김지
(金祉) 등 4인이 거론되었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김지(金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었다. 그
의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본관이 영광(靈光)이고, 1362년(공민왕 11)에 예부시(禮部寺) 을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떠나 저술에 힘썼던 것으로 전하여 진다. 이색(李穡)이 그의 저술로 알려진 <선수집>
과 이 책의 서문을 써주어 <목은문고(牧隱文藁)>에 실려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뒤에 이루어진 여러 저술
속에 인용되고 있다.<고려사> 예지(禮志)의 편찬에 인용된 서목(書目) 중에도 들어 있어서 그 편찬자료
가 되었음을 알 수 있고, <세종실록>과 <선조실록>에도 고려의 답험손실(踏驗損失)·염법(鹽法)·부세(賦
稅)·산장수량(山場水梁) 등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언급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삼한(三韓)과 삼
국·고려 등의 역사와 지방사 및 지방의 토착성씨 등과 관련하여 자주 인용되었다. 그리고 이색의 서문에
서 고려 역대의 전장(典章)을 체계화한 법전이었음을 지적하고 있고, 내용편제상 정도전(鄭道傳)의 <조
선경국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법전으로, 또는 역사서·
지리서로 다양한 측면에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편찬 동기는 고려 전성기의 문물제도를 복구하고 육
전체제를 충실하게 함으로써 무신집권기 이후 와해된 관제 등을 복구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참고
문헌》高麗史, 世宗實錄, 宣祖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牧隱文藁, 高麗史의 硏究(邊太燮, 三英社, 1982),
金祉의 選粹集·周官六翼과 그 價値(許興植, 奎章閣4, 1981), 周官六翼と其の著者(花村美樹,京城帝國大學
法學會 論文集12-3·12-4合輯,1926)---<李炳熙>
▣ 솔내영환 - 김지의 선수집,주관...(허흥식)은 제가 갖고있는데, 화촌미수의 주관육익과 그의 저자]는 구하지 못햇습니다. 아시는 분 알려 주세요. 서울대 도서관에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서울대 도서관 가시는 길 있으시면 부탁합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드립니다.
▣ 김항용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척약재 선조님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나 봅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선초에 편찬된 고려사나 관찬 지리지 등에 인용된 내용의 표현을 보면 적어도 이때까지는 주관육익이 실재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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