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원공(翼元公)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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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1-22 21:33 조회2,187회 댓글0건본문
익원공(翼元公) 사기
공의 휘는 사형이요, 자는 평보, 호는 락포이시며, 父는 붕익대부부지밀직사사 상호군으로,이조에서
보국승록대부 영삼사사에 추증되신 휘는 천이시고, 母는 삼한국대부인 현풍곽씨, 외조는 포산군을
수봉하신 휘는 원진이시다.
공이 서기1341년 신사에 출생하시니 이 때가 바로 고려 충혜왕 2년 이었다.
공이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시어 우왕조에 개성부윤. 삼사우사 등의 요직을 역임하시다가,
1392년에 고려의 국운을 개탄하시면서, 여러 장상들과 이성계을 도와 이를 왕으로 추대하여
문하시랑 찬성사가 되시고, 판상서사사를 겸하셨다가, 얼마 후에 병조전서와 응양위 상호군이 되시고,
순충 분의 좌명동덕 개국1등공신에 책훈되시고, 12월에는 문하우시중을 배명하시여, 상락백으로
식읍1천호 식실봉 3백호를 수봉하셨다.
1396년(태조5.병자) 11월에 왜구가 평해.녕해.울진.울주 등지에 침입하여 피해가 극심함으로,
그 해 12월에 공이 문하우시중으로 오도병마도통처치사가 되시어 오도의 병선을 취합해서
일본의 일기도. 대마도를 정벌하게 되셨는데, 출발하시던 날, 태조께서 남문밖까지 나오셔서
전송하시면서, 철술을 하사하시고, 안마와 모관갑과, 활과 화살. 약상을 주시고, 교서를 내리셨다.
이로 인해서 12월에 일본의 만호라기온이 선박 60척을 몰고 와서 투항함으로 익년 정월에
개선하시어서 판사헌부사를 또 겸하셨다.
1398년(태조7.무인) 8월에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이에 방과(정종)가 왕위를 이어 받음으로서
정사1등공신이 되시고, 1399년 기묘에는 우정승으로서 명나라 건문황제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한
사신으로 가시는데, 이 때 정종대왕께서 홍제동까지 나와 전송하셨다.
그 해 12월에 공이 너무 오랫동안 벼슬에 있음을 이유로 퇴직을 청하였더니 오랫만에 윤허가 내리었다.
공은 재상으로 8년간을 계시면서 아무런 탄핵을 받지 않으셨고 조정의 물의를 관용으로 진정시키셨다.
1401년(신사)에 태종이 왕위에 올라서, 그 해 3월에 태종으로 부터 다시 좌정승에 배명되셨다가,
그 다음해 10월에 퇴직하시고, 영사평부사로서 다음 달에 상락부원군을 수봉하시고, 치사하시어
1407년(정해) 7월 30일에 서거하시니 수가 67세였다.
조정에서는 공의 부음을 들으시고 3일간 정무를 철폐하고 왕이 좌부대언 윤수를 보내서 빈소에
제사케 하고 익원공의 시호를 내리셨다.
배위는 마한국대부인 죽산박씨시니 삼사좌사 죽산군 정의 따님으로서 2남 1여를 낳으시니, 남에 육은
동지중추부사이며 차남 승은 동지밀직사사이고 사위인 신호창은 평산신씨이며 시호는 재정공이시다.
(묘소는 익원공모 하에 있음)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영윤 -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발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김양식 - 잘 읽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김양식 - 잘 읽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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