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학공파 史記(3)-김영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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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3-01-27 17:52 조회1,630회 댓글0건본문
제학공파 史記(3)-김영돈(3)
고려사절요 제25권 > 충혜왕조
계미 4년(1343), 원 지정 3년
○ 12월에 한양군(漢陽君) 한종유(韓宗愈), 판밀직사 손수경(孫守卿)을 원 나라에 보내어 토산물을 올리게 하였다. 이때 왕의 충신은 한종유(韓宗愈)와 이조년(李兆年)뿐이었는데 이조년이 이미 죽었으니, 황제가 종유를 부른 것은 그에게 원자(元子)를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 전 대언(代言) 인당(印?)이 임신(林信)ㆍ박양연(朴良衍)ㆍ임이도(林以道)ㆍ남궁신(南宮信)ㆍ최안의(崔安義)ㆍ김첨수(金添壽)ㆍ민환(閔渙)ㆍ왕석(王碩)ㆍ승신(承信) 등 9명을 함거(檻車)에 싣고 원 나라로 갔다.
○ 언양군(彦陽君) 김륜(金倫)은 집에 있다가 왕이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창졸간에 달려갔으나 보지 못하였다. 곧 조정에 진정하자고 채하중에게 말하여, 재상과 국가의 원로들을 민천사(旻天寺)에 모으고 글을 올려 왕의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청할 것을 의논하니, 예천군(醴泉君) 권한공(權漢功)이 말하기를, "옛날 은 나라의 태갑(太甲)이 덕(德)을 밝히지 못하여, 이윤(伊尹)이 3년 동안 동(桐 땅이름)에 추방하였다가, 뒤에 마음을 바로잡고 행실을 고치므로 왕의 자리에 복위시켰다. 또한 어떤 나라가 교통의 요충이 되는 땅에 끼어 있었는데, 조회하러 들어오는 제후와 천자의 사신을 죽이니, 천자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죽였고, 또 어떤 나라의 신하가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갔었는데 돌아와 보니 천자의 사신이 와서 그 왕의 머리를 베어 가므로, 그 신하가 시체놓인 곳에 나아가 제사를 차리고 곡을 하였더니, 역시 영을 내려 그를 죽였었다. 이제 왕이 무도하여 천자가 주벌(誅罰)한 것인데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는가." 하고, 전 정승(政丞) 강장(康莊)은, "황제의 뜻을 측량할 수 없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이를 어찌할 것인가." 하고, 전 정승 이능간(李凌幹)은, "이제 천자가 왕의 무도함을 듣고서 죄를 준 것인데, 만일 글을 올려서 논하여 아뢴다면 이것은 천자의 명을 그르다고 하는 것이니 될 수 있는가." 하였다. 상락군(上洛君) ★김영돈(金永暾)은 말하기를, "왕이 욕을 당하였을 때, 신하가 죽음으로써 그것을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 김륜이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신하는 왕에 대해서, 자식은 아버지에 대해서, 아내는 남편에 대해서 마땅히 그 은정과 의리를 다할 뿐이다. 그 아버지가 벌을 받는데, 그 자식된 자가 차마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황제의 뜻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모든 재상들이 아무 말이 없었다. 김륜은 또 말하기를, "이제 행성(行省)에 글을 올리어, 비록 허락을 얻지 못할지라도, 왕을 구원하다가 죄를 얻는다는 일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하였더니,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해서 드디어 상서할 것을 결의하고, 김해군(金海君) 이제현(李齊賢)에게 그 글을 초하도록 하였다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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