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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대관上 10 ---김사렴과 김사형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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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1-28 06:14 조회1,7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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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대관上 10 ---김사렴과 김사형





영삼사사공(김천)과 삼한 국대부인 현풍곽씨(곽원진의 따님) 사이의 4남1녀중(사겸,사렴,사안,사형,허강처)



조선개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1등에 오르시고 조선태종조에 좌정승에 오르신 익원공(김사형)께서는 그에 대한 사료나 자료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문집 등에 방대한 양이 실려 있습니다. 익원공파 소개자료에 자세하므로 모두 생략하고,



익원공(김사형)의 영귀로 인하여 밀직부사를 지내신 아버지는 영삼사사 상락군에 증직되시고, 어머니는 삼한 국대부인에 추봉되시었다는 기록이 문중자료에 전해 옵니다.



여말선초의 혁명시절에 안렴사공(김사렴)과 익원공(김사형)은 형제로서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찾아 보았습니다.







2-5-3 김사형(金士衡)



▣ 성씨의고향 (중앙일보)

金士廉(공민왕조 안렴사), 金士衡(조선태종조 좌의정) 등 형제는 고려의 멸망-조선의 개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무대에서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金士廉은 고려가 망하자 청주 도산에 은거 두문불출했으며 한양쪽을 향하여 앉은 일조차 없었다는 節臣. 이성계가 여러차례 불러 佐司諫에 임명했으나 끝까지 거절했다.

그러나 그의 아우 金士衡은 달랐다. 고려말 삼사우사를 지냈던 그는 1392년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 개국공신 1등에 서훈됐으며, 태종때는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1997, 안동김씨연기군종친회)

안렴사공파

안렴사공파는 충렬공 김방경의 4대손인 士廉(1335∼1405)의 계열로서, 사렴은 안렴사를 지냈고, 호를 梧隱이라 하였다. 그는 고려말의 학자이자 충절신인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도 도의로써 교유하였고, 조선건국후 태조가 등극하자 두문불출하였고 이태조가 수차 높은 벼슬에 불렀으나 사양하고 청주 오근으로 낙향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특히 그의 아우인 익원공 士衡이 조선의 건국에 동참하여 공신호를 받았고, 그를 통하여 형인 안렴사공을 등용의 뜻을 전하였는데 당시의 유명한 일화가 집안에 전해진다.

아우인 익원공이 오근에 이르자 가마에서 미쳐 나오기 전에 휘장 틈으로 손을 디밀어 "손이나 만져 보자"고 하면서 이르기를 "가늘 길이 갈리고 뜻이 다르지만 형제간의 정이야 어찌 다르겠느냐" 하면서 그대로 돌려 보내고 이내 도산으로 은둔하여 그는 이후 한양쪽을 향하여 앉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









2-5-4 허강의 처



▣ 고려사제132권-열전제45 반역6 신돈

신돈은 영산(靈山) 사람이요, 그의 모친은 계성현(桂城縣) 옥천사(玉川寺) 여종이다.

신돈은 어려서 중이 되었다. 이름은 신변조(遍照)요, 자는 요공(耀空)이다. 신돈은 그 어미가 천하여서 중들 사이에서도 한축에 들지 못하고 항상 산방(山房)에 거처하고 있었다.

밀직 ★허강(許綱)의 처 김씨(金氏)는 상락군(上洛君) ★김영후(金永煦)의 손녀인데 허강이 죽으니 신돈이 문벌을 탐내어 그 과부에게 장가 들고자 했다.

김씨가 이 소문을 듣고 말하기를 “우리 주인이 평생에 남의 여자라고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찌 차마 그분을 배반할 수 있겠는가! 정히 나를 욕보이려고 한다면 나는 자결하고 말겠다”라고 하고 드디어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신돈이 이 말을 듣고 단념하였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솔내영환 - 고맙습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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