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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대관上 13 ---안렴사공 기록찾기 (조선중기 15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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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1-31 01:49 조회1,6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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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대관上 13 ---안렴사공 기록찾기 (조선중기 1500년대)





안렴사공(김사렴) 선조님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 고려사절요등 史書나 개인文集에서 전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단 한줄이라도 기록을 찾아 보려고 눈을 씻고 찾고 있으나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용되고 있는 기록은 조선후기 남공철(1760-1840) 이라는 분이 1822년 고려명신전을 지을 때 일민편에 안렴사공(김사렴)을 수록하였고, 이를 토대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디지털한국학 등 기타 자료에서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고려시대 사서나 개인문집의 기록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히 단편적인 기록 몇가지를 찾은 것이 있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3-1-3 김지 묘갈명 (1534) --- 김지는 안렴사공의 5대손



모재 김안국(1478-1543)은 (안렴사공파)김공언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하고, 김공언의 아버지 김지(1455-1534)의 묘갈을 찬하였다.



1534년 모재 김안국이 찬한 안렴사공 5대손 김지의 묘갈에 보면 "고려말 충신 본관 안동인 문하시랑 정당문학 관지 안렴사 휘는 사렴 호는 오은공"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안렴사공 사후(1405) 130년쯤 후에 만들어진 묘갈에 안렴사공 할아버지께서 지내신 최종관직으로 "문하시랑 정당문학 안렴사"를 지내신 것으로 되어 있다.





▣ 김지(金지) (1455-1534)

<오창지>

공은 군수 ★성의 아우인데, 음직으로 현령을 지내고 수직으로 통정대부를 가하였다.

모재 ★김안국은 묘갈을 찬하여 이르기를 "너그럽고 후덕하고 청백하고 검소하여 고을을 다스림에 백성을 잘 보살폈으며 집안에 거처함에 화목을 돈독히 하였고 장수와 강녕을 누렸다." 하였다.



<老隱亭 안내책자, 1997>

★金公彦 공은 조선 성종조에 문의현령이던 아버지 金 (★김지)와 어머니 진주유씨 사이에서 4남1녀의 3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릇이 크고 총명하고 생각이 깊었으며, 모재 ★김안국과 함께 학문을 닦으며 벼슬이 동부참봉에 올랐다.

그러나 중종14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어진 선비들이 숨고 핍박을 당하자 조정의 어지러움을 한탄하며 출생지인 청주를 떠나 병천으로 옮겼다.



<문의향교지, 1991>

p 351

안동김씨 통정대부 문의현령 김지 행장

김지 1455(세조원년) - 1534(중중29년)

공은 고려말 충신 본관 안동인 문하시랑 정당문학 관지 안렴사 휘는 ★사렴 호는 오은공의 5대손이요, 사헌부감찰 증호조참의 ★종손의 아들로서 1474(성종5) 갑오에 사마시를 거쳐 그후 루전하여 문의현령을 지냈으며 또한 치적이 높았다.

연로하여 관직을 사퇴하니 특히 통정대부 당상관의 승차의 성은을 받았으며 1534(중종29) 갑오 9월 초9일 향년 80세에 졸하다.

공의 묘비를 모재 ★김안국이 찬하니 좌와 같다.



현령공 비문

공 諱지 字次軒 안동김씨 신라★경순왕지후 경순왕9세손 曰★방경 고려첨의중찬봉상락군개국공 시문충렬 훈업관세 공지9대조야, 5대조 여말충신 문하시랑 정당문학 관지안렴사 휘★사렴, 증조 지주사★우주 조승문원판교 휘★환, 고 증호조참의 사헌부감찰 휘★종손, 비광주김씨 용분시위사 대호군 휘처지녀 공성겸태 을해20중 사마시

---(후략)---

김안국찬 (호모재 관지2상 의성인 동국유현)









3-1-4 대동운부군옥 (1591이전, 권문해)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라는 책은 조선 중기의 한학자인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 편저의 백과서(百科書)로서 편찬 직후 선조에게 바쳐 나라에서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중단되고, 1798년(정조 22)에 저자의 7대손인 진락(進洛)이 정범조(丁範祖)의 서문을 받아 초판을 펴낸 책이다.

1822년 남공철이 고려명신전 일민편에 안렴사공 행적을 기록하기 231년 이전, 즉 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으로 안렴사공 행적에 대한 기록문헌으로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기록이다.





▣ 대동운부군옥 (임진왜란 이전 편찬)

김사렴

안동인. 상락공 방경의 후. 어려서부터 學問에 뜻을 두었고 文詞에 富하여 공민왕 초에 登第하여 官은 안렴사를 지냈다. 정몽주 이색과 더불어 直諫으로 善俱하여 著名하였다.

태조 개국시 청주로 逃隱(도은)하였고, 左司諫으로 누차 불렀으나 起遂(기수)하지 아니하고 入山하여 閉戶하고 終하였다.









▣ 김성회 - 현령공(휘 김지)의 묘갈을 찬한 김안국 선생은 어릴적에 여주에서 현령공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승지공(공예)과 돈독한 사이였다고 합니다.의성김씨로 종손 김용래선생과 만나 모재집 국역본을 한권얻어 청주 장회 전 안렴사공파 회장에게 전달했습니다.

▣ 김성회 - 안렴사공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면 두문동72현의 수장인 박문수(朴門壽)선생이나 화해사전의 저자인 볌세동선생의 자료가 시급합니다. 박무수공은 72현의 수장으로 전북 남원시 수동면에 후손들이 살고있으며,본관은 죽산임. 또한 범세동선생의 묘는 전라도 광주시 문화재로 등록되었으며 후손이 조선대학 교수로 재직중임. 거

▣ 김성회 - 안렴사공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면 두문동72현의 수장인 박문수(朴門壽)선생이나 화해사전의 저자인 볌세동선생의 자료가 시급합니다. 박무수공은 72현의 수장으로 전북 남원시 수동면에 후손들이 살고있으며,본관은 죽산임. 또한 범세동선생의 묘는 전라도 광주시 문화재로 등록되었으며 후손이 조선대학 교수로 재직중임. 거

▣ 김윤만 -

▣ 김윤만 - 안렴사공파 문중 소개에 기대가 큽니다. 그리고 두 분의 돈독하신 우애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 김항용 - 세부적인 자료 찾기에 온 정성을 다하는 성회님과 주회님의 감동적인 활동에 늘 감사할 뿐입니다.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은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두문동유사>에 안렴사공 할아버지 기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간 중앙도서관에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 김주회 - 성회 종친님의 귀한 말씀과 방향설정, 그리고 우리 회원님들의 관심과 지원에 힘이 솟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조언을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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