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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99)마지막 혼신을 기울여-5- 남북협상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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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2-17 19:27 조회2,2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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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선생님의 일생을 통해 근세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남북협상에 의하여 단일국가에 통일된 정부를 만들기에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셨습니다.



남한에서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무르익어가는 1948년 봄 선생님의 남북협상 과정을



정리하여 보면



2월 16일 김두봉에게 편지 몰래 보내셨습니다.



이어서 3월 25에 평양방송은 4월 14일 평양에서 남북한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열자고 제의하니,



4월 1일 백범은 김 규식과 함께 평양에서의 남북회담에 응하겠다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시었



습니다.





4월 7일 백범쪽에서는 안경근(안중근의사의 사촌이며, 김두봉과 안면이 있다), 김규식쪽에서는



권태석을 회담준비를 위한 밀사로 평양에 보내어 회담준비위원장 주영하,김두봉 등을 만나고



10일 서울로 귀환하였고 4월 18일에는 설의식등 108명의 문화인이 남북회담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게 됩니다.





양 김 씨 평양회담 참가 성명



일전에 북한에서 라디오 방송으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4월 14일 평양에서 개최하겠다 하며 남쪽의



몇몇 정당과 북쪽의 몇몇 정당을 지명까지 하였으나 그 지명된 외에도 이 협상을 찬성하는 단체나



개인은 3월 이내로 연락하여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거 2월 16일부로 우리 양인 명의로 북한에 송함(送函)한 것을 접수여부의 소식도



없고 평양 라디오 방송에도 언급치 안 했으므로 이 방송이 말한바 남북정치협상은 여하한 의도로



소집되는 것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고 우리는 아무 발표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에서야 우리 양인에게



북한의 답신도 왔고 동시에 예비적 회담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양인 외에 모모 13인(좌우 합하여)



에게 따로 통지가 온 모양이다.



김일성·김두봉 양씨의 회한을 받은 후 우리 두 사람의 감상은 여하하다.



一. 제일차 회합을 평양으로 하자는 것이나, 라디오 방송시에 남한에서 여하한 제의가 있었다 하는



것을 아니한 것을 보면 이 제일차 회담도 미리 다 준비한 잔치에 참례만 하라는 것이 아닌가 의소



(疑訴)가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남북회담 요구를 한 이상 좌우간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二. 가는데 있어서는 먼저 내왕수속 절차와 그 방면에 예정해 논 프로그램 여하와 양쪽 대표의 신변보호



및 일차 회합에 성공치 못한다면 이차 삼차 내지 십여 차까지라도 기어이 남북통일을 쟁취할 의사



유무까지도 알아야 할 것이다.



三. 북조선에서 지명한 13인 외에도 누락된 정당이나 개인이 많이 있으니 어떤 정당 어떤 개인을



증가할 것을 접흡(接洽)할 것.



四. 이러므로 우리의 생각에는 먼저 그쪽에서 지명한 남쪽 인원끼리라든지 혹은 이에 찬동하는 정당



단체 개인만이라도 속히 집합하여 일체를 상의한 후 연락원 약간인을 택하여 일부 연락원은 3인 이남



내왕에 관하여 남당국과 연락을 할 것.



일부 연락원은 북조선에 가서 이상 일체를 접흡할 것. 아직은 이상만이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다.



김구·김규식



1948.4.1.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그 당시만 해도 김두봉이란 분은 그야말로 실세중의 실세였던 모양입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제가 요즈음 없는 시간을 내어 자꾸 컴퓨터에 빠저드니 대부님 글읽을시간 조차 없습니다.송구합니다.

▣ 김윤식 - 대부님 감사합니다. 백범 선생님께서 민족 통일을 위해 노심초사하신 부분은 더욱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 김주회 - 영환대부님!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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