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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만취당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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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3-04 19:05 조회1,4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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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취당기]는 소설가 김문수씨가1989년 {실천문학, 여룸호}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만취당기-2-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자 해서(楷書)로 쓰여진 한시 액자 하나가 나를 기다리



고 있었다. 병풍 한 폭의 절반쯤 되는 그 액자에는 “지지간송반 울울함만취(遲遲澗松畔 鬱鬱含晩翠)”라



는 시가 두 줄로 단정하게 올라 있었다. 서울에 올라와 있는 동향이자 같은 문중인 친척의 글씨라 했다.



아버지는 내가 책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나를 불러다 그 액자가 걸린 벽 앞에 꿇어 앉혀 놓고 시를 풀이하



기 시작했다.



“저 시냇가의 소나무는 더디고 더디게 자라지만 무성하고도 늦도록 푸르도다”라고 풀이했다. 또 아버지



는 천자문에 나오는 “비파만취(枇杷晩翠) 오동조조(梧桐早凋)”라는 시구도 알려주었다. “비파는 겨울철



에도 푸른 잎이 변하지 않지만 오동나무는 그 잎이 일찍 시든다”는 뜻이라 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는



본론을 꺼냈다. 이 시에 있는 만취나 천자문에 나오는 만취나 둘 다 똑같은 뜻잉겨. 즑(겨울)에 두 잎사귀



에 푸른빛이 변하덜 않는단 뜻이란 말여. 그러니께 우리 고향집 이름 만취당은 바루 이 만취에다 집당짤



붙인 거란 말여. 뭔 말인지 알지? 나는 아버지가 화를 냈던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매맞



은 일이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지워지지는 않았다. 진작 이렇게 가르쳐줬으면 좋았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



에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나의 반항심은 한층 더 부풀어올랐다. 아버지가 늘 술에 절어 지냈기 때문에



놀리느라고 ‘만취당(滿醉堂)’이라 했겠지 설마 그런 고상한 뜻으로 ‘만취당(晩翠堂)’이라 했겠느냐 싶었



다. 아버지는 내 마음 속을 꿰뚫기라도 한 듯 엄한 눈길을 내 얼굴에 꽂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지, 너는



핵교두 들어가지 않았을 때니께 잘 모를 티지만 고향집 사랑채에는 누(樓)가 달려 있는데 거기에 만취당



이라는 당호를 새긴 편액이 걸려 있거덩. 그래 삶덜이 우리 집을 만취당집이라구 했던 겨. 애비 얘길



알겠냐? 나는 그 얘기를 이해는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계속해 깊은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으므



로 볼 부은 소리로 한마디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때 한 말은, 어째서 오래 전에 남에게 팔아



넘긴 집을 아직까지도 내 집인 양 우리집이니 고향집이니 하느냐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그 말은 아버지



의 분통을 터뜨려 놓았다. 인석아, 팔긴 누가 팔어! 판 게 아니라 내가 그눔헌티 당한 겨, 그 도적눔한티



뺐긴 겨! 도대체 누가 그따우 주둥아릴 놀리데? 느 에미가 그러디? 격한 아버지는 주먹까지 부르르 떨었



다. 나는 굳게 입을 다불었다. 바른 대로 입을 연다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아버지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천장이 찌렁 울리도록 고함만 질렀다.



당장 나가! 꼴두 뵈기 싫응깨! 나는 잡혔다가 풀려난 토끼처럼 잽싸게 밖으로 튀었다. 그 뒤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고향을 떠나기 직전, 아버지는 고리채에 쪼들리다 못해 그 차용증서와 집문서를



뺏기다시피 해 그 집을 날린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자를 날강도라 했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날강도를 내쫓고 다시 그 집을 찾아야만 한다고 이를 갈았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꼭 되찾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정중 - 연재해 주심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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