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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풀어보고자 올립니다.<충렬공(方慶)과 동명이인 方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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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3-10 06:15 조회1,8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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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이인(同名異人) 方자慶자?





--김응기(金應箕)의 자(字)는 백봉(伯奉)이다. 정유년(丁酉年)에 급제(及第)하고 지금은 예조정랑(禮曹



正郞)이 되어 있다. 신라(新羅)의 왕족계통인 방경(方慶)의 아들이다.



--김응규(金應奎)의 자는 중성(仲聖)이다. 응기의 아우로서 의분심이 강하고 절개를 중히 여겼다. 아버지



방경이 이를 매우 사랑했다. 정유년(丁酉年) 나이 20세에 평안도(平安道)의 향공(鄕貢) 시험에 세 번 연거푸



장원을 했다. 진사(進士) 회시(會試)에 들어가 시장(試場)에서 죽으니 그 때 사람들이 애석히 여기었다.



아들 하나가 있다.





<출전 : 고전국역총서 대동야승 1/민족문화추진회/1985/pp373(師友名行錄, 南孝溫 撰)>





(참고) : 위 글중 "지금은 예조정랑이 되어있다."로 보아 김응기는 남효온과 동 시대 인물로 보이며 "찬자



(撰者) 남효온 시대에 정유년은 1477년(예종 8)에 해당합니다.





▣ 남효온(南孝溫)



--1454(단종 2)-1492(성종 23) 이조 세조 때의 생육신의 한 사람.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 행우



(杏雨), 시호는 문정(文貞), 본관은 의령, 의령부원군 남재(南在)의 5대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어려서



사육신의 충성을 보고, 1481년(성종12) 28세 때 문종의 왕후 권씨의 능(陵)인 소릉(昭陵)을 복원할 것을



상소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스스로 벼슬할 생각을 버리고 각지를 유랑하다가



병사하였다. 연산군의 갑자사화 때, 효온이 김종직의 제자요 소릉의 복위를 상소한 일이 있다하여, 이미



죽은 그의 관을 꺼내어 참시형을 하였고, 아들 세충(世忠)도 따라 사형을 받았다. 그 후 2년 만에 중종이



왕위에 오르자 이 사실을 듣고 좌승지에 추증하였고 숙종에 이르러 함안 백이산(백이산) 밑에 서산서원



(西山書院)을 세워 이맹전(李孟專), 조여(趙旅),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성담수(成聃壽) 및 김효온을



함께 배향하니 이들을 생육신이라 한다. 정종(정조?) 6년에 효온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였다.



저서 추강냉화(秋江冷話). 사우록(師友錄) "끝"





▣ 김영윤 -

▣ 김발용 -

▣ 김은회 -

▣ 김태서 -

▣ 솔내영환 -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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