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인 대종회장님과의 인터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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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3-10 21:30 조회1,552회 댓글0건본문
김태인 대종회장님과의 인터뷰 (1)
인간개발연구원 2002년 10월호에 김태인 대종회장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회장님의 생각과 마음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2회에 걸쳐 나누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인간개발연구원 (2002년 10월호)
*표지인물 김태인 삼부해운 회장
해운산업에 바친 50년 세월동안 "기업은 사람으로부터"라는 철학을 가지고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인 김 회장은 지금까지 한국해양소년단총연맹 부총재, 국제로타리 총재, 세계도덕재무장(MRA) 한국본부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수십억의 장학금과 기부금을 쾌척하였다. 한국기업의 사회참여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어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김태인 회장을 만나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관련기사 10-13면)
【인터뷰-자랑스런 회원】
삼부해운 김태인 회장
■ 해운산업에 바친 외길 50년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해양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자나깨나 바다만 생각하고 바다를 활용할 줄 알아야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해운산업에 바친 50년. 그 헌신과 정열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무역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던 삼부해운의 김태인 회장을 추석을 앞두고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온유함과 겸손함이 온몸에서 배어 나온다. 어느 분야에서도 선구자는 외롭고 힘들다. 우리나라 해운업의 산증인인 김 회장은 다시 태어나도 바다와 인연을 맺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훌륭한 해양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장보고 대사와 같은 훌륭한 조상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해양대국으로 발전해야 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은 사람으로부터" 라는 철학을 가지고 경영을 해 온 덕택에 지금까지 단 한 건의 노사분규도 없었다.
산업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김 회장은 많은 상과 훈장을 받았다. 석탑산업훈장은 기업인으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청소년의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받은 국민훈장 목련장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해양소년단 총연맹 부총재, 국제로타리 3640지구 총재, 세계도덕재무장(MRA) 한국본부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수십억의 장학금과 기부금을 쾌척하였다. 김 회장은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오히려 더 큰 보람을 얻는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장학사업과 사회활동에 참여하겠다고 밝힌다. 한국기업의 사회참여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어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김태인 회장을 만나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대담: 양병무 인간개발연구원장)
문1) 우리 나이로 금년 75세이신데 참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이처럼 건강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지요.
답) 우선 건강하게 보아주니 고맙네요. 요즈음은 세월이 너무 빨라 정말 유수처럼 흘러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집착하거나 민감하게 반응을 하지 않아요. 청춘이란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보람있을 것이다."고 기대하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다보니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조상들의 자연건강법에 관심을 갖고 푹신푹신한 벼게와 침대 대신에 목침과 경침을 사용하고 있는데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문2)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이기 때문에 바다를 잘 관리하고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께서는 평생을 해운산업의 선구자로서 해운업에 몸바쳐 오셨는데 바다에 관한 평소의 철학을 말씀해 주시지요.
답) 21세기는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바다는 지구표면의 70%를 차지하고, 물동량의 98%를 실어 나를 뿐만 아니라 풍부한 어족과 방대한 광물자원을 가지고 있죠. 특히 우리나라는 반도국가이기 때문에 바다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다라도 신라 때 장보고 대사와 같이 바다를 주름잡았던 조상들의 전통과 기상이 우리 몸 속에 흐르고 있지요. 저 역시 점선으로 해양왕국을 건설하였던 장보고 대사의 바다 정신을 본받아 개척정신과 모험심이 생겼습니다.
문3) 회장님께서는 67년도에 국내 케니컬 탱크선을 만들어 화학제품 수출입 운송을 개척하여 우리나라가 오늘날 해양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어려운 여건에서 해운업에 뛰어드는 결단을 하시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시지요.
답) 저는 52년도에 해양대학교를 졸업한후 해운항만청 전신인 해사국, 대한해운공사, 대한유조선 등에서 15년정도 봉급자 생활을 했지요.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수출입국을 부르짖으면서 합판이 주요 수출품목이 되었으나 접착제 만드는데 필요한 화학약품을 일본으로부터 3일이 멀다하고 수입해 오는 것을 보고, 우리 손으로 케미컬 탱크선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마침 해군에서 퇴역시키는 배를 불하받아 해운업을 처음으로 시작했지요. 수출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가 열심히 뛰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특별히 일본한테 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외길 50년을 걸어오면서 바다와 맺은 인연은 결코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가 살 길은 수출뿐이라는 수출입국을 부르짖을 때 해양왕국이 되어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해운업에 겁 없이 뛰어들었는데 회사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하고, 지금까지 노사간에 단 한 건의 분규도 없이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임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4) 회장님은 전문경영인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셨고, 특히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여 "기업은 사람으로부터"라는 경영철학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번 기회에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답) "기업은 사람이다.", "인사가 만사다." 는 말을 저는 중요한 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지요. 그래서 저는 늘 "종업원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는 자세로 일해 왔습니다. 국제로타리 클럽의 기본정신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 라는 철학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업은 이윤극대화가 일차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운데 사람을 중시하는 정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말이 易地思之와 平常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 정신은 경영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지요. 또한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자세인 평상심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5) 회장님께서는 청소년들의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셨습니다. 회장님은 지금까지 장학사업에 수십억을 기부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활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실천하신 배경을 설명해 주시지요.
답) 저는 대전사범학교와 해양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정부의 혜택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늘 마음에 "내가 여유가 생기면 장학사업을 하여 내가 진 사랑의 빚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88년 추석때 고향(⇒충남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광터골)에 내려갔는데 시골 형님이 마을 앞 길이 포장이 되지 않아 눈이나 비가 조금만 와도 진흙탕이 되어 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우니 "아우가 도와줄 수 없는가" 라고 묻더군요. 저는 즉석에서 "형님, 제가 하겠습니다." 고 대답하고 2000만원을 지원하여 도로가 완성되었습니다.
도로를 개통하는 날 마을 축하 잔치를 하는데 그렇게들 좋아할 수가 없더군요. 더욱 놀란 것은 저의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 공적비를 세운다고 하기에 제가 극구 말렸지요.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숙원사업을 풀어 주었는데 고향사람들의 사랑을 이해해 달라며 부끄럽게도 동네어귀에 공적비를 세워 주었습니다.
저는 이때 사회봉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죠. 그리고 봉사 자체가 저에게 큰 기쁨을 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고향분들에게 "제가 고향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이냐" 고 여쭈어보니 당시에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손을 꼽을 정도이므로 장학금을 주면 좋겠다" 고 하기에 10년동안 등록금을 지원하게 되었지요. 그것이 제가 사회봉사 활동에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부분은 내일 소개하겠습니다.
▣ 김발용 -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자랑스럽고 훌륭하신 분을 회장님으로 모시게 되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 김윤만 - 해상왕 장보고를 연상시키실 뿐 아니라 일본한테 져서는 안 된다는 제2의 독립정신으로 생활하신 삶을 사신 듯 합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인간개발연구원 2002년 10월호에 김태인 대종회장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회장님의 생각과 마음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2회에 걸쳐 나누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인간개발연구원 (2002년 10월호)
*표지인물 김태인 삼부해운 회장
해운산업에 바친 50년 세월동안 "기업은 사람으로부터"라는 철학을 가지고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인 김 회장은 지금까지 한국해양소년단총연맹 부총재, 국제로타리 총재, 세계도덕재무장(MRA) 한국본부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수십억의 장학금과 기부금을 쾌척하였다. 한국기업의 사회참여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어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김태인 회장을 만나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관련기사 10-13면)
【인터뷰-자랑스런 회원】
삼부해운 김태인 회장
■ 해운산업에 바친 외길 50년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해양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자나깨나 바다만 생각하고 바다를 활용할 줄 알아야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해운산업에 바친 50년. 그 헌신과 정열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무역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던 삼부해운의 김태인 회장을 추석을 앞두고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온유함과 겸손함이 온몸에서 배어 나온다. 어느 분야에서도 선구자는 외롭고 힘들다. 우리나라 해운업의 산증인인 김 회장은 다시 태어나도 바다와 인연을 맺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훌륭한 해양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장보고 대사와 같은 훌륭한 조상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해양대국으로 발전해야 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은 사람으로부터" 라는 철학을 가지고 경영을 해 온 덕택에 지금까지 단 한 건의 노사분규도 없었다.
산업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김 회장은 많은 상과 훈장을 받았다. 석탑산업훈장은 기업인으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청소년의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받은 국민훈장 목련장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해양소년단 총연맹 부총재, 국제로타리 3640지구 총재, 세계도덕재무장(MRA) 한국본부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수십억의 장학금과 기부금을 쾌척하였다. 김 회장은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오히려 더 큰 보람을 얻는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장학사업과 사회활동에 참여하겠다고 밝힌다. 한국기업의 사회참여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어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김태인 회장을 만나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대담: 양병무 인간개발연구원장)
문1) 우리 나이로 금년 75세이신데 참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이처럼 건강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지요.
답) 우선 건강하게 보아주니 고맙네요. 요즈음은 세월이 너무 빨라 정말 유수처럼 흘러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집착하거나 민감하게 반응을 하지 않아요. 청춘이란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보람있을 것이다."고 기대하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다보니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조상들의 자연건강법에 관심을 갖고 푹신푹신한 벼게와 침대 대신에 목침과 경침을 사용하고 있는데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문2)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이기 때문에 바다를 잘 관리하고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께서는 평생을 해운산업의 선구자로서 해운업에 몸바쳐 오셨는데 바다에 관한 평소의 철학을 말씀해 주시지요.
답) 21세기는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바다는 지구표면의 70%를 차지하고, 물동량의 98%를 실어 나를 뿐만 아니라 풍부한 어족과 방대한 광물자원을 가지고 있죠. 특히 우리나라는 반도국가이기 때문에 바다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다라도 신라 때 장보고 대사와 같이 바다를 주름잡았던 조상들의 전통과 기상이 우리 몸 속에 흐르고 있지요. 저 역시 점선으로 해양왕국을 건설하였던 장보고 대사의 바다 정신을 본받아 개척정신과 모험심이 생겼습니다.
문3) 회장님께서는 67년도에 국내 케니컬 탱크선을 만들어 화학제품 수출입 운송을 개척하여 우리나라가 오늘날 해양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어려운 여건에서 해운업에 뛰어드는 결단을 하시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시지요.
답) 저는 52년도에 해양대학교를 졸업한후 해운항만청 전신인 해사국, 대한해운공사, 대한유조선 등에서 15년정도 봉급자 생활을 했지요.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수출입국을 부르짖으면서 합판이 주요 수출품목이 되었으나 접착제 만드는데 필요한 화학약품을 일본으로부터 3일이 멀다하고 수입해 오는 것을 보고, 우리 손으로 케미컬 탱크선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마침 해군에서 퇴역시키는 배를 불하받아 해운업을 처음으로 시작했지요. 수출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가 열심히 뛰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특별히 일본한테 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외길 50년을 걸어오면서 바다와 맺은 인연은 결코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가 살 길은 수출뿐이라는 수출입국을 부르짖을 때 해양왕국이 되어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해운업에 겁 없이 뛰어들었는데 회사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하고, 지금까지 노사간에 단 한 건의 분규도 없이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임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4) 회장님은 전문경영인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셨고, 특히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여 "기업은 사람으로부터"라는 경영철학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번 기회에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답) "기업은 사람이다.", "인사가 만사다." 는 말을 저는 중요한 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지요. 그래서 저는 늘 "종업원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는 자세로 일해 왔습니다. 국제로타리 클럽의 기본정신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 라는 철학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업은 이윤극대화가 일차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운데 사람을 중시하는 정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말이 易地思之와 平常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 정신은 경영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지요. 또한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자세인 평상심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5) 회장님께서는 청소년들의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셨습니다. 회장님은 지금까지 장학사업에 수십억을 기부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활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실천하신 배경을 설명해 주시지요.
답) 저는 대전사범학교와 해양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정부의 혜택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늘 마음에 "내가 여유가 생기면 장학사업을 하여 내가 진 사랑의 빚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88년 추석때 고향(⇒충남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광터골)에 내려갔는데 시골 형님이 마을 앞 길이 포장이 되지 않아 눈이나 비가 조금만 와도 진흙탕이 되어 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우니 "아우가 도와줄 수 없는가" 라고 묻더군요. 저는 즉석에서 "형님, 제가 하겠습니다." 고 대답하고 2000만원을 지원하여 도로가 완성되었습니다.
도로를 개통하는 날 마을 축하 잔치를 하는데 그렇게들 좋아할 수가 없더군요. 더욱 놀란 것은 저의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 공적비를 세운다고 하기에 제가 극구 말렸지요.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숙원사업을 풀어 주었는데 고향사람들의 사랑을 이해해 달라며 부끄럽게도 동네어귀에 공적비를 세워 주었습니다.
저는 이때 사회봉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죠. 그리고 봉사 자체가 저에게 큰 기쁨을 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고향분들에게 "제가 고향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이냐" 고 여쭈어보니 당시에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손을 꼽을 정도이므로 장학금을 주면 좋겠다" 고 하기에 10년동안 등록금을 지원하게 되었지요. 그것이 제가 사회봉사 활동에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부분은 내일 소개하겠습니다.
▣ 김발용 -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자랑스럽고 훌륭하신 분을 회장님으로 모시게 되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 김윤만 - 해상왕 장보고를 연상시키실 뿐 아니라 일본한테 져서는 안 된다는 제2의 독립정신으로 생활하신 삶을 사신 듯 합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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