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만취당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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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3-11 18:02 조회1,446회 댓글0건본문
이 [만취당기]는 소설가 김문수씨가1989년 {실천문학, 여룸호}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만취당기[6]
나는 아내 생각을 지우며 계속 병나팔을 불었다. 병이 바닥났을 때는 빈속에 마신 술이 고스란히
전신으로 펴져 알근알근했다. 그런 술기운과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누적된 피로가 화톳불에 녹아 흘렀다.
시끄럽기 짝이 없는 새소리에 잠이 깨자 숲을 뚫고 온 햇귀가 눈을 쏘았다. 그리고 잠시도 이를 물 수
없도록 턱이 떨렸다. 이렇게 추운데도 용케 잠을 잤었구나. 화톳불은 이내 괄게 타올랐으며 그 불기운이
다시 내 눈꺼풀을 처지게 했다. 고막을 쪼아대는 듯 한 새소리도 차츰차츰 귀에서 멀어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이변에는 인기척이 겉잠을 깨웠다. 눈을 떠보니 마을 쪽에서 예닐곱쯤 되는 아이들이
왁자하니 떠들어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학생들이었다. 그들도 나를 발견하고 일시에 떠들기를
멈추었다. 그들의 눈에 경계의 빛을 가득 담고 내 곁을 지날 때 나는 짐짓 여유를 보이기 위해 먹다
남은 오징어를 질겅거리며 말을 걸었다.
“벌써 학교에들 가는구나. 여긴 학교가 어디에 있니?”
내 질문에 한 학생이 읍내에 있다는 짤막한 대답을 보내왔다. 무리 중에서 제일 키가 큰 학생이었다.
“혹시 너희들 중에 만취당에 사는 학생이 있니?”
내 두 번째 질문에 학생아이들은 서로 눈길을 나누기에 바빴다.
“만취당에 사는 학생이 없느냐구.”
나는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나 싶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까 그 키 큰 학생이 대답했다.
“여긴 동촌리유. 만치당이란 데는 읎어유.”
“동네 이름이 아니라 집 이름이야. 만, 취, 당!”
키 큰 학생이 일행을 휘둘러보자 그들은 모두가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우린 모르겠어유.”
학생들이 멈췄던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문득 왜가리 생각이 나서 그들의 등에다 대고 물었다.
“어째서 왜가리가 안 뵈지?”
“왜가리 사진 박으러 오셨나유?”
키 큰 학생이 되돌아서며 대답 대신 물었다.
“아냐. 그냥 물어본 거야. 이 숲에 왜가리가 많았잖니.”
“많았쥬. 하지만 지금은 읎어유. 삼 년 전부터 오덜 않아유.”
“삼 년 전부터? 왜?”
나는 필요 이상으로 놀란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저 우에 공장이 들어섰걸랑유. 그래서 냇물이 썩었지유. 그리구 농약때미 논바닥에두 먹을 게 읎구유.”
그때 무리 중에 누군가가 버스가 온다고 소리를 질렀고 그것을 신호로 학생들은 일시에 국도변의
정류장을 향해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동안 화톳불이 다시 사위기 시작했으므로 나도 그들에게서
눈길을 거두어 부지런히 삭정이를 꺾어 얹었다. 삭정이들이 제 몸에 불꽃을 달기 위해 피워대는 연기가
길 찬 숲을 누비며 흘러 퍼졌다. 그 연기를 지켜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짜식들, 만취당을 모르다니.
정승을 둘씩이나 태어나게 한 그 유명한 집을 모르다니. 내 눈앞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등뼈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서 좌필(左筆)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록 좌필 일지라도
아버지는 달필이었다. 그 달필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면 아버지는 언제나 담배부터 뽑아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토록 맛있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오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이미 계약을 끝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 아버지가 이곳에 내려오시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흔들리는 내 믿음을 꼿꼿하게 세우기 위해 도리질을 했다. 아버지가 통장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는
것은 평생 소원인 만취당을 되찾기 위해 이곳 고향에 내려왔음을 뜻하는 것이지 달리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아버지가 그런 큰일을 계획하고 집을 나가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는 것이
수상쩍기는 했으나 따지고 보면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순전히 자신의 과오로 남의
손에 넘긴 집이니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되찾고 말겠다는 그런 오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오 년 전, 내가 행정고시에 합격하자 마치 천하라도 얻은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거봐라. 이젠 니 앞 길이 확 틘 거여. 넌 장관두, 총리두 될 수 있능겨. 그게 바루
정승벼슬 아니냐. 그게 다 니가 만취당에서 태어났기 때문잉겨.
그 명당자리 집터 음덕잉겨!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 김창우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윤만 -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만취당기[6]
나는 아내 생각을 지우며 계속 병나팔을 불었다. 병이 바닥났을 때는 빈속에 마신 술이 고스란히
전신으로 펴져 알근알근했다. 그런 술기운과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누적된 피로가 화톳불에 녹아 흘렀다.
시끄럽기 짝이 없는 새소리에 잠이 깨자 숲을 뚫고 온 햇귀가 눈을 쏘았다. 그리고 잠시도 이를 물 수
없도록 턱이 떨렸다. 이렇게 추운데도 용케 잠을 잤었구나. 화톳불은 이내 괄게 타올랐으며 그 불기운이
다시 내 눈꺼풀을 처지게 했다. 고막을 쪼아대는 듯 한 새소리도 차츰차츰 귀에서 멀어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이변에는 인기척이 겉잠을 깨웠다. 눈을 떠보니 마을 쪽에서 예닐곱쯤 되는 아이들이
왁자하니 떠들어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학생들이었다. 그들도 나를 발견하고 일시에 떠들기를
멈추었다. 그들의 눈에 경계의 빛을 가득 담고 내 곁을 지날 때 나는 짐짓 여유를 보이기 위해 먹다
남은 오징어를 질겅거리며 말을 걸었다.
“벌써 학교에들 가는구나. 여긴 학교가 어디에 있니?”
내 질문에 한 학생이 읍내에 있다는 짤막한 대답을 보내왔다. 무리 중에서 제일 키가 큰 학생이었다.
“혹시 너희들 중에 만취당에 사는 학생이 있니?”
내 두 번째 질문에 학생아이들은 서로 눈길을 나누기에 바빴다.
“만취당에 사는 학생이 없느냐구.”
나는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나 싶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까 그 키 큰 학생이 대답했다.
“여긴 동촌리유. 만치당이란 데는 읎어유.”
“동네 이름이 아니라 집 이름이야. 만, 취, 당!”
키 큰 학생이 일행을 휘둘러보자 그들은 모두가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우린 모르겠어유.”
학생들이 멈췄던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문득 왜가리 생각이 나서 그들의 등에다 대고 물었다.
“어째서 왜가리가 안 뵈지?”
“왜가리 사진 박으러 오셨나유?”
키 큰 학생이 되돌아서며 대답 대신 물었다.
“아냐. 그냥 물어본 거야. 이 숲에 왜가리가 많았잖니.”
“많았쥬. 하지만 지금은 읎어유. 삼 년 전부터 오덜 않아유.”
“삼 년 전부터? 왜?”
나는 필요 이상으로 놀란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저 우에 공장이 들어섰걸랑유. 그래서 냇물이 썩었지유. 그리구 농약때미 논바닥에두 먹을 게 읎구유.”
그때 무리 중에 누군가가 버스가 온다고 소리를 질렀고 그것을 신호로 학생들은 일시에 국도변의
정류장을 향해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동안 화톳불이 다시 사위기 시작했으므로 나도 그들에게서
눈길을 거두어 부지런히 삭정이를 꺾어 얹었다. 삭정이들이 제 몸에 불꽃을 달기 위해 피워대는 연기가
길 찬 숲을 누비며 흘러 퍼졌다. 그 연기를 지켜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짜식들, 만취당을 모르다니.
정승을 둘씩이나 태어나게 한 그 유명한 집을 모르다니. 내 눈앞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등뼈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서 좌필(左筆)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록 좌필 일지라도
아버지는 달필이었다. 그 달필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면 아버지는 언제나 담배부터 뽑아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토록 맛있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오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이미 계약을 끝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 아버지가 이곳에 내려오시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흔들리는 내 믿음을 꼿꼿하게 세우기 위해 도리질을 했다. 아버지가 통장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는
것은 평생 소원인 만취당을 되찾기 위해 이곳 고향에 내려왔음을 뜻하는 것이지 달리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아버지가 그런 큰일을 계획하고 집을 나가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는 것이
수상쩍기는 했으나 따지고 보면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순전히 자신의 과오로 남의
손에 넘긴 집이니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되찾고 말겠다는 그런 오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오 년 전, 내가 행정고시에 합격하자 마치 천하라도 얻은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거봐라. 이젠 니 앞 길이 확 틘 거여. 넌 장관두, 총리두 될 수 있능겨. 그게 바루
정승벼슬 아니냐. 그게 다 니가 만취당에서 태어났기 때문잉겨.
그 명당자리 집터 음덕잉겨!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 김창우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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