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둘째아들 김흔장군 10 --- 1997년 5월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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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3-20 20:50 조회1,821회 댓글0건본문
충렬공 둘째아들 김흔장군 10 --- 1997년 5월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
충남 연기군 지역에서의 연기대첩 연구에 우리 문중에서
충청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김재붕(안렴사공파),
안동김씨 연기군종친회 회장 김해연(안렴사공파),
총무 김은회(익원공파),
김재산(전서공파) 종친님 등 여러분이 깊이 관여하시어 자료발굴, 책자발간, 대첩비 건립등 김흔장군과 연기대첩 연구에 큰 공헌을 하신 바 있습니다.
1997년 5월 발간된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책자의 발간사를 참고로 소개합니다.
▣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1997.5, 안동김씨연기군종친회)
발간사
역사란 후대에 교훈을 줄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인정되고 소중한 것이지, 후대에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다면 이는 나무렇게나 낙서한 雜記에 불과한 것이리라. 무릇 국가에는 國史가 있고, 가문에는 宗史가 있고, 개인에게는 一生史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안동김문 특히 연기지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선조님들께서 어떤 이유, 어떤 경로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 선조님들의 삶의 발자취는 어떠했으며 그 후손인 우리는 선조님들의 거룩하고 숭고한 뜻을 얼마나 소중하게 계승 발전시켜 왔는지를 조명해 보고 종친 모두가 반성할 부분과 더욱 승상할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같이 공유하고, 고민해 보고자 이 소책자를 발간하기에 이른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연기지역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종친 모두는 참으로 부끄러움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중의 한 분인 충렬공 할아버지의 둘째 자제분인 흔자 할아버지께서는 고려말 장군으로서 원나라 합단적이 압록강을 건너 침범하여 연기지역까지 침노했을 때 지금의 서면소재 정좌산 대첩에서 섬멸함으로써 나라에 큰 공을 세우신 사실이 <고려사열전>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역사 속에 사장된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연기군 문화원장, 연기군 노인회장등 지역에 뜻있는 분을 비롯한 종인 모두가 인식을 같이 한 바탕 위에서 학계와 관계 요로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고, 30여년 전 사학자인 재붕 종친이 연기군지에 발표한 논문과 <고려사> 정사를 근거로 1993년 공주대학교 역사학자 이해준, 윤용혁 교수 등에게 역사적 기록과 현장조사 등을 통한 객관적인 연구를 의뢰하였고 이미 여러 종친께서 소장하고 계신 <연기대첩 연구>라는 논문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각고의 노력으로 이제 국가예산을 할당받아 흔자 할아버지의 대첩지를 성역화하는 기초 작업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우리 안동김문은 충렬공의 후예들로 충렬공 12대손인 진천공(=김완) 할아버지께서 소정면 운당리에,
충렬공 현손인 전서공(=김성목) 할아버지께서 전의면 양곡리에,
충렬공 11대손인 진사공(=김함) 할아버지께서 금남면 봉기리에,
충렬공 14대손인 용양위부호군(=?) 할아버지께서 금남면 달전리에 각각 낙향, 정착하신 이래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지금은 조치원을 비롯한 전의면, 소정면, 동면, 금남면 등지에 대단위 집성촌을 이루고 살게 되었던바, 이와 같은 사실이 흔자 할아버지의 대첩지라는 이유가 정착의 큰 동기가 되었음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에 우리 연기군 종친회에서는 이러한 사실과 종친들이 삶의 발자취를 모으기 위하여 공주대학교 사학과 이해준 교수에게 사적 고증과 사실 기록의 정리를 부탁하였고, 마침내 그 결과가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이라는 연기지역 宗史로 발간되게 되었다.
이 책을 펴내기까지, 4년여 기간동안 수백년 동안이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료와 유적지 그리고 유물 등을 찾아 조사 분석하고 고증을 통해 연구해 주신 이해준 교수와 그 자료조사, 정리를 도와준 학생제군께 연기지역 종친 모두는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연기대첩 연구를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 자신의 일처럼 성과 열을 다해 주신 연기군 문화원장 장영 선생, 연기군 노인회장 이상은 선생과 임영수 박물관장에게도 감사드리는 바이다.
특히 전서공파 在山 종인은 이 책자를 편집하는데 소요된 재원 500만원을 흔쾌히 부담하면서 전국에 거주하는 전서공 후손에게는 한 분도 빠짐없이 배부토록 요청한 바 있어 더욱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서공 제종친들께서는 재산 종인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해주기 바란다.
한편 이 결실을 맺기까지 개인적 일들을 물리치고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연기지역 종친회 총무 은회 종친을 비롯한 각지역 이사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 지면을 통하여 우리 종친 모두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선조님들의 숭고하고 거룩한 얼과 정신을 이어받아 숭조사상과 그 위업을 계승발전 시키는 데 배전의 노력과 정성이 모아지기를 간곡하게 당부드리는 바이다.
우리 안동김문은 예부터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크고 작은 많은 일을 하셨고 충신의 가문이었음을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우리의 자긍심을 더욱 고양시켜 나가기 위해 모처럼 단합된 우리 종친간의 우애와 협력 정신이 자자손손에 길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종친제위에 간곡하게 호소해 두고자 한다.
이 조그만 사업이 우리 종친 모두의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종친의 소중함을 크게 발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단합하는 계기기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1997. 5
안동김씨 연기군종친회 회장 김해연 배
p31
김흔장군은 1309년(충선왕1) 5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조선개국후에 삼중대광 도첨의사사, 상락군에 봉해졌다.
아들은 판관공 承固만을 두었으며 그의 직계는 무후하여 사위인 金台權이 봉사하였고, 두 딸을 두었는데 모두 당대의 명문가와 혼척을 맺었다. 첫째딸은 여흥민씨 閔宗孺의 아들인 閔적(밀직사사)에게, 둘째딸은 평양조씨 趙仁規의 아들인 趙璉(찬성)에게 각각 시집보냈다.
P45
연기지역에서 안동김씨의 위상은 현재는 그렇게 높은 편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호서읍지>(1871년) 姓氏조에는 안동김씨가 전의현 지역에서 원거성씨 (오래전부터 터를 잡아 대대로 살아온 성씨)로 전의이씨에 이어 두 번째로 기록되고 있으며, 수록 인물수도 19명으로 가장 많다.
그런가하면 별도의 儒賢조에는 김성목, 김휴, 김익겸, 김광순(사준 7세손) 등 모두 30여 명이 기록되어 있고,
충절을 행동으로 보인 인물들이 기록된 節義조에도 김제정, 김기가 기재되어 있다.
孝行으로는 김익정, 김사준, 烈女로는 김헌의 처 남양홍씨가 기록되어 있다.
-----
특히 연기군 안동김씨 종친회장 海演은 80세의 고령임에도 종인들의 화합과 결속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였고, 4년 여에 걸친 김흔 장군의 유서가 깃든 연기대첩의 역사적 조명작업에 전심전력하여 마침내 김흔장군의 연기대첩지 성역화 작업도 그 기초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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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거지를 보면 장자인 판서공(=김선)의 후예인 전서공파는 전의 학당,
3자인 문영공(=김순)의 계통인 제학공파는 천원군 백전(잣밭),
안렴사공파는 동면 내판리, 금남면 봉기리, 소정면 운당리,
익원공파는 동면 내판리와 청주 강서 궁현 등이다.
이들 지역에는 조상의 숨결을 기리는 유적과 역사상에 뚜렷한 행적을 보였던 후손들의 유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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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공파의 파조가 되시는 성목은 감찰사 장령을 역임했던 구의 2자중 장남으로 태어나 공조전서를 역임하였다. 묘는 전동면 미곡리 학당에 있으며, 이곳에는 묘소를 실전한 부친 장령공 구의 단비도 건립되어 있다. 연기대첩에 공을 세운 김흔의 연기와의 인연을 제한다면, 성목의 장자인 휴는 전서공파 전의 입향조이자, 연기지역에 연고를 가진 최초의 안동김씨 인물이 된다.
그러면 왜 전서공과 그의 아들 휴가 전의 지역에 터를 잡고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을까? 현재로서 우리는 그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전서공의 백증조가 되는 김흔장군이 연기대첩에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던 인연도 결코 배제하여서는 곤란할 듯하다.
<대종회보 제55호, 1997년 1월>
在鵬씨 충청남도 문화상 수상
95년도에는 연기군민대상 수상
안렴사공 19대손인 在鵬씨께서는 지난 1996년도 충청남도 문화상 수상자 선정에서 학술부문에 선정되어 1996년 12월 2일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수상식을 가졌는데 많은 유명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제40회충청남도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 96년 12월 7일에는 서울신문사에서 주최하고 문화체육부에서 후원한 향토문화대상 전통문화 부문에 선정되어 수상하였으며, 95년도에는 지역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이 커 연기군민대상을 받은 사실도 있다. 이 분의 약력과 공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약력
1922년 8월 9일생
1943년 3월 연희전문학교 문과 졸업
1945년 11월 조치원 공립고등여학교 교사
1947년 4월 대전공립공업중학교 교사
1989년 9월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1990년 3월 ∼현재 연기군 향토유적보호위원회 위원
1993년 1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공적개요
30여 년간을 향리에 묻혀 오직 민족사와 향토사 연구에 전념하여 오면서 광개토대왕의 비문연구 및 신라, 고구려, 일본에 끼친 백제사 연구와 연기향토사 연구논문 등 40여편을 발표하여 민족사관의 주체성 확립과 향토사 정립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으며,
노령에도 불구하고 충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연기군 향토사 연구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왕성한 연구활동으로 후학의 귀감이 됨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윤식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충남 연기군 지역에서의 연기대첩 연구에 우리 문중에서
충청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김재붕(안렴사공파),
안동김씨 연기군종친회 회장 김해연(안렴사공파),
총무 김은회(익원공파),
김재산(전서공파) 종친님 등 여러분이 깊이 관여하시어 자료발굴, 책자발간, 대첩비 건립등 김흔장군과 연기대첩 연구에 큰 공헌을 하신 바 있습니다.
1997년 5월 발간된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책자의 발간사를 참고로 소개합니다.
▣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1997.5, 안동김씨연기군종친회)
발간사
역사란 후대에 교훈을 줄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인정되고 소중한 것이지, 후대에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다면 이는 나무렇게나 낙서한 雜記에 불과한 것이리라. 무릇 국가에는 國史가 있고, 가문에는 宗史가 있고, 개인에게는 一生史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안동김문 특히 연기지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선조님들께서 어떤 이유, 어떤 경로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 선조님들의 삶의 발자취는 어떠했으며 그 후손인 우리는 선조님들의 거룩하고 숭고한 뜻을 얼마나 소중하게 계승 발전시켜 왔는지를 조명해 보고 종친 모두가 반성할 부분과 더욱 승상할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같이 공유하고, 고민해 보고자 이 소책자를 발간하기에 이른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연기지역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종친 모두는 참으로 부끄러움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중의 한 분인 충렬공 할아버지의 둘째 자제분인 흔자 할아버지께서는 고려말 장군으로서 원나라 합단적이 압록강을 건너 침범하여 연기지역까지 침노했을 때 지금의 서면소재 정좌산 대첩에서 섬멸함으로써 나라에 큰 공을 세우신 사실이 <고려사열전>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역사 속에 사장된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연기군 문화원장, 연기군 노인회장등 지역에 뜻있는 분을 비롯한 종인 모두가 인식을 같이 한 바탕 위에서 학계와 관계 요로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고, 30여년 전 사학자인 재붕 종친이 연기군지에 발표한 논문과 <고려사> 정사를 근거로 1993년 공주대학교 역사학자 이해준, 윤용혁 교수 등에게 역사적 기록과 현장조사 등을 통한 객관적인 연구를 의뢰하였고 이미 여러 종친께서 소장하고 계신 <연기대첩 연구>라는 논문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각고의 노력으로 이제 국가예산을 할당받아 흔자 할아버지의 대첩지를 성역화하는 기초 작업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우리 안동김문은 충렬공의 후예들로 충렬공 12대손인 진천공(=김완) 할아버지께서 소정면 운당리에,
충렬공 현손인 전서공(=김성목) 할아버지께서 전의면 양곡리에,
충렬공 11대손인 진사공(=김함) 할아버지께서 금남면 봉기리에,
충렬공 14대손인 용양위부호군(=?) 할아버지께서 금남면 달전리에 각각 낙향, 정착하신 이래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지금은 조치원을 비롯한 전의면, 소정면, 동면, 금남면 등지에 대단위 집성촌을 이루고 살게 되었던바, 이와 같은 사실이 흔자 할아버지의 대첩지라는 이유가 정착의 큰 동기가 되었음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에 우리 연기군 종친회에서는 이러한 사실과 종친들이 삶의 발자취를 모으기 위하여 공주대학교 사학과 이해준 교수에게 사적 고증과 사실 기록의 정리를 부탁하였고, 마침내 그 결과가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이라는 연기지역 宗史로 발간되게 되었다.
이 책을 펴내기까지, 4년여 기간동안 수백년 동안이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료와 유적지 그리고 유물 등을 찾아 조사 분석하고 고증을 통해 연구해 주신 이해준 교수와 그 자료조사, 정리를 도와준 학생제군께 연기지역 종친 모두는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연기대첩 연구를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 자신의 일처럼 성과 열을 다해 주신 연기군 문화원장 장영 선생, 연기군 노인회장 이상은 선생과 임영수 박물관장에게도 감사드리는 바이다.
특히 전서공파 在山 종인은 이 책자를 편집하는데 소요된 재원 500만원을 흔쾌히 부담하면서 전국에 거주하는 전서공 후손에게는 한 분도 빠짐없이 배부토록 요청한 바 있어 더욱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서공 제종친들께서는 재산 종인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해주기 바란다.
한편 이 결실을 맺기까지 개인적 일들을 물리치고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연기지역 종친회 총무 은회 종친을 비롯한 각지역 이사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 지면을 통하여 우리 종친 모두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선조님들의 숭고하고 거룩한 얼과 정신을 이어받아 숭조사상과 그 위업을 계승발전 시키는 데 배전의 노력과 정성이 모아지기를 간곡하게 당부드리는 바이다.
우리 안동김문은 예부터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크고 작은 많은 일을 하셨고 충신의 가문이었음을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우리의 자긍심을 더욱 고양시켜 나가기 위해 모처럼 단합된 우리 종친간의 우애와 협력 정신이 자자손손에 길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종친제위에 간곡하게 호소해 두고자 한다.
이 조그만 사업이 우리 종친 모두의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종친의 소중함을 크게 발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단합하는 계기기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1997. 5
안동김씨 연기군종친회 회장 김해연 배
p31
김흔장군은 1309년(충선왕1) 5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조선개국후에 삼중대광 도첨의사사, 상락군에 봉해졌다.
아들은 판관공 承固만을 두었으며 그의 직계는 무후하여 사위인 金台權이 봉사하였고, 두 딸을 두었는데 모두 당대의 명문가와 혼척을 맺었다. 첫째딸은 여흥민씨 閔宗孺의 아들인 閔적(밀직사사)에게, 둘째딸은 평양조씨 趙仁規의 아들인 趙璉(찬성)에게 각각 시집보냈다.
P45
연기지역에서 안동김씨의 위상은 현재는 그렇게 높은 편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호서읍지>(1871년) 姓氏조에는 안동김씨가 전의현 지역에서 원거성씨 (오래전부터 터를 잡아 대대로 살아온 성씨)로 전의이씨에 이어 두 번째로 기록되고 있으며, 수록 인물수도 19명으로 가장 많다.
그런가하면 별도의 儒賢조에는 김성목, 김휴, 김익겸, 김광순(사준 7세손) 등 모두 30여 명이 기록되어 있고,
충절을 행동으로 보인 인물들이 기록된 節義조에도 김제정, 김기가 기재되어 있다.
孝行으로는 김익정, 김사준, 烈女로는 김헌의 처 남양홍씨가 기록되어 있다.
-----
특히 연기군 안동김씨 종친회장 海演은 80세의 고령임에도 종인들의 화합과 결속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였고, 4년 여에 걸친 김흔 장군의 유서가 깃든 연기대첩의 역사적 조명작업에 전심전력하여 마침내 김흔장군의 연기대첩지 성역화 작업도 그 기초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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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거지를 보면 장자인 판서공(=김선)의 후예인 전서공파는 전의 학당,
3자인 문영공(=김순)의 계통인 제학공파는 천원군 백전(잣밭),
안렴사공파는 동면 내판리, 금남면 봉기리, 소정면 운당리,
익원공파는 동면 내판리와 청주 강서 궁현 등이다.
이들 지역에는 조상의 숨결을 기리는 유적과 역사상에 뚜렷한 행적을 보였던 후손들의 유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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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공파의 파조가 되시는 성목은 감찰사 장령을 역임했던 구의 2자중 장남으로 태어나 공조전서를 역임하였다. 묘는 전동면 미곡리 학당에 있으며, 이곳에는 묘소를 실전한 부친 장령공 구의 단비도 건립되어 있다. 연기대첩에 공을 세운 김흔의 연기와의 인연을 제한다면, 성목의 장자인 휴는 전서공파 전의 입향조이자, 연기지역에 연고를 가진 최초의 안동김씨 인물이 된다.
그러면 왜 전서공과 그의 아들 휴가 전의 지역에 터를 잡고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을까? 현재로서 우리는 그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전서공의 백증조가 되는 김흔장군이 연기대첩에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던 인연도 결코 배제하여서는 곤란할 듯하다.
<대종회보 제55호, 1997년 1월>
在鵬씨 충청남도 문화상 수상
95년도에는 연기군민대상 수상
안렴사공 19대손인 在鵬씨께서는 지난 1996년도 충청남도 문화상 수상자 선정에서 학술부문에 선정되어 1996년 12월 2일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수상식을 가졌는데 많은 유명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제40회충청남도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 96년 12월 7일에는 서울신문사에서 주최하고 문화체육부에서 후원한 향토문화대상 전통문화 부문에 선정되어 수상하였으며, 95년도에는 지역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이 커 연기군민대상을 받은 사실도 있다. 이 분의 약력과 공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약력
1922년 8월 9일생
1943년 3월 연희전문학교 문과 졸업
1945년 11월 조치원 공립고등여학교 교사
1947년 4월 대전공립공업중학교 교사
1989년 9월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1990년 3월 ∼현재 연기군 향토유적보호위원회 위원
1993년 1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공적개요
30여 년간을 향리에 묻혀 오직 민족사와 향토사 연구에 전념하여 오면서 광개토대왕의 비문연구 및 신라, 고구려, 일본에 끼친 백제사 연구와 연기향토사 연구논문 등 40여편을 발표하여 민족사관의 주체성 확립과 향토사 정립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으며,
노령에도 불구하고 충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연기군 향토사 연구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왕성한 연구활동으로 후학의 귀감이 됨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윤식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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