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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천동(乾川洞)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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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섭 작성일03-03-21 19:53 조회1,7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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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中區) 인현동(仁峴洞) 1가(一街) 40번지 부근의 마을이 건천동(乾川洞)이었다.

생민동(生民洞)에서 흘러오는 개천이 있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늘 말라 있으므로, 마른냇골 또는 한자명으로 건천동(乾川洞)이라 한다. 이곳에 이름난 이가 많이 났는데, 단종 때에 김종서(金宗瑞:順天人), 정인지(鄭麟趾:河東人), 이계동(李季仝:平昌人), 세조 때 양성지(梁誠之:南原人), 김수온(金守溫:永同人), 이병정(李秉正:全義人), 중종 때 유순정(柳順汀:晉州人), 권민수(權敏手:安東人), 유담년(柳聃年:文化人), 명종 때 노수신(盧守愼:光州人), 허엽(許曄:陽川人), 선조 때 유성룡(柳成龍:豊山人), 허봉(許봉:陽川人), 이순신(李舜臣:德水人), 원균(元均:原州人)이 모두 이곳에서 났으으로, 더욱 유명하였다.





<인물설명>

●이병정(李秉正) 1438(세종 20) ∼ 1515(중종 10) 壽78세

자(字)는 숙도(叔度). 본관은 전의(全義).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의 손자(孫子)이며 부사(府使) 이사민(李士敏)의 아들이다.

1466년(세조 12) 03월 무과(武科) 중시(重試)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쌀 10석을 받았다. 이후 중추부 첨지사(中樞府僉知事)를 지내고 성절사(聖節使)의 호송장(護送將),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慶尙右道水軍節度使) 등을 역임하였다.

1475년(성종 06) 통정 대부 병조 참지(兵曹參知)에 임명되었고 이듬해인 1476년(성종 07)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회령도호부사(行會寧都護府使)로 나아갔다.

1480년(성종 11) 가선 대부(嘉善大夫)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들어왔다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거쳐 1481년(성종 12) 가선 대부 전라 좌도 수군 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에 임명되었다. 1483년(성종 14)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의주 목사(行義州牧使)가 되었고, 1486년(성종 17) 가선 대부(嘉善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1487년(성종 18) 가선 대부 평안도 절도사(平安道節度使)로 나아갔다가 특진관(特進官)을 지냈다. 1493년(성종 24) 10월 정조사(正朝使) 김수손(金首孫)과 함께 중국사신으로 갔다가 이듬해 3월에 돌아왔다.

연산군(燕山君) 때에는 의흥위 부호군(義興衛副護軍), 영안남도 절도사(永安南道節度使),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을 지냈고 1501년(연산군 07) 정조사(正朝使)로 중국을 다녀왔다. 중종(中宗)때에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냈고 1513년(중종 08) 훈련원 겸 도정(訓鍊院兼都正)으로 있다 나이 70이 넘었다 하여 특진관(特進官)을 사양했는데, 임금이 윤허하였다.

무사(武士)로서 여러 임금들을 섬겼는데, 무릇 그가 부임했던 곳에서는 모두 청간(淸簡)하다 칭하였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김성립(金誠立)의 부인인 허난설헌(許蘭雪軒)>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손꼽히는 허난설헌도 이곳 건천동에서 성장하였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본관(本貫)이 양천(陽川)으로 명종 18년(1563년) 강릉 초당리에서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3남3녀 가운데 셋째딸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호조참판, 경상감사를 지낸 김광철(金光轍:江陵人)의 딸인데 허엽의 후처이다. 그의 오빠인 하곡(荷谷) 허봉과 그의 동생인 교산(蛟山) 허균(홍길동전의 저자)이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났으며 3남매가 모두 시문으로써 한 시대에 명성을 떨쳤다. 난설헌의 본래 이름은 초희(楚嬉)였고 자를 경번(景樊)이라 불렀으며 깨끗한 꽃 난초와 깨끗한 눈(雪)을 좋아하여 난설헌(蘭雪軒)이라는 호가 지어졌다. 그리고 일설에 의하면 난설헌이 「태평광기」를 즐겨 읽었는데 그 긴 이야기를 다 외웠으며 초나라 번희(樊姬)를 사모했기 때문에 초희(楚姬) 경번(景樊)이란 이름과 자가 지어졌다는 것이다. 난설헌은 안동김씨 집안의 김성립(金誠立:구(舊)안동김씨 13세손)에게 시집을 갔다. 그가 몇살에 결혼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대강 15∼16세 무렵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시댁은 5대를 연속 문과에 급제한 집안이었다.



※김성립(金誠立)은 구(舊)안동김씨 13세손으로 파는 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이다.

<김성립의 계보>

김방경(金方慶)..........김수(金綏:書雲觀正公)→김질(金질)→김자행(金自行)→김숙연(金叔演)→김희수(金希壽)→김노(金魯)→김홍도(金弘度)→김첨(金瞻)→김성립(金誠立)















▣ 김윤만 - 건천동과 허난설헌(許蘭雪軒)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이왕섭 同志님! 감사합니다. 건천동과 김종서,정인지,양성지,이병정,허엽,허봉,허난설헌,유성룡,이순신,원균, 기억하겠습니다.

▣ 김항용 - 새로운 것을 알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인현동이 이제 새로워졌습니다. 유성룡은 경북 사촌에서 태어나 이곳 건천동에서 자란 모양입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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