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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집(寓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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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3-04-12 22:50 조회1,7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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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주(金 澍) 1512(중종7)∼1563(명종18).



조선의 문신. 字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庵), 안원군(安原君) 공량(公亮)의 아들. 1531년(중종26) 진사(進士)가 되고, 1539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 1544년 사가독서 (賜假讀書)를 했고, 내외직을 역임 후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 개성 유수 · 대사헌을 거쳐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냈다. 1563년(명종18)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로 명나라 북경(北京)에 가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아버지가 이인임(李仁任)이 아닌 이자춘(李子春)이라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다가 연경(燕京) 관사(館舍)에서 병으로 죽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초서(草書)를 잘 썼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 ·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등과 우의가 두터웠다. 선조(宣祖) 23년(1590)에 광국공신(光國功臣) 화산군(花山君)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저서로 《우암유집(寓菴遺集)》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寓庵集 - 방문하여 열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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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만 - 제 고향 인근 포기실에 사당이 있는 화산군 김주 선조님의 필적을 대하고 보니 반가운 마음 그지 없습니다.

▣ 김영윤 - 잘 보았습니다 아울러 5000번째 등재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축하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본 홈에 올립니다. 아울러 5000번 접속을 경축 드립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규장각 마이크로필림에는 유묵이 없던데..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화산군 할아버지 유묵이 참 반갑습니다.

▣ 김정중 - 5000번째 등재게시물 !! 축하드립니다 이제 10000번 째를 위하여~~!!

▣ 김주회 - 5000번째 등재물!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화산군 김주 선생의 우암유집에 대한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필적까지. 우암유집 국역 발간을 구상중에 있습니다.

▣ 김용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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