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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퇴계(退溪) (06) - 도산서원, 퇴계종택, 퇴계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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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4-23 20:50 조회2,0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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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퇴계(退溪) (06) - 도산서원, 퇴계종택, 퇴계태실







종 목 사적 170호

명 칭 ■ 도산서원 (陶山書院)

분 류 서원(사적)

면 적 324,945㎡

지정일 1969.05.28

소재지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

시 대 조선 선조

소유자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전력하였다.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도산서원은 조선 선조 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선조 8년(1575)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문화재명 도산서원(陶山書院)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위패(位牌)를 모신 서원(書院)으로 안동(安東)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있다. 지금은 서원 앞이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지만 당초에는 서원 남쪽에 하천을 끼고 진입하는 경관이 수려하였다. 원래 이곳은 ●이황이 생전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유생(儒生)을 교육하고 학문을 연마하며 거처하던 곳이었다.



●이황은 성(誠)·경(敬)을 주로 한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축으로 하여 주자학(朱子學)을 집대성하여 영남을 배경으로 한 퇴계학파(退溪學派)를 형성하였고, 일본에도 크게 영향을 주어 동국(東國)의 해동주자(海東朱子)로 불렸다. ●이황은 1609년 문묘(文廟)에 향사(享祀) 되었으며 도산서원 외에도 전국(全國) 40여개소의 서원에서 모시기도 한 조선 유학의 거두(巨頭)이다.



●이황이 죽은지 4년 후 선조 7년(1574) 지방 사림(士林)들이 뜻을 모아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도산서당의 뒤편에 상덕사(尙德祠)란 사당(祠堂)을 지어 위패를 모신 것이 도산서원이다. 이때에 동·서재(東·西齋)와 전교당(典敎堂), 상고직사(上庫直舍), 한존재(閑存齋), 동광명실(東光明室), 전사청(典祀廳), 장판각(藏板閣), 진도문(進道門)을 지어 서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1575년(선조 8) 한호(韓濩)가 쓴 「도산서원(陶山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영남 유학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시에 남은 47개 서원(書院) 중의 하나다.



1969년 사적 제 170호로 지정되어 1970년까지 정부의 보존정책에 따라 대대적인 보수를 행하였으나 원래의 모습에서 다소 변형되었다. 안동댐에 수몰되기 전에는 서원 앞에서 서남으로 흐르는 낙천(落川)을 끼고 가다 서원으로 진입하여 북으로 굽어 올라가는 좌·우 능선 사이에 경사길이 있고, 이 길을 오르다 좌측으로 꺾어 돌아서면 바로 서원의 정문인 진도문 앞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서쪽으로 따로 떨어져 유일하게 방향을 동으로 약간 튼 역락서재(亦樂書齋)의 구역이 독특한 배치였음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제자 정사성(鄭士誠)이 공부하러 왔을 때 그의 아버지가 지어 준 건물이라 한다.



진도문(進度門)은 약간 높은 위치에 놓여 그 앞의 7∼8단의 계단을 올라야 서원으로 들어 설 수가 있다. 진도문을 들어서면 우선 서편에 공자형(工字形) 평면을 한 농운정사(농雲精舍)가 있는데, 이곳은 제자들이 머물던 곳으로 시습재(時習齋), 지숙료(止宿遼), 관란헌 (觀瀾軒)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의 동면은 노출되고 앞뒤로 담장이 연결되어 협문을 통하여 들어가게 되었고, 그 뒤쪽 한단 높은 지대에 하고직사(下庫直舍)가 있다. 이 하고직사도 주위에 담을 따로 둘러 공간을 분리하였고 또 여기서 중앙 통로 건너 동쪽에는 도산서당(陶山書堂)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퇴계가 학문을 연구하던 곳으로 주위의 담도 원래는 나지막한 토담으로 쌓고 동·서·남쪽 출입문 역시 사립문을 달아 자연과 조화된 공간을 이루었다. 서당의 앞마당은 남북으로 층단을 이루어 북쪽 높은 곳에는 서당을 세우고, 남쪽 낮은 지대에는 연지 등 정원을 이루었다. 서당의 서쪽에는 온돌방(완락재(琓樂齋))을 들이고 동쪽에는 벽없이 트인 마루(암서헌(巖栖軒))와 평상을 깐 퇴를 두고 있으며, 앞마당의 동쪽 끝에는 방지(方池)인 정우당(淨友堂)이 있다. 서당의 남쪽과 동쪽의 담이 이 방지 양변에서 끊겨 연못 위에서 트여 있기 때문에 외부의 경관이 노출되는 한편 외부로부터 출입을 억제 할 수 있게 기묘한 계획을 세워 자연과 인위적인 공간을 조화시키고 대지에 단차를 두어 외부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끌어들이도록 한 것이다.



도산서당과 하고직사를 양측에 두고 다시 단을 이룬 계단을 올라서면 강당격인 전교당(典敎堂) 구역으로 출입하는 사주문과 그 앞의 서고인 누각건물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곳에서 전교당 구역과의 단차 약 2m단을 이용하여 동·서 광명당(光明堂)이란 서고(書庫)를 층루(層樓)로 축대에 기대어 세움으로써 환기와 전교당 구역에서 출입이 편하게 하였다.



전교당(보물 제210호)은 높이 약 2m의 기단 겸 축대 위에 세워져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집인데, 기둥을 각주로 두고 홑처마와 기둥 위에 초가지 이외에 공포를 하지 않고 단청도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평면으로 보아 서쪽 한칸은 한존재(閑存齋)라 하는 온돌방이 있고 동측 3칸은 대청이다. 이 전교당의 앞 낮은 곳의 양측에는 동·서재인 박약재(博約齋)와 홍의재(弘毅齋)가 마주보고 놓였다. 이 주위에는 담장으로 돌려져 있고, 동쪽은 판고로 통하게 하였다. 또 전교당 동북쪽에는 다시 단을 두어 상덕사로 들어가는 삼문이 있고, 이 문을 들어서면 사당이 한단 높은 위치에 정면으로 보이며 그 아랫단 서쪽에 제기고 두 채가 나란히 있다. 상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황과 제자 ★조목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그 삼문과 함께 보물 제2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교당 또한 따로 지정이 되어 보존되고 있다.



도산서당의 모습은 ●이황이 쓴 『도산잡영병기(陶山雜詠幷記)』와 제자인 ★금난수(琴蘭秀 1530∼1604)가 쓴 『도산서당 영건기사(陶山書堂 榮建記事)』를 통해 각 건물을 짓는 과정과 성리학자인 ●이황의 건축적인 사고를 알 수 있다. 이 서원에는 많은 전적이 보존되어 퇴계의 사당과 당시의 정치 사회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1970년 농운정사 서편에 유물전시관이 건립되어 ★강세황이 그린 도산서원도와 퇴계가 생전에 사용하던 자리, 베개, 각종 문방구류, 청류장(靑류杖) 등이 소장되어 있다. 또 판각에는 ●이황의 문집, 유묵(遺墨)과 『주서절요(朱書節要)』 등의 판본이 보관되어 있다.

















종 목 시도기념물 42호

명 칭 ■ 퇴계종택 (退溪宗宅)

분 류 생가(지)

수 량 2,119㎡

지정일 1982.12.01

소재지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

소유자 ★이근필

관리자 ★이근필



조선 중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종가이다. 원래 있던 집은 없어지고 이 건물은 1926∼1929년 사이에 선생의 13대손 ★하정 공이 옛 가옥의 규모를 따라 새로 지었다.



앞면 6칸·옆면 5칸 규모의 ㅁ자형 집으로 총 34칸으로 이루어졌다. 높은 석축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난 기둥을 사용하여 지었으며, 전면에 솟을대문을 갖추었다. 오른쪽에 있는 ‘추월한수정’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정자인데 마루에는 ‘도학연원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문화재명 퇴계종택(退溪宗宅)

이 건물은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대학자(大學者)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의 종택이다. 원래의 건물은 없어졌으나 1929년에 선생의 13대 사손(嗣孫) ★하정공(霞汀公)이 사림(士林) 및 중종(中宗)의 협조로 옛 종택의 규모를 참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었다. 종택의 우측에는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종택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형으로 높은 석축(石築) 위에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혼용하여 지었으며 전면(前面)에 솟을대문을 갖추었다. 추월한수정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종 목 시도민속자료 60호

명 칭 ■ 퇴계태실 (退溪胎室)

분 류 가옥

수 량 4동

지정일 1985.10.15

소재지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04

소유자 ★이창건

관리자 ★이창건

부속문화재 태실 (시도민속자료 60-1)

노송정 (시도민속자료 60-2)

사당 (시도민속자료 60-3)

성림문 (시도민속자료 60-4)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조선 단종 2년(1454) 퇴계의 할아버지인 ★이계양 선생이 세웠는데, 뒷날 몸채의 중앙에 돌출된 방에서 퇴계 선생이 태어났다고 하여 퇴계 태실이라 불렸다고 한다.



몸채는 ㅁ자형 평면으로 중앙에 퇴계 태실이 돌출되어 있고, 모서리에 위치한 마루방을 중심으로 큰사랑·작은사랑이 분리되어 있다. 마루의 위에는 ‘온천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랑채와 완전 분리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안채의 중앙에는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형성된 태실이 자리잡고 있다. 몸채 오른쪽에는 一자형 평면의 노송정과 사당채가 있다.



전체적으로는 조선시대 사대부집의 풍모를 지니면서 태실과 같은 특이한 방을 두고 있는 집이다.



문화재명 퇴계태실(退溪胎室)

현(現) 건물(建物)은 단종이년(端宗二年)(1454년(年)) 갑술년(甲戌年)에 퇴계선생(退溪先生) 조부(祖父)인 ★계양선생(繼陽先生)이 창건(創建)했다고 전한다.



건물(建物) 중심부(中心部)에 별당(別堂)으로 꾸민 방(房)에서 퇴계선생(退溪先生)이 태어났다 하여 이 집을 태실(胎室)이라 부르며 십사대손(十四代孫)인 ★가원(家源)이 중수(重修)한 바 있으며 55년전(年前) 전면개축(全面改築)하였다. 태실(胎室) 동(東)쪽에 노송정(老松亭)과 사당(祠堂)이 배치되어 있고 맞은편에 대문채인 성임문(聖臨門)이 있다. 전체적(全體的)으로 보존상태(保存狀態)는 좋은 편이다.



태실(胎室)은 안마당을 중심(中心)으로 전면에 사랑채, 뒤쪽에 정침, 양측사(兩側舍)를 둔 완전(完全)한 ㅁ자평면(字平面)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의 평면구성(平面構成)은 전면(前面), 우측면(右側面) 대문칸에서 정침과는 완전(完全) 분리된 공간을 형성하고 모서리에 위치한 마루방을 중심(中心)으로 또한 큰사랑, 작은사랑이 분리되어 있으며 마루상부에「온천정사(溫泉精舍)」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특이한 점(點)은 정침중앙에 전면일간(一間), 측면일간반(一間半) 정도의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형성된 태실(胎室)이 건물의 중앙(中央)에 위치된 것이다.



정침에서 마루로 연결되어 이층누각(二層樓閣)형식으로 마루상부에 우물천정을 하고 계자난간을 삼면에 둘렀으며 방4면에 전부 문을 달았다.



정침은 오량(五樑)납도리 가구(架構)로서 안방상부와 다락상부는 다락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좌측사는 현재 온돌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건물전체로 보아 원래의 평면(平面)은 아닌 듯 개축시 많은 변화가 있은 듯 생각된다.



태실(胎室) 누마루에「시세청명일(是歲淸明日) 십사대손(十四代孫) ★가원(家源)」이라는 중수기(重修記)가 걸려있다.



노송정(老松亭)은 자연석기단위에 방주(方柱)를 사용한 건실한 오량(五樑) 가구(架構)이다. 대청의 좌측에 온돌방을 이통간(二通間)으로 꾸미고 방전면(房前面)에 독립된 마루를 별도로 두고 있으며 대청 배(背), 측면(側面)은 판벽과 판장쌍여닫이문으로 꾸미고 전면은 개방되어 있다.



마루상부 외기부분은 우물천정을 구성하였던 고미자국이 남아 있으며 10년전 지붕, 문틀보수가 있었다.



사당(祠堂)은 전면반간(半間)을 퇴간(退間)으로 마루를 구성한 특이한 점이 없는 삼량(三樑)굴도리집이다.



성임문(聖臨門)은 중앙(中央)에 대문을 두고 양쪽에 방을 들인 3량 산형(山形)지붕이며 보수공사가 있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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