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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시제 후기(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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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3-04-25 04:08 조회1,6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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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공 할아버님의 시향제가 마친뒤 바로이어 군사공파 묘역 좌측 산자락에

영면해계신 휘 흥업(諱 興業)선조님의 시향제가 봉행되었습니다.



휘 흥업 선조님은 군사공파 5세손으로 강진군 군동면 내동의 입향조이신

휘 질(諱 질石+質) 선조님의 아드님이시며 매년 음 3월 16일 군사공선조님

시향제에 이어 봉행됩니다.



두분에 대한 기록은 일전에 윤만종친께서 올려주신 시군지순례 강진편을 인용합니다.



작성자 :김윤만 작성일 : 2002/06/25





시군지순례 16-2.(강진군마을사-군동면편)



강진군마을사(군동면)/강진군청





▣ 마을인물. pp236~237





★ 김질(金, 1519~ ? ) : 안동김씨 본 마을 입향조로 충렬공 방경(方慶)의 장남



판서공(判書公) 선(愃). 손자 대제학공(大提學公) 승용(承用). 증손 평리공(評理公)



후(厚). 현손 군사공(郡事公) 칠양(七陽) 등 4대의 묘가 작천면 토마리 남산동에



있는 김질이 그 선산에 성묘차 내려오다가 날이 저물어 안풍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안풍마을에는 해주오씨 오팽수(吳彭壽)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이조



중종(1519) 때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를 피하여 은거했던 성균관(成均館) 진



사(進士)다. 오팽수는 김질의 풍채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머리가 총명함을 감탄하



고 곧 사위로 맞아들이고 전답(田畓)을 주어 내동에 정착하도록 했다. 김질은 군



사공 칠양의 5대손으로 그의 후손은 군사공파로서 내동에 세거(世居)하며 현재까



지 작천면 토마리에 있는 남산동 선영(先塋)을 세전수호(世傳守護)하고 있다.





★ 김흥업( ? ) : 김질의 아들로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군기시직장(軍器寺



直長)으로 군사 100명을 이끌고 남당포(현 강진읍 남포)에서 왜적의 공격을 맞서



싸우다가 전사함. 그의 아들 김서봉 역시 아버지의 비보에 격분하여 싸우다가 전



사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강진에서 선영을 관리하시고 지켜오신 강진의 종친 어른들께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









諱 興業 配 淑夫人 海南尹氏 之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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諱 興業 配 淑夫人 海南尹氏 之墓

諱 瑞鳳 配 西原金氏 之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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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 음복 때 안 계시더니......그럼 점심도 안 드셨겠군요. 직장공(휘 흥업) 할아버지 관련 내용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이 내용을 몰라 사이버 연구회란에 본 내용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시제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 솔내영환 - 그렇군요. 잘 몰랐습니다.

▣ 김정중 - 잘 알겠습니다!

▣ 김은회 - 잘 보았습니다.

▣ 김태영 - 정신없이 먹다보니 참배를 못했네요.

▣ 김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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