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의 문인 (09) - 퇴계문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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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4-28 20:04 조회1,562회 댓글0건본문
퇴계(退溪)의 문인 (09) - 퇴계문인3
전국에서 모여든 인재들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그 당로서는 대개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근 지역에 있는 서비들이 모여 가르침을 받는게 상례이었고 이조시대 정치의 큰 병폐이던 士禍의 중요 원인이 되었던 파벌 다툼의 영향을 받아 같은 계통 파당에 연원을 가진 인재들이 모이기 마련이었으나 퇴계선생의 문인들은 이러한 常例를 벗어나 전국 각처에서 모여 들었다는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지리적으로 遠近을 초월하여 모여 들었던 퇴계 문인들을 보면 뒷날 국가적으로 큰 인물이 된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한강 ★정구, 약포 ★정탁, 소재 ★노시신, 동강 ★김우? 등과 같이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방에서 찾아 와서 훈학을 받은 사람도 많으나
미암 ★유희춘과 고봉 ★기대승, 죽천 ★박광전은 호남지방에서 우계 ★성혼, 사암 ★박순, 오봉 ★이호민, 선암 ★심의겸, 노저 ★이양원, 오음 ★윤두수 등은 경기지방에서 찾아왔으며 당대의 이름난 젊은 학자이던 율곡 ★이이는 23세때에 멀리 강원도 강릉에서 도산서당을 찾아와 사제지의를 맺었던 것이다.
★이율곡이 퇴계선생의 뛰어난 학문과 덕망에 감복하여 도산을 찾아온 시기는 명종12년(1557년) 선생 나이 58세 되던 해로 오늘날 도산서원 전신인 도산서당을 새로 지어 강학당을 옮긴 직후로 이때 율곡은 헌시를 지어 선생에게 바쳤고 퇴계선생도 답시를 주었다는 사실과 율곡이 도산서당을 떠날 때 선생에게 간청하여 얻어낸 다음과 같은 箴言(잠언)은 오늘날까지 유명한 逸話(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持心貴在不斯 入朝當戒喜事 (마음 가짐에 있어서는 속이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벼슬자리에 올라서는 함부로 일을 좋아하기를 경계하라)
그밖에 퇴계 문인 중에는 서울에 거주하던 정암 ★조광조 선생의 후손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형 ★이요신 등이 포함되어 있어 경향 각지에서 인재들이 퇴계선생 문하에 모여들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 솔내영환 -
▣ 김윤만 - 좋은 스승과 학문을 위하여 팔자걸음으로 유유자적 도산서원으로 향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 집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재익 -
▣ 김재이 - 잘 읽었습니다
▣ 김태영 -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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