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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 軒)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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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4-28 20:52 조회1,5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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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헌( 軒) ▣



--우리나라 중종 39년(1544)에 정언(正言) 민기문(閔起文)이, "재상이 초헌을 탈 때 모두 검은 일산[傘]을 받치니,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동궁(東宮)의 푸른 일산[?]과 같아서 미안한 점이 있다." 하자, 임금이, "옛날 제도에 나이가 많아서야 초헌을 타게 되어 있는데, 지금에는 아무리 젊은이라도 직위만 2품(品)에 오르면 으레 초헌을 타니 매우 옳지 않다." 하였다. 영사(領事) 윤은보(尹殷輔)가, "중국에서는 말을 탄 자라도 모두 푸른 일산[盖]을 받는다." 하였고, 지사(知事) 성세창(成世昌)은, "세종 시대에 초헌에 대한 제도를 논의하여 일체 양(梁) 나라의 제도에 따라 초헌 위에 푸른 일산[蓋]을 받쳐 햇볕을 가리기로 한 것은 노병(老病)한 재상이 뜨거운 햇볕을 쪼이기 어려운 때문이다." 하였다. 내가 상고해 보건대, 초헌에 푸른 일산[盖]을 받치던 제도가 어느 시대에 폐지되었는지 모르지만, 초헌에는 윗지붕이 없으므로 일산이 없을 수 없다. 예로부터 수레에는 으레 일산이 있었으니, 지금 초헌을 타는 자는 옛제도를 다시 활용하는 것이 옳다. 이전에는 초헌을 타는 자가 초헌의 충동으로 말미암아 가끔 혀를 씹히곤 하였는데, 김자점(金自點)이 긴 끌채 위에 짧은 기둥을 받친 뒤 부터서는 초헌을 아무리 빨리 몰아도 안온(安穩)하였다 한다.



《출전 : 청장관전서 제60권/앙엽기 7》





▣ 김항용 - 낙서공할아버지 이야기의 연속이었군요.

▣ 김재익 -

▣ 김재이 -

▣ 김주회 -

▣ 김태영 -

▣ 김윤식 - 그만큼 낙서공 할아버지께서 이루신 일들이 많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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