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또다시 성지순례의 기쁨에.....(2)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3-04-30 05:59 조회1,531회 댓글0건

본문



또다시 성지순례의 기쁨에.....(2)





4월 27일 일요일 오후



서운관정공파 묘역을 내려와 곤지암으로 향했다. 도로를 가다 보니 길 옆에는 무분별하게 공장들이 난립하고 있어 어지럽고 답답해진다. 더군다나 차량은 왜 이리 많고 씽씽거리는지?



곤지암을 지나 산길을 올라 여주군 경계로 진입하자 눈 앞이 확 트인다. 광주시에서의 어지럽고 답답함이 싹 가시고 산골 전원풍경에 눈이 다 시원해지고 신바람까지 난다. 고개마루를 내려가다 승용차가 꽉 들어찬 식당에 차를 대고 들어갔다. 여주의 별미인 막국수를 곁들인 초계탕으로 포식을 했다.







산길을 내려가 여주군 산북면 삼품리를 지나고 금사면 이포를 거쳐 흥천면소재지에 들어섰다. 시골의 한적한 면소재지인데도 퇴락한 분위기는 전혀 들지 않고 깔끔하고 아늑하고 평화스러움이 온 몸을 감싼다. 길도 널찍하고 차량과 인적도 드물고, 어느 토요일 봄날 오후의 화창함과 함께.



흥천면사무소의 널찍한 마당에 차를 댔다. 나무 그늘 아래의 선선한 그늘바람을 쏘이며 소재지 풍경을 둘러보니 너무나 평화스럽다. 아이 둘은 아이스크림 타령을 하더니 어느새 슈퍼로 달려갔고, 아내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하고, 나는 면사무소 마당을 뒷짐지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면소재지에서 한 5리 정도인 귀백리에 금방 도착했다. 마을 앞에는 아담하게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물고기를 낚는지, 세월을 낚는지 강태공들이 즐비하다. 경로당으로 찾아 들어갔다.



찾아온 목적을 밝히고, 이곳에서 종사에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金明植(올 69세) 님을 찾으니 면소재지에 있는 게이트볼장에 갔을 거라고 하시며, 같이 가자고 일어나십니다. 올해 74세 되신다는 泰賢 종친님으로 도정공(휘公奭) 후손이라고 하십니다.







이곳 귀백리 백양동 마을을 돌아가니 아담하게 작은 저수지가 또 펼쳐진다. 역시 강태공들은 즐비하고. 저수지를 막 지나 나지막한 산 언덕에 화산군(김주)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묘역 오르는 입구에 묘비가 서 있는데 ★李敦宇 서, 12대손 演 근서, 13세손 珏卿 추기 라 되어 있다.



묘역에 올라서니 커다란 봉분으로, 모든 석물이 고풍스러운데 장명등 만이 새 것 같습니다. 장명등 갓을 누가 훔쳐가서 새로 세운 거라고 합니다. 양지바른 묘역에 앉아 태현 종친님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노인분이시라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전설 세가지를 들려 주십니다. 전설의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들은대로 기록하여 두고 다음 기회에 보완하고자 합니다.







■ 귀백리 백양동



안렴사공 士廉(사렴) --- 지주사공 遇周(우주) --- 판교공 丸(환) --- 참의공 宗孫(종손) --- 참판공 城(성) --- 안원군 公亮(공량), 도정공 公奭(공석) ---



이곳 귀백리 백양동은 <오창지>에 기록되어 있듯이 안렴사공(휘사렴)의 증손되시는 판교공(휘환)께서 입향하여 개척하신 마을로 안렴사공파 내의 후손이 가장 많이 번성하고 큰 인물도 많이 나온 곳이며, 이곳 선산은 120정보 (약 98천평)에 이른다 하고, 전에는 이 마을에 우리 집안이 한 50호 세거해 왔으나 현재는 줄어 19호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 백양동에는 10여년 전에 세운 도정공(휘公奭) 재실이 있고, 현재 거의 완공단계에 있는 안원군(휘公亮) 재실이 자리하고 있다.



<오창지>-----

오은공 金士廉이 고려가 망하니 오근에 은거하여 그 후손이 크게 번창하였다. 5남 소윤공 (휘약)은 아들 지주사공 우주(遇周)와 더불어 오은공을 평총으로 모시고 별세하여 부자 역시 평총으로 하였다.

오은 안렴사공 증손이고 지주사공의 아들인 환(丸)은 상대의 고향인 오근에서 출사하기가 미안하여 여주땅으로 이거한 후 과시에 합격하여 승문원판교에 이르렀다.

-----





■ 전설1

안렴사공의 宗孫이 되는 안원군파는 안원군(휘公亮)의 조부 휘자가 宗孫이어서 종손 또는 종손파라 하지 아니하고 종손은 嗣孫(사손)이라 하고, 안원군파는 일명 嗣孫派(사손파)라 한다.





■ 전설2

옛날에는 이곳 화산군 묘역 앞 도로를 지나갈 때 담배를 피면 입이 달라 붙어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고, 말을 탄 채로 지나가면 말굽이 땅에 들어붙어서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정시대 때 일본놈이 말을 타고 이 묘역 앞을 지나가는데 말굽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자 말 다리를 그 자리에서 잘라서 화산군 상석에 문지르니 이후부터는 이러한 현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혼령과 말의 피는 상극이라고 한다. 이때의 상석은 묘역 주변 어디에 묻어 버렸다고 한다.





■ 전설3

화산군(휘주) 할아버지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셨는데, 사후 20년만에 고국 조선으로 운구되어 돌아 오셨다고 한다. 운구가 두만강에 건너 쉴때는 상여 앞에서 치는 요령이 멈추고, 다시 움직일때는 요령이 울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요령을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까지 조선에서는 장례 행렬에 요령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화산군 묘역을 지나 산모퉁이을 돌아 가니 저멀리 양지바른 언덕에 커다란 묘역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입향조이신 판교공(휘丸)의 묘역입니다. 묘역은 2001년에 새로 조성하였다 하고, 묘비는 단기 4308년 (서기 1975년)에 明會 근찬, 사손 泰善 근서라 되어 있습니다. 묘역 아랫단에는 좌우 쌍분의 묘가 있는데 묘비를 보니 휘德男의 묘입니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저수지를 끼도 도는 산 언덕에 역시 웅장한 묘역이 눈에 들어옵니다. 위치는 백양동 마을의 뒷산 뒷면이 됩니다. 묘역 상단에는 도정공(휘公奭)의 쌍분으로 묘 앞에는 새로 세운 조그만 묘비가 서 있고, 오래된 웅대한 묘비가 좌측에 비켜 서 있는데 이 묘비는 조카인 화산군(휘★澍)이 찬하고 조선조 중기 명필로 이름난 ★송인 이라는 분이 서한 것입니다. 휘公奭 선조님은 武人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묘비와 석물도 어찌나 크고 높은지 武의 느낌처럼 웅장함이 위압감이 절로 듭니다.



아래로는 도정공(휘公奭)의 아들이신 신령현감 휘(삼수변懼)의 묘소이고, 새로 세운 조그만 묘비를 보니 단기 4309년 (서기 1976년) 예손 明會 근서라 되어 있습니다.



아래로는 쌍분에 조그만 묘비가 둘이 서 있는데 묘비를 보니 "현신교위 행충무위 증부장" 이라 되어 있는데 어느 분을 말함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맨 아래에는 안원군(휘公亮)의 묘가 자리잡고 있는데 새로 세운 묘비는 1986년 승지공(=휘公藝) 14대손 崙會(전 대종회 사무국장) 근찬병서 라 되어 있고, 오른쪽 아래에 오래된 옛날 묘비가 서 있는데 이 묘비는 호음 ★정사룡이라는 분이 찬하고 (서운관정공파) 동고공(휘★魯)께서 서하신 것이다. 비면이 상당부분 마모되어 잘 분간할 수 없었으나 뽀얀 옥돌로 세운 묘비로서 일부 부분은 선명하게 필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옆 골짜기로 들어가니 역시 거대한 묘역이 눈앞에 다가서는데 맨위에는 휘壽男 의 묘로 여말선초의 묘제라고 하는 사각묘의 형태이며 묘 앞에는 조그만 옛 묘비가 서 있고, 오른쪽으로 새로 세운 묘비가 서 있는데, 1987년, 14세손 明振 근찬, 13세손 文卿 근지라 되어 있습니다.



아래로는 장흥부사(휘憙)의 묘로 오른쪽에 옛 비석이 서 있고,



맨 아래에는 참의공(휘宗孫)의 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오른쪽에는 새로 세운 묘비가 서 있다. 丙辰년 17대 사손 泰善 근차서 라 되어 있습니다.



이 묘역은 壽男-憙-宗孫 순으로 되어 있는데 壽男은 참의공(휘宗孫)의 5세손이고, 憙는 참의공의 6세손이므로 고조부, 5대조부 산소 위에 묘를 쓴 경우입니다. 태현 종친님께 여쭈어 보니 이곳에는 할아버지 묘 위에 손자 묘를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걸음도 불편하신 데도 손수 길안내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신데 대하여 泰賢 종친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흥천면소재지로 다시 나왔다. 또 흥천면사무소 마당에 차를 대고 한동안 쉬었다가 여주로 장호원으로 음성으로 귀가길을 잡았다. 그동안 밀린 큰 숙제를 끝마친 홀가분한 마음으로 초록빛이 짙어가는 저녁 들녘을 옆으로 하면서.....











4월 28일 월요일 저녁



휴대폰이 울립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에 거주하시는 金鎰會(031-305-7730) 라고 소개하십니다. 어제 귀백리 백양동에 명함을 한 장 놓고 왔는데, 시골에 들렸다가 이야기를 듣고 고맙고 반가워서 명함을 보고 전화를 하노라고 하십니다.



현재 화산군(휘澍)종중 총무라고 하시는데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고 화산군 관련 기록으로 <우암집>은 현재 번역을 생각중에 있는데 신중을 기해서 추진할 계획으로 있고, <광국지경록>이라는 기록물을 태연 회장이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終















▣ 김영윤 - 잘 보았습니다 뜻깊은 휴일을 보내셨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소식을 생생히 보고 들었습니다.

▣ 김윤만 - 보람있는 성지순례. 가슴 뿌듯하였겠습니다.

▣ 김태서 - 수고하셨습니다.덕분에 편안히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 솔내영환 - 우암 할아버님댁에 다녀 오셨군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0.. 우암집에는 화산군의 숙부( 휘 공석) 신도비명이 있습니다.[숙부북도절도사공신도비명]은 복사해서 올리겠습니다.

▣ 김재익 -

▣ 김정중 - 좋습니다

▣ 김발용 - 님의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 김태영 - 군사공 큰아드님 諱 전(塡)할아버님의 묘소가 여주 백양동으로 전해오나 실전되어..

▣ 김재원 -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