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정(金始禎)공과 제문(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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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5-04 05:04 조회2,021회 댓글0건본문
▣ 김시정(金始禎)공과 제문(祭文) ▣
공(公)의 휘는 시정(始禎)이요. 자는 흥보(興甫)인데 숙종 경신(肅宗 庚申 : 숙종6년, 1680년)에 태어나 임신(壬申 : ☞ 영조28년, 1752년) 8월 11일에 졸하니 수(壽)는 73이다. 배(配)는 전주이씨이며 갑자(甲子 : ☞ 숙종10년, 1684년)년에 태어나 병인(丙寅 : ☞ 영조22년, 1746년)에 졸(卒)하였다. 부(父)는 열도(悅道)요 조(祖)는 경현(景賢)이며 증조(曾祖)는 전점(典籤 : ☞ 전첨의 오기임) 수약(守約)으로서 오리상공(梧里相公 : 이원익(李元翼))의 5대손(代孫)이다. 1男 2女를 길렀는데 아들은 남신(南賮)이요, 딸은 황박(黃樸)에게 출가하였는데 증(贈) 참판(參判)이요 창원인(昌原人)이며, 다음은 박대하(朴大厦)에게 출가하였는데 고령인(高靈人)이다. 묘는 선영(先塋) 묘역 안의 묘좌(卯坐)이며, 쌍분(雙墳)에 부우(祔右)하였다. 공(公)은 태어난 자품(姿品)이 온후(溫厚)하고 품성이 엄격하여 망녕되이 사람과 사귀지 않았으며, 또 우애가 돈독하였다. 젊어서부터 늙기까지 뜻을 돈독히 하고 힘써 배웠으며, 고서(古書)를 펴놓고 봄에 있어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게으름없이 계속하였다. 일찍이 문사(文詞)에 명성이 있었으며, 초시(初試)에는 여러번 입격(入格)하였으나 복시에 낙방이 되었다. 공(公)의 재종형 승지(承旨) 만은공(晩隱公)이 공(公)의 재행(才行)이 멀리 이를 것을 기약해 바랐으나 여러번 낙방이 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말하기를, ‘지금 용반(容蟠)할 방법이 있네. 그대의 뜻이 어떠한가?’하니 공(公)이 사양하기를 ‘선비가 스스로 자랑을 함은 실로 사자(士子)의 행실이 아니요, 비록 열 번 낙방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하지 않겠소.’하고 끝내 듣지 않았으니 공(公)의 개결(介潔)한 몸가짐을 그 때 사람이 모두 칭찬하였다.
【제문(祭文)】
유세차(維世次) 임신(壬申) 9월 무오삭(戊午朔) 26일 계미(癸未), 사제(舍弟) 시영(始英)은 삼가 비박(菲薄)한 전(奠)으로 백형(伯兄)의 영(靈)에 영결(永訣)합니다. 아! 슬픕니다. 하늘이 오문(吾門)을 상망(喪亡)케하여 가화(家禍)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중형(仲兄) 내외가 일시에 구몰(俱沒)하였으며, 미처 눈물이 마르지 않아서 공(公)이 또 이어서 운명하시니 하늘이 화(禍)를 내림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늘에 물으려 하나 분명치 않아 징험(徵驗)할 수 없고 귀신에 질정(質定)하려 하나 아득하여 묻기가 어려워 다만 스스로 슬피 울 뿐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아! 슬픕니다. 공(公)의 심덕(心德)이 인후(仁厚)하고 행의(行誼)가 뚜렷함은 사실 거칠은 말과 옹졸한 말로 형용할 바가 아니나 슬픔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자품(姿品)을 억론(臆論)하자면 금강(金剛)으로서 돌처럼 굳으며, 그 조수(操守)를 말하면 얼음처럼 정(精)하고 옥처럼 깨끗합니다. 빈부(貧富)로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궁달(窮達)로 그 뜻을 바꾸지 않으니 비록 옛 현인군자(賢人君子)일지라도 이에 더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명도(命途)가 궁박(窮薄)하고 가운(家運)이 쇠퇴하여 가난한 집에서 일생을 마치게 되므로 전혀 알려짐이 없으니, 천리(天理)를 헤아리기 어렵고 인사(人事)에 있어 통석(痛惜)함이 어찌 이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아! 슬픕니다. 공(公)은 젊어서부터 늙게까지 뜻을 돈독히 하고 힘써 배웠으며, 고서(古書)를 펴서 봄에 있어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게으름없이 계속하였으며, 문자(文字)의 끽긴(喫緊)한 곳에 있어서는 가슴에 새겨 잊지 않았습니다. 학문에 대한 근고(勤苦)가 이러하였으나 끝내 백면서생(白面書生)이란 게호(揭號)를 면치 못하였으니 운수입니까? 운명입니까? 아! 슬픕니다. 백부(伯父)를 아버지로 이어 선대(先代)를 봉사(奉祀)함에 있어 정성을 다하였으니 서린(西隣)에서 복을 받는 일이 공(公)에게는 있어야 하나 사명(司命)이 돕지 않아 신수(身數)가 더욱 궁하였습니다. 중년에 상처(喪妻)하여 갑자기 실가(室家)의 즐거움을 잃었고, 다만 한 아들을 두었던 것이 참척(慘慽)을 당하였으니 하늘이 공(公)에게 보시(報施)하는 일이 어찌 인색하여 독해(毒害)하는 일이 어찌 이다지도 가혹(苛酷)합니까? 아! 슬픕니다. 옛날 우리 형제 4人이 한 방 안에서 깉이 놀았습니다. 어느 사이에 인사(人事)는 한 번 변하여 중·계양형(仲·季兩兄)은 모두 이미 서거(逝去)하였고, 공(公)도 또 나를 버리고 무리를 버렸으며, 홀로이 뒤에 죽으려고 숨을 헐떡이며 인세(人世)에 살아 남아 있으나 의탁할 곳 없이 갈팡질팡 외롭게 되었으니 가슴을 에이는 것 같습니다. 공(公)은 천대(泉臺 : 구천(九泉)) 아래에서 문채(文彩)있는 의복(衣服)으로 뜰을 거닐며 아침 저녁으로 어버이의 얼굴을 뵈올 것이며, 역시 두 형과 신질(賮姪 : 조카인 남신(南賮)을 일컬음)과 더불어 담낙(湛樂)하는 기쁨과 자애(慈愛)하는 정은 인세(人世)와 다름이 없을 것 아닙니까? 공(公)은 병이 깊어지자 나의 손을 쓰다듬으며 읊조리기를 “동파(東坡 : 소식(蘇軾)가 자유(子由 : 소식(蘇軾)의 아우 소철(蘇轍))에게 준 시(詩)에 이르기를 「그대와 더불어 대대로 형제가 되어, 내생(來生)에 미치지 못한 인연을 같이 맺어보세.」하셨으니 공(公)의 우애와 잊지 못하는 정을 이로 미루어 더욱 확인할 수 있는데, 어두운 저승에서 혹 이 말씀을 기억하시겠습니까? 아! 슬픕니다. 여러 대(代)의 사우(祠宇)는 장차 어찌 의탁할 것이며, 고아 상부(孤兒 孀婦)는 장차 어찌 의지하고 양육(養育)될 것입니까. 공(公)의 선조(先祖)를 받드는 정성과 어버이가 자식을 생각하는 사랑에 갑자기 사람으로서 차마 행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되었으니 영(靈)이 만약 아신다면 구천(九泉)에서 흐느껴 우실 것입니다. 아! 슬픕니다. 살다가 서로 헤어지면 기약을 생각하고, 오지 않으면 걱정을 함은 본래의 인정이나 이 이별은 천고에 더는 다시 만나기 어려워서 안범(顔範)이 길이 막혔고 음향(音響)을 영원히 들을 수 없으니, 이 인생이 이 세상에, 이 한스러움보다 더 하겠습니까? 한 나무에 몸을 갈무리하니 만사(萬事)는 한갓 한 소리 긴 슬픔입니다. 궤연(几筵) 앞에 재배하니 영(靈)이시여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아! 습픕니다. 흠향(歆饗)하소서.
《출전 : 가보(家譜)번역판/편집인 김재희(金在熙)/1996. 8.30》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연일 귀한 자료 일일이 타이핑하시느라 노고가 크십니다.
▣ 김항용 -
▣ 김태서 - 자료 발굴 수고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 김발용 -
▣ 김주회 - 김시정(金始禎)공과 제문(祭文)!!! 잘 보았습니다.
▣ 김은회 -
공(公)의 휘는 시정(始禎)이요. 자는 흥보(興甫)인데 숙종 경신(肅宗 庚申 : 숙종6년, 1680년)에 태어나 임신(壬申 : ☞ 영조28년, 1752년) 8월 11일에 졸하니 수(壽)는 73이다. 배(配)는 전주이씨이며 갑자(甲子 : ☞ 숙종10년, 1684년)년에 태어나 병인(丙寅 : ☞ 영조22년, 1746년)에 졸(卒)하였다. 부(父)는 열도(悅道)요 조(祖)는 경현(景賢)이며 증조(曾祖)는 전점(典籤 : ☞ 전첨의 오기임) 수약(守約)으로서 오리상공(梧里相公 : 이원익(李元翼))의 5대손(代孫)이다. 1男 2女를 길렀는데 아들은 남신(南賮)이요, 딸은 황박(黃樸)에게 출가하였는데 증(贈) 참판(參判)이요 창원인(昌原人)이며, 다음은 박대하(朴大厦)에게 출가하였는데 고령인(高靈人)이다. 묘는 선영(先塋) 묘역 안의 묘좌(卯坐)이며, 쌍분(雙墳)에 부우(祔右)하였다. 공(公)은 태어난 자품(姿品)이 온후(溫厚)하고 품성이 엄격하여 망녕되이 사람과 사귀지 않았으며, 또 우애가 돈독하였다. 젊어서부터 늙기까지 뜻을 돈독히 하고 힘써 배웠으며, 고서(古書)를 펴놓고 봄에 있어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게으름없이 계속하였다. 일찍이 문사(文詞)에 명성이 있었으며, 초시(初試)에는 여러번 입격(入格)하였으나 복시에 낙방이 되었다. 공(公)의 재종형 승지(承旨) 만은공(晩隱公)이 공(公)의 재행(才行)이 멀리 이를 것을 기약해 바랐으나 여러번 낙방이 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말하기를, ‘지금 용반(容蟠)할 방법이 있네. 그대의 뜻이 어떠한가?’하니 공(公)이 사양하기를 ‘선비가 스스로 자랑을 함은 실로 사자(士子)의 행실이 아니요, 비록 열 번 낙방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하지 않겠소.’하고 끝내 듣지 않았으니 공(公)의 개결(介潔)한 몸가짐을 그 때 사람이 모두 칭찬하였다.
【제문(祭文)】
유세차(維世次) 임신(壬申) 9월 무오삭(戊午朔) 26일 계미(癸未), 사제(舍弟) 시영(始英)은 삼가 비박(菲薄)한 전(奠)으로 백형(伯兄)의 영(靈)에 영결(永訣)합니다. 아! 슬픕니다. 하늘이 오문(吾門)을 상망(喪亡)케하여 가화(家禍)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중형(仲兄) 내외가 일시에 구몰(俱沒)하였으며, 미처 눈물이 마르지 않아서 공(公)이 또 이어서 운명하시니 하늘이 화(禍)를 내림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늘에 물으려 하나 분명치 않아 징험(徵驗)할 수 없고 귀신에 질정(質定)하려 하나 아득하여 묻기가 어려워 다만 스스로 슬피 울 뿐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아! 슬픕니다. 공(公)의 심덕(心德)이 인후(仁厚)하고 행의(行誼)가 뚜렷함은 사실 거칠은 말과 옹졸한 말로 형용할 바가 아니나 슬픔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자품(姿品)을 억론(臆論)하자면 금강(金剛)으로서 돌처럼 굳으며, 그 조수(操守)를 말하면 얼음처럼 정(精)하고 옥처럼 깨끗합니다. 빈부(貧富)로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궁달(窮達)로 그 뜻을 바꾸지 않으니 비록 옛 현인군자(賢人君子)일지라도 이에 더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명도(命途)가 궁박(窮薄)하고 가운(家運)이 쇠퇴하여 가난한 집에서 일생을 마치게 되므로 전혀 알려짐이 없으니, 천리(天理)를 헤아리기 어렵고 인사(人事)에 있어 통석(痛惜)함이 어찌 이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아! 슬픕니다. 공(公)은 젊어서부터 늙게까지 뜻을 돈독히 하고 힘써 배웠으며, 고서(古書)를 펴서 봄에 있어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게으름없이 계속하였으며, 문자(文字)의 끽긴(喫緊)한 곳에 있어서는 가슴에 새겨 잊지 않았습니다. 학문에 대한 근고(勤苦)가 이러하였으나 끝내 백면서생(白面書生)이란 게호(揭號)를 면치 못하였으니 운수입니까? 운명입니까? 아! 슬픕니다. 백부(伯父)를 아버지로 이어 선대(先代)를 봉사(奉祀)함에 있어 정성을 다하였으니 서린(西隣)에서 복을 받는 일이 공(公)에게는 있어야 하나 사명(司命)이 돕지 않아 신수(身數)가 더욱 궁하였습니다. 중년에 상처(喪妻)하여 갑자기 실가(室家)의 즐거움을 잃었고, 다만 한 아들을 두었던 것이 참척(慘慽)을 당하였으니 하늘이 공(公)에게 보시(報施)하는 일이 어찌 인색하여 독해(毒害)하는 일이 어찌 이다지도 가혹(苛酷)합니까? 아! 슬픕니다. 옛날 우리 형제 4人이 한 방 안에서 깉이 놀았습니다. 어느 사이에 인사(人事)는 한 번 변하여 중·계양형(仲·季兩兄)은 모두 이미 서거(逝去)하였고, 공(公)도 또 나를 버리고 무리를 버렸으며, 홀로이 뒤에 죽으려고 숨을 헐떡이며 인세(人世)에 살아 남아 있으나 의탁할 곳 없이 갈팡질팡 외롭게 되었으니 가슴을 에이는 것 같습니다. 공(公)은 천대(泉臺 : 구천(九泉)) 아래에서 문채(文彩)있는 의복(衣服)으로 뜰을 거닐며 아침 저녁으로 어버이의 얼굴을 뵈올 것이며, 역시 두 형과 신질(賮姪 : 조카인 남신(南賮)을 일컬음)과 더불어 담낙(湛樂)하는 기쁨과 자애(慈愛)하는 정은 인세(人世)와 다름이 없을 것 아닙니까? 공(公)은 병이 깊어지자 나의 손을 쓰다듬으며 읊조리기를 “동파(東坡 : 소식(蘇軾)가 자유(子由 : 소식(蘇軾)의 아우 소철(蘇轍))에게 준 시(詩)에 이르기를 「그대와 더불어 대대로 형제가 되어, 내생(來生)에 미치지 못한 인연을 같이 맺어보세.」하셨으니 공(公)의 우애와 잊지 못하는 정을 이로 미루어 더욱 확인할 수 있는데, 어두운 저승에서 혹 이 말씀을 기억하시겠습니까? 아! 슬픕니다. 여러 대(代)의 사우(祠宇)는 장차 어찌 의탁할 것이며, 고아 상부(孤兒 孀婦)는 장차 어찌 의지하고 양육(養育)될 것입니까. 공(公)의 선조(先祖)를 받드는 정성과 어버이가 자식을 생각하는 사랑에 갑자기 사람으로서 차마 행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되었으니 영(靈)이 만약 아신다면 구천(九泉)에서 흐느껴 우실 것입니다. 아! 슬픕니다. 살다가 서로 헤어지면 기약을 생각하고, 오지 않으면 걱정을 함은 본래의 인정이나 이 이별은 천고에 더는 다시 만나기 어려워서 안범(顔範)이 길이 막혔고 음향(音響)을 영원히 들을 수 없으니, 이 인생이 이 세상에, 이 한스러움보다 더 하겠습니까? 한 나무에 몸을 갈무리하니 만사(萬事)는 한갓 한 소리 긴 슬픔입니다. 궤연(几筵) 앞에 재배하니 영(靈)이시여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아! 습픕니다. 흠향(歆饗)하소서.
《출전 : 가보(家譜)번역판/편집인 김재희(金在熙)/1996. 8.30》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연일 귀한 자료 일일이 타이핑하시느라 노고가 크십니다.
▣ 김항용 -
▣ 김태서 - 자료 발굴 수고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 김발용 -
▣ 김주회 - 김시정(金始禎)공과 제문(祭文)!!! 잘 보았습니다.
▣ 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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