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118)비애와 분노에 쌓인 경교장,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 손녀의 통곡도 斷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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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5-14 19:26 조회1,473회 댓글0건본문
비애(悲哀)와 분노(憤怒)에 쌓인 경교장
말없이 흐르는건 눈물뿐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
손녀의 통곡도 단장(斷腸)
김구선생 서거의 비보가 장안에 파급되자 온 서울은 소낙비 나리듯 눈물에 젖었다.
두시 4-5십분 경부터 위대한 민족과 자유의 지도자를 잃은 시민은 본노와 분에 못이겨 선생이
삼년 십여개월중 중국에서 환국하신 다음 민족의 참다운 신뢰를 가르쳐 오던 근거지 선생이
가난하게 살림하여 오던 경교장을 향해 오는 조문객과 아울러 운집하여 왔다.
경교장내 넓은 뜰 앞에 장사(長蛇)의 열을 지어 눈물 흘리며 [김구선생 원통합니다.
선생은 떠나셨으나 그 뒤에는 젊은 우리들이 국가의 참다운 날을 위하여 싸우겠습니다]라는 비통한
맹서와 울음에 섞여 한때 경교장은 눈물의 바다로 화하였다. 전국통일학생연맹, 건실, 그리고
국방군장병, 내외기자단, 정계요인, 학생, 노동자등 각계각층으로 수만명의 조객들은 현관을 통해
선생이 피살되었던 침실에 안치된 선생의 유해앞에 무릎을 꿇고 조례(弔禮)를 올리었는데
그 중에서도 적은 어린 목소리로 통곡하는 선생의 장손녀 효자(孝子)양(7세)의 모습이야 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픈 광경이었다.
7시 10분 정각 옹진으로부터 유엔 한위시찰안내로 출발하였다가 부친의 비보를 접하고 돌아온
선생의 단 하나인 아들 현 항공중령 신(信-28세)군은 참을 수 없는 울분과 끝임없는 분노에
"무슨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느냐 아 아 무어라 아무말도 할 수 없다"고 단장(斷腸)의 심경을 보이고
있었다.
조문객은 연달아 밤이 깊도록 오후 10시까지 계속되었는데 교통 통행시간으로 말미암아
10시 정각 정문을 폐쇄하였다. 그러나 건물 앞 잔디뜰 위에는 2층 안치실에서 들려오는 그칠줄
모르는 통곡을 애절히 들으며 다시는 돌아오시지 못한 선생의 고독한 최후의 행로를 바라보며
수백명들이 밤을 새웠다. 특히 이날의 조문객의 중요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조소앙, 류 휴, 지대형, 명제세, 김병로, 전진한, 신성모, 김효석, 박 열, 허 정, 조완구, 윤치영
-이상 자유신문에서-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 김창우 -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비통하고 비통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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