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김질, 정몽주=성삼문, 박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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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5-19 04:01 조회1,522회 댓글0건본문
▣ 태종 이방원=김질, 정몽주=성삼문, 박팽년=? ▣
--충무로4가에서 남산을 향해 올라가면 퇴계로와 부딪히고 부딪힌 목에 거대한 기와집인 ‘한국의 집’이 있다. 그 집 북쪽 모퉁이에 지나가는 사람이면 예외없이 옷깃을 여미며 숙연해 지게 마련인 묵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남산 계곡의 이름이 생민동이요, 생민동의 이 우람한 반송을 사람들은 육신송(六臣松)이라 불렀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저항, 단종의 복위를 음모하다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사육신 박팽년이 그 집에 살면서 손수 심었던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순절한 다음 이 소나무가 육신송으로 우러름을 받아 일제 중엽까지도 그곳에 그늘을 드리우고 살아있었다 한다. 박팽녕의 충절은 이미 살아있었을 때부터 소문나 있었다. 명나라의 천순황제가 오랑캐에 잡혀가 유폐돼 있었을 동안 박팽년은 단 하루도 방안에서 자지를 않고 문 밖 한데에다 짚자리를 깔고 잠을 잤다. 천자가 유폐당하고 있는데 어찌 편하게 잠잘 수 있는가가 그의 변이었다.
--세조가 육신들에게 형을 주기 전에 심복인 김질에게 술을 들려 옥중에 보내어 마음을 떠보도록 시켰었다. 김질이 고려 말에 태종이 충신 정몽주를 찾아가 읊었던 시조(☞하여가)를 읊자 성상문은 정몽주가 읊었던 시조(☞단심가)로 응답했고 박팽년은 다음과 같은 단시를 지어 응답했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나랴
-아무리 여필종부라 한들 임마다 좇을 소냐
--세조는 박팽년의 충절과 재주를 사랑하였기로 몰래 사람을 보내어 회유를 시도했었다. “네가 마음을 바꾸어 더불어 역모를 하지 않았다고 숨기면 살 수 있을 것이다.”고--<생략>--
☞세조의 입장에서 보면 사육신은 단종 복위사건으로 죽을 일을 한 것이나, 굳이 죽이려고 하지 않았고, 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역사적 오해속에 매도 당하고 있는 문정공 김질 할아버지에 대해 다시한번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출전 : 이규태의 600년 서울/이규태/조선일보사/1993》
▣ 김항용 -
▣ 김태서 - 중대부속병원뒤에 있는 소나무 인가요?.
▣ 김발용 - 연일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연일 귀한 자료 잘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박팽년과 우리 가문의 인연을 살펴보면 1) 전서공파 김휴(김성목의 아들)의 사위는 박안생으로 박팽년의 조부입니다. 즉 김휴의 외증손자가 박팽년입니다. 2) 도평의공파 김효온(김자첨의 아들)은 박팽년 최항 등과 친교가 있었다 합니다.
▣ 김영윤 -
▣ 김태영 -
▣ 솔내영환 - 감사!!
--충무로4가에서 남산을 향해 올라가면 퇴계로와 부딪히고 부딪힌 목에 거대한 기와집인 ‘한국의 집’이 있다. 그 집 북쪽 모퉁이에 지나가는 사람이면 예외없이 옷깃을 여미며 숙연해 지게 마련인 묵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남산 계곡의 이름이 생민동이요, 생민동의 이 우람한 반송을 사람들은 육신송(六臣松)이라 불렀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저항, 단종의 복위를 음모하다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사육신 박팽년이 그 집에 살면서 손수 심었던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순절한 다음 이 소나무가 육신송으로 우러름을 받아 일제 중엽까지도 그곳에 그늘을 드리우고 살아있었다 한다. 박팽녕의 충절은 이미 살아있었을 때부터 소문나 있었다. 명나라의 천순황제가 오랑캐에 잡혀가 유폐돼 있었을 동안 박팽년은 단 하루도 방안에서 자지를 않고 문 밖 한데에다 짚자리를 깔고 잠을 잤다. 천자가 유폐당하고 있는데 어찌 편하게 잠잘 수 있는가가 그의 변이었다.
--세조가 육신들에게 형을 주기 전에 심복인 김질에게 술을 들려 옥중에 보내어 마음을 떠보도록 시켰었다. 김질이 고려 말에 태종이 충신 정몽주를 찾아가 읊었던 시조(☞하여가)를 읊자 성상문은 정몽주가 읊었던 시조(☞단심가)로 응답했고 박팽년은 다음과 같은 단시를 지어 응답했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나랴
-아무리 여필종부라 한들 임마다 좇을 소냐
--세조는 박팽년의 충절과 재주를 사랑하였기로 몰래 사람을 보내어 회유를 시도했었다. “네가 마음을 바꾸어 더불어 역모를 하지 않았다고 숨기면 살 수 있을 것이다.”고--<생략>--
☞세조의 입장에서 보면 사육신은 단종 복위사건으로 죽을 일을 한 것이나, 굳이 죽이려고 하지 않았고, 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역사적 오해속에 매도 당하고 있는 문정공 김질 할아버지에 대해 다시한번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출전 : 이규태의 600년 서울/이규태/조선일보사/1993》
▣ 김항용 -
▣ 김태서 - 중대부속병원뒤에 있는 소나무 인가요?.
▣ 김발용 - 연일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연일 귀한 자료 잘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박팽년과 우리 가문의 인연을 살펴보면 1) 전서공파 김휴(김성목의 아들)의 사위는 박안생으로 박팽년의 조부입니다. 즉 김휴의 외증손자가 박팽년입니다. 2) 도평의공파 김효온(김자첨의 아들)은 박팽년 최항 등과 친교가 있었다 합니다.
▣ 김영윤 -
▣ 김태영 -
▣ 솔내영환 -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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