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문화재 용어(2)<도성 및 궁궐의 문>

페이지 정보

김윤만 작성일03-05-24 08:28 조회1,515회 댓글0건

본문

▣ 문화재 용어(2)<도성 및 궁궐의 문> ▣



1. 한양 도성에는 동서남북에 네개의 대문을 내고, 그 사이에 네개의 소문을 내어 모두 여덟 개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동서남북 및 중앙에 있는 시설물에는 유교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인 오상(五常)-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한 글자씩을 붙여 지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이런 틀에 따르면 북대문의 이름에는 ‘智‘자가 들어가야 하겠으나, ’정(靖)‘자를 넣어 숙정문(肅靖門), 가운데는 종각 즉 보신각(普信閣)이라 하였다. 숙정문에 ‘지(智)’자 대신 ‘정(靖)’자를 넣은 이유는 각자 연구해 보시기 바라며, 참고로 북쪽에는 홍지문(弘智門)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2. 한양 도성안에는 5대 궁궐이 있다. 이름하여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희궁(慶熙宮), 덕수궁(德壽宮)이 그것이다. 궁궐의 정문을 살펴보자 경복궁(景福宮)-광화문(光化門), 창덕궁(昌德宮)-돈화문(敦化門), 창경궁(昌慶宮)-홍화문(弘化門), 경희궁(慶熙宮)-흥화문(興化門), 덕수궁(德壽宮)-대한문(大漢門). 모두 화(化)자가 들어가 있다. 다만 덕수궁 만이 화(化)자가 아닌 한(漢)자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1896년 처음 덕수궁을 중건할 당시 정문은 남향 정전인 중화전의 정남쪽에 있는 인화문(仁化門)이었고 그후 1902년 동쪽 구석을 허물고 대안문(大安門)을 새로 지어 정문을 만들었으며, 1904년 대화재후 중건하면서 1906년 대한문으로 고친 것이 그 이유이다.



3. 궁궐(宮闕)

--궁(宮) : 외전의 상대가 내전(內殿)이다. 임금님과 그의 가족들이 봉사하는 각종 소임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곳인데 사는 곳이 기능에 따라 구분되며 구분된 기능의 중심이 되는 곳이 여섯곳으로 집중된다. 경복궁의 경우 육궁(六宮)은 정궁(正宮 : 임금님의 침전), 중궁(中宮 : 왕비의 침전), 동궁(東宮 : 왕세자의 침전), 서궁(西宮 : 대비의 침전), 빈궁(嬪宮 : 왕의 후궁의 침전), 빈궁(왕세자빈의 침전)이다.

--궐(闕) : 임금님이 나라일을 보시던 처소가 정전(正殿)과 편전(便殿) 등을 비롯한 건물들이다.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대신들이 모여 정사를 의논하던 장소나 하늘의 운행을 살피고 임금님의 학문을 돕고, 궁을 지키던 군인들이 머물던 건물들이 궁안에 즐비하였었다. 이들이 모여 있는 일곽을 외전(外殿)이라 하고 외전이 수행하는 기능을 궐(闕)이라 부른다.



4. 흥인지문(興仁之門)인 까닭?

--도성 4대문은 모두 세글자다. 동대문의 정식 명칭은 흥인문(興仁門)인데, 어질 인(仁)자는 오행(五行)중에서 목(木)이고, 또 목은 동(東)에 해당하는 까닭에 흥인은 곧 동쪽을 일으킨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문의 현액에는 ‘흥인문’이 아니라 갈 지(之)자를 더해서 ‘흥인지문’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풍수지리학상 ‘지(之)’자라는 글자를 더해 주므로서 동쪽의 지기를 보태주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한다. 이곳 동대문 지역 일대가 다른 곳에 비해 몹시 낮고 또한 움푹 꺼져 있기 때문에 성을 쌓을 때나 동대문을 세울 때 매우 애를 먹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곳 땅 기운을 일으키고 돋우어 주자는 마음으로 넉자 현액을 걸게 되었다고 한다.





▣ 김발용 - 잘 읽었습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잘 배웠습니다.. 그런 연유였;군요.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귀한 내용!!!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