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124)당시의 신문기사-27일,28일-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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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5-24 17:33 조회1,531회 댓글0건본문
남북통일의 유지 받들자!!
향연 그윽한 빈소
오열에 잠긴 경교장!
조객의 행렬은 연일장사진
고 백범선생의 영구는 27일 상오 11시경 상주 김신소령, 조완구,엄항섭씨등 측근자들의 손에
의하여 경교장 2층으로부터 아래층 회의실로 운구되어 소침대위에 머리를 남으로 향하여 안치되었다.
그윽한 香煙속에 중국영사관에서 보내온 생화와 정인보씨의 [古亦未聞七十年 身췌心苦 (췌=병들췌)
沒而猶祝三千里 水麗山考 侍生 鄭寅普 拜哭]이라는 만사는 애끓는 정을 더 한층 깊게 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달려온 김규식 박사를 위시하여 중국영사관을 대표한 司徒德씨, 원한경박사,
이사회부장관, 김재무부장관 제씨의 조문이 잇대어 있었고 일찍이 상해에서 선생이 혁명운동을
하다가 일경에게 붙들릴 위경에 있을 때 선생을 자기 집에 감추어준 [핏취]박사가 나타난 것은
아는 이들 사이에 더 큰 감동을 주었다.
또한 양정중학, 여자상업등 남녀중등학교학생 국민학교아동들까지 동이 터서부터 통행금지
시간이 박두한 밤늦게까지 경교장으로 물밀 듯 밀려오는 유명무명의 남녀노유의 조객의 물결은
김구선생이 겨레에게 끼친 바 遺德의 재현인 듯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층의 감회를 자아내게
하였으며 특히 쨍쨍이 쪼이는 햇빛 아래 두세시간씩 기다리고 배례를 하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과
이들 어린 가슴이 북바쳐 눈물 흘리는 광경이야말로 백범선생이 젊은 세대에 끼치신 교훈이 얼마나
위대하였던가를 그대로 증명하는 듯 한층의 감회를 자아내었다. 이같이 진정으로 울리는 국민의
조문객속에 오열에 쌓여 慘變第二夜는 고요히 밝아갔다.
선생의 명정 결정
28일 [백범김구선생국민장상임위원회]에서는 선생의 명정이 결정되었는데
동명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大韓民國臨時政府主席白凡金九之柩]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태영 - 백범선조님에 관한기록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주회 - 감사합니다. 방금 전에 경교장 홈페이지에서 백범 국민장 동영상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예기에 죽어서 침상에 있는 것을 시(尸)라 하고 관속에 있는 것을 구(柩)라고 한답니다.
▣ 김재이 -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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