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여름캠프자료 거들기.(청하현 보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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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5-26 05:34 조회1,607회 댓글0건본문
▣ 청하현(淸河縣 : ☞ 현 포항시 청하면) ▣
--동쪽으로 해안까지 7리이고, 남쪽으로 흥해군(興海郡) 경계까지 11리이며, 서쪽으로 경주(慶州) 신광현(神光縣) 경계까지 13리이고, 북쪽으로 영덕현(盈德縣) 경계까진 19리이다. 서울까지의 거리는 8백 41리이다.
【건치연혁】본래 고구려의 아혜현(阿兮縣)으로, 신라 때 해아현(海阿縣)으로 개칭하여 유린군(有隣郡)의 영현(領縣)으로 두었는데, 고려조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顯宗) 때에는 경주에 예속시켰고, 본조에 들어와서 태조(太祖) 때에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가 후에 현감으로 고쳤다.
【관원】현감(縣監)ㆍ훈도(訓導) : 각 1명이다.
【군명】아혜(阿兮)ㆍ해아(海阿)ㆍ덕성(德城).
【성씨】본현 이(李)ㆍ김(金)ㆍ명(明)ㆍ주(朱) : 웅신(熊神). 정(鄭) : 속(續)이다. 남계 길(吉).
【형승】동쪽으론 푸른 바다를 누르고, 서쪽으로는 중첩된 봉우리가 나란히 섰다 : 홍여방(洪汝方)의 기문에, "동쪽으론 넓은 바다를 눌러 파도가 만경이요, 서쪽으론 중첩된 봉우리와 나란히 서 있어 운하가 천태로다." 하였다. 돌성[石堡]은 큰 강을 베개 삼고 : 조서강(趙瑞康)의 시에 있다.
【산천】호학산(呼鶴山) : 현의 서쪽 9리에 있으며, 진산이다. 내영산(內迎山) : 현의 북쪽 11리에 있다. 산에는 대(大)ㆍ중(中)ㆍ소(小) 세 개의 바위가 솥발처럼 벌려 있는데, 사람들이 3동석(動石)이라고 한다.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조금 움직이지만 두 손으로 흔들면 움직이지 않는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견훤(甄萱)의 난을 이 산에서 피했다. 도리산(桃李山) : 현의 북쪽 11리에 있다. 신귀산(神龜山) : 현의 북쪽 10리에 있으며, 세 용(龍)이 웅덩이에 있는데 가뭄에 비를 빌면 응한다 한다. 별내현(別乃峴) : 현의 남쪽 15리에 있으며 흥해군(興海郡)과의 경계에 있다. 용산(龍山) : 현의 남쪽 6리에 있다. 바다 : 현의 동쪽 6리에 있다. 개포(介浦) : 현의 동쪽 6리에 있는데, 일찍이 병선(兵船)을 배치했었으나, 해문(海門)이 광활하기 때문에 항상 풍랑의 근심이 있어서, 영일현(迎日縣) 경계인 통양포(通洋浦)로 옮겨 배치했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신라 때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해안 개포 세 곳에 해자(海子)를 파서 왜구를 막았다." 하였는데, 그 길이는 각각 2리이고, 깊이는 두어 길이 되었으며, 그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기로포(二岐路浦) : 현의 동쪽 10리에 있다. 허혈포(虛穴浦) : 현의 동쪽 7리에 있으며, 돌에 빈 구멍이 있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고송라포(古松羅浦) : 현의 북쪽 13리에 있다. 도리포(桃李浦) : 현 북쪽 11리에 있다. 벌지(伐池) : 현의 서쪽 7리에 있으며 둘레가 1만 3백 척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토산】방어ㆍ전복ㆍ대구ㆍ청어ㆍ홍합ㆍ백조어(白條魚)ㆍ김ㆍ미역ㆍ넙치ㆍ꿀ㆍ석이.
【성곽】읍성 : 석축이다. 둘레는 1천 3백 53척이며, 높이는 9자이고, 안에 2개의 우물이 있다.
【봉수】도리산(桃李山) 봉수 : 남쪽으로 흥해군(興海郡) 오산(烏山)에 응하고, 북쪽으론 영덕현(盈德縣) 황석산(黃石山)에 응한다.
【신증】【궁실】서청관(西淸館) : 객관의 서쪽에 있다.
【누정】부옹루(孚顒樓) : 곧 성(城)의 동문루(東門樓)를 말한다. 홍여방(洪汝方)의 기문이 있다. 【신증】매죽루(梅竹樓) : 동헌의 곁에 있다. 봉송정(鳳松亭) : 현의 동쪽 2리에 있다. 큰 소나무 수백 그루가 있어 해문(海門)을 가린다.
【학교】향교(鄕校) : 현의 북쪽 1리에 있다.
【역원】송라역(松羅驛) : 현의 북쪽 1리에 있다.
○ 본도에 딸린 역이 일곱이니, 즉 병곡(柄谷)ㆍ대송(大松)ㆍ망창(望昌)ㆍ주등(酒登)ㆍ봉산(峯山)ㆍ육역(陸驛)ㆍ남역(南驛)이다.
○ 승 1명이 있다.
고현리원(古縣里院) : 옛 청하현(淸河縣)에 있다. 금정원(金井院) : 현의 서쪽 7리에 있다. 고송라원(古松羅院) : 현의 북쪽 13리에 있다.
【불우】보경사(寶鏡寺) : 내영산(內迎山)에 있으며, 고려 때 이송로(李松老)가 지은 원진국사(圓眞國師)의 비가 있다. 상태사(常泰寺) : 호학산(呼鶴山)에 있다.
【사묘】사직단 : 현의 서쪽에 있다. 문묘 : 향교에 있다. 성황사 : 용산(龍山)에 있다. 여단 : 현의 북쪽에 있다.
【고적】고청하(古淸河) : 지금의 현청 소재지 남쪽으로 10리 떨어져 있다. 북아 부곡(北阿部曲) : 현의 북쪽으로 10리에 있다. 등정 부곡(等汀部曲) : 현의 동쪽 7리에 있다. 김해 부곡(金海部曲) : 현에서 서쪽으로 7리에 있다. 모등곡 부곡(毛等谷部曲) : 현의 서쪽 5리에 있다. 신지 부곡(新池部曲) : 현의 서쪽 4리에 있다. 우천 부곡(于川部曲) : 현의 서쪽 10리에 있다. 남계 부곡(南界部曲) : 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명환】본조 민인(閔寅) : 읍성을 쌓았고 또한 의창(義倉)을 설치했다.
○ 이행(李行)의 시에, "청하(淸河) 고을 생김은, 궁벽하게 넓은 바닷가에 있다네. 밭도 좋고 호구도 많아서, 부창(富昌) 보다 못지 않았것만, 한번 왜적 일어나면서부터, 쇠하고 죽는 것 날로 심하였네. 동네와 마을이 언덕이 되고 풀밭 되어, 오랫동안 노루와 사슴 노는 고장 되었었네. 현관(縣官)이 성을 쌓고, 만호(萬戶)에 신부(信符)를 두고, 배를 만들어 개포(介浦)에 대니, 수륙의 군사 위력이 생겼네. 흩어졌던 백성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밭갈고 집 지어서 제자리로 돌아갔네. 민후(閔侯)는 나의 친구, 일을 맡은 지가 두 해 남짓. 애써서 백성 진휼하고, 개연(槪然)히 의창(義倉)도 회복했네. 또 따라서 관사도 지었으니, 점차로 청당(廳堂)이 마련되었도다. 손님과 나그네 잠자리 편하고, 관리들도 주림을 면하였네. 예전부터 수령의 직분은, 이 밖에 다른 것은 없는 것일세." 하였다.
【신증】 조동호(趙銅虎).
제영 천수상겸회차명(天水相兼晦且溟) : 박효수(朴孝修)의 시에, "회호리 바람 문득 일어 바다를 뒤엎으니, 하늘과 물이 서로 어울려 어둡고도 침침하다. 은산(銀山)의 일만 봉우리 낮았다 다시 솟고, 백 천의 천둥 소리와 북 소리 일시에 일어나네. 부상(扶桑)이 떠나갈 듯 지축이 흔들리니, 누구의 작난인가 경(鯨 숫고래)ㆍ예(鯢 암고래)의 짓일세." 하였다.
[비고]
【연혁】고종 32년에 군으로 고쳤다. 《文獻備考》
【방면】현내(縣內) : 끝이 5리이다. 동면(東面) :처음은 7리이고, 끝은 15리이다. 남면(南面) : 처음은 5리이고, 끝은 10리이다. 서면 : 처음은 5리, 끝은 10리. 북면 :처음은 5리, 끝은 20리. 역면(驛面) :북쪽으로 끝이 5리.
○ 북아(北阿) 부곡은 북쪽으로 10리, 모등곡(毛等谷) 부곡은 서쪽으로 5리, 신지(新池) 부곡은 서쪽으로 4리, 우천(于川) 부곡은 서쪽으로 10리, 남계(南界) 부곡은 남쪽으로 10리에 있다.
【성지】덕성(德城) : 남쪽으로 10리에 터가 남아 있다.
【토산】대나무
【누정】해월루(海月樓) : 읍내에 있다.
《출전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3권 경상도 慶尙道 [3]》
▣ 김은회 - 윤만 형님 그간 편안 하셨는지요?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정중 - 청하 보경사와 더불어 심산 유곡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폭포수!! 내연산의 절경이 멋진 곳입니다 며칠 머물고 싶은곳...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식 -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원한 바다가 그리워집니다.
▣ 솔내영환 -
--동쪽으로 해안까지 7리이고, 남쪽으로 흥해군(興海郡) 경계까지 11리이며, 서쪽으로 경주(慶州) 신광현(神光縣) 경계까지 13리이고, 북쪽으로 영덕현(盈德縣) 경계까진 19리이다. 서울까지의 거리는 8백 41리이다.
【건치연혁】본래 고구려의 아혜현(阿兮縣)으로, 신라 때 해아현(海阿縣)으로 개칭하여 유린군(有隣郡)의 영현(領縣)으로 두었는데, 고려조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顯宗) 때에는 경주에 예속시켰고, 본조에 들어와서 태조(太祖) 때에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가 후에 현감으로 고쳤다.
【관원】현감(縣監)ㆍ훈도(訓導) : 각 1명이다.
【군명】아혜(阿兮)ㆍ해아(海阿)ㆍ덕성(德城).
【성씨】본현 이(李)ㆍ김(金)ㆍ명(明)ㆍ주(朱) : 웅신(熊神). 정(鄭) : 속(續)이다. 남계 길(吉).
【형승】동쪽으론 푸른 바다를 누르고, 서쪽으로는 중첩된 봉우리가 나란히 섰다 : 홍여방(洪汝方)의 기문에, "동쪽으론 넓은 바다를 눌러 파도가 만경이요, 서쪽으론 중첩된 봉우리와 나란히 서 있어 운하가 천태로다." 하였다. 돌성[石堡]은 큰 강을 베개 삼고 : 조서강(趙瑞康)의 시에 있다.
【산천】호학산(呼鶴山) : 현의 서쪽 9리에 있으며, 진산이다. 내영산(內迎山) : 현의 북쪽 11리에 있다. 산에는 대(大)ㆍ중(中)ㆍ소(小) 세 개의 바위가 솥발처럼 벌려 있는데, 사람들이 3동석(動石)이라고 한다.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조금 움직이지만 두 손으로 흔들면 움직이지 않는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견훤(甄萱)의 난을 이 산에서 피했다. 도리산(桃李山) : 현의 북쪽 11리에 있다. 신귀산(神龜山) : 현의 북쪽 10리에 있으며, 세 용(龍)이 웅덩이에 있는데 가뭄에 비를 빌면 응한다 한다. 별내현(別乃峴) : 현의 남쪽 15리에 있으며 흥해군(興海郡)과의 경계에 있다. 용산(龍山) : 현의 남쪽 6리에 있다. 바다 : 현의 동쪽 6리에 있다. 개포(介浦) : 현의 동쪽 6리에 있는데, 일찍이 병선(兵船)을 배치했었으나, 해문(海門)이 광활하기 때문에 항상 풍랑의 근심이 있어서, 영일현(迎日縣) 경계인 통양포(通洋浦)로 옮겨 배치했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신라 때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해안 개포 세 곳에 해자(海子)를 파서 왜구를 막았다." 하였는데, 그 길이는 각각 2리이고, 깊이는 두어 길이 되었으며, 그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기로포(二岐路浦) : 현의 동쪽 10리에 있다. 허혈포(虛穴浦) : 현의 동쪽 7리에 있으며, 돌에 빈 구멍이 있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고송라포(古松羅浦) : 현의 북쪽 13리에 있다. 도리포(桃李浦) : 현 북쪽 11리에 있다. 벌지(伐池) : 현의 서쪽 7리에 있으며 둘레가 1만 3백 척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토산】방어ㆍ전복ㆍ대구ㆍ청어ㆍ홍합ㆍ백조어(白條魚)ㆍ김ㆍ미역ㆍ넙치ㆍ꿀ㆍ석이.
【성곽】읍성 : 석축이다. 둘레는 1천 3백 53척이며, 높이는 9자이고, 안에 2개의 우물이 있다.
【봉수】도리산(桃李山) 봉수 : 남쪽으로 흥해군(興海郡) 오산(烏山)에 응하고, 북쪽으론 영덕현(盈德縣) 황석산(黃石山)에 응한다.
【신증】【궁실】서청관(西淸館) : 객관의 서쪽에 있다.
【누정】부옹루(孚顒樓) : 곧 성(城)의 동문루(東門樓)를 말한다. 홍여방(洪汝方)의 기문이 있다. 【신증】매죽루(梅竹樓) : 동헌의 곁에 있다. 봉송정(鳳松亭) : 현의 동쪽 2리에 있다. 큰 소나무 수백 그루가 있어 해문(海門)을 가린다.
【학교】향교(鄕校) : 현의 북쪽 1리에 있다.
【역원】송라역(松羅驛) : 현의 북쪽 1리에 있다.
○ 본도에 딸린 역이 일곱이니, 즉 병곡(柄谷)ㆍ대송(大松)ㆍ망창(望昌)ㆍ주등(酒登)ㆍ봉산(峯山)ㆍ육역(陸驛)ㆍ남역(南驛)이다.
○ 승 1명이 있다.
고현리원(古縣里院) : 옛 청하현(淸河縣)에 있다. 금정원(金井院) : 현의 서쪽 7리에 있다. 고송라원(古松羅院) : 현의 북쪽 13리에 있다.
【불우】보경사(寶鏡寺) : 내영산(內迎山)에 있으며, 고려 때 이송로(李松老)가 지은 원진국사(圓眞國師)의 비가 있다. 상태사(常泰寺) : 호학산(呼鶴山)에 있다.
【사묘】사직단 : 현의 서쪽에 있다. 문묘 : 향교에 있다. 성황사 : 용산(龍山)에 있다. 여단 : 현의 북쪽에 있다.
【고적】고청하(古淸河) : 지금의 현청 소재지 남쪽으로 10리 떨어져 있다. 북아 부곡(北阿部曲) : 현의 북쪽으로 10리에 있다. 등정 부곡(等汀部曲) : 현의 동쪽 7리에 있다. 김해 부곡(金海部曲) : 현에서 서쪽으로 7리에 있다. 모등곡 부곡(毛等谷部曲) : 현의 서쪽 5리에 있다. 신지 부곡(新池部曲) : 현의 서쪽 4리에 있다. 우천 부곡(于川部曲) : 현의 서쪽 10리에 있다. 남계 부곡(南界部曲) : 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명환】본조 민인(閔寅) : 읍성을 쌓았고 또한 의창(義倉)을 설치했다.
○ 이행(李行)의 시에, "청하(淸河) 고을 생김은, 궁벽하게 넓은 바닷가에 있다네. 밭도 좋고 호구도 많아서, 부창(富昌) 보다 못지 않았것만, 한번 왜적 일어나면서부터, 쇠하고 죽는 것 날로 심하였네. 동네와 마을이 언덕이 되고 풀밭 되어, 오랫동안 노루와 사슴 노는 고장 되었었네. 현관(縣官)이 성을 쌓고, 만호(萬戶)에 신부(信符)를 두고, 배를 만들어 개포(介浦)에 대니, 수륙의 군사 위력이 생겼네. 흩어졌던 백성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밭갈고 집 지어서 제자리로 돌아갔네. 민후(閔侯)는 나의 친구, 일을 맡은 지가 두 해 남짓. 애써서 백성 진휼하고, 개연(槪然)히 의창(義倉)도 회복했네. 또 따라서 관사도 지었으니, 점차로 청당(廳堂)이 마련되었도다. 손님과 나그네 잠자리 편하고, 관리들도 주림을 면하였네. 예전부터 수령의 직분은, 이 밖에 다른 것은 없는 것일세." 하였다.
【신증】 조동호(趙銅虎).
제영 천수상겸회차명(天水相兼晦且溟) : 박효수(朴孝修)의 시에, "회호리 바람 문득 일어 바다를 뒤엎으니, 하늘과 물이 서로 어울려 어둡고도 침침하다. 은산(銀山)의 일만 봉우리 낮았다 다시 솟고, 백 천의 천둥 소리와 북 소리 일시에 일어나네. 부상(扶桑)이 떠나갈 듯 지축이 흔들리니, 누구의 작난인가 경(鯨 숫고래)ㆍ예(鯢 암고래)의 짓일세." 하였다.
[비고]
【연혁】고종 32년에 군으로 고쳤다. 《文獻備考》
【방면】현내(縣內) : 끝이 5리이다. 동면(東面) :처음은 7리이고, 끝은 15리이다. 남면(南面) : 처음은 5리이고, 끝은 10리이다. 서면 : 처음은 5리, 끝은 10리. 북면 :처음은 5리, 끝은 20리. 역면(驛面) :북쪽으로 끝이 5리.
○ 북아(北阿) 부곡은 북쪽으로 10리, 모등곡(毛等谷) 부곡은 서쪽으로 5리, 신지(新池) 부곡은 서쪽으로 4리, 우천(于川) 부곡은 서쪽으로 10리, 남계(南界) 부곡은 남쪽으로 10리에 있다.
【성지】덕성(德城) : 남쪽으로 10리에 터가 남아 있다.
【토산】대나무
【누정】해월루(海月樓) : 읍내에 있다.
《출전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3권 경상도 慶尙道 [3]》
▣ 김은회 - 윤만 형님 그간 편안 하셨는지요?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정중 - 청하 보경사와 더불어 심산 유곡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폭포수!! 내연산의 절경이 멋진 곳입니다 며칠 머물고 싶은곳...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식 -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원한 바다가 그리워집니다.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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