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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軒(기헌) 金琦(김기)의 丁生傳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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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6-08 00:03 조회1,5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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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軒(기헌) 金琦(김기)의 丁生傳 (06)





■ 연세어문학 제5집 (1974,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p15

失意의 美學 -미발표 한문소설 丁生傳 考-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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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作品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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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虛勢로서의 人生達觀



본 작품의 後半에서는 자신에 주어진 운명의 괴로운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꿈도 소망도 체념한 채 그저 그렇게 세월에 밀려 살아온 주인공 정생이 속세의 인고를 벗어버리고 청정한 자연 산수 속에서 仙界의 眞樂을 즐기며 化去한다.



이런 인생의 말년 安樂은 어느 시대, 어는 곳을 막론하고 누구나 懇望하는 생활이지만 특히 젊은 날에 꿈을 좌절당하고 어쩔 수 없이 諦念(체념)된 生을 유지해 온 정생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晩年의 안락된 생활은 한층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이며, 또 소망할 수 있는 보람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망하는 만년의 안락된 생활도 결코 뜻대로는 안되는 것이며, 더구나 본 작품에서 정생이 누리는 것과 같은 仙界 眞樂을 즐기는 생활은 현실적으로 있는 생활이 아니며 또 있을 수도 없는 생활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본 작품의 前半이 인간현실에 있을 수 있고 또 있었던 인생을 그린 것이라면 後半은 인간 현실에는 실제로 있진 않지만 창백하게 소망해야 했던 幻想(환상)같은 인생의 설계도라 하겠다.



이런 설계도는 仙界의 眞樂이 있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해온 道敎적 인생론이 허탈한 인간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인생의 위안부로 誘惑(유혹)해 왔기 때문에 설계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작품중에 ----- 나 ----- 이라 心吐(심토)하는 정생의 이야기는 다만 자연산수로의 隱遁(은둔)만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계의 진락을 기대하는 소망의 辯(변)인 것이다.



여기서 酷好山水(혹호산수)는 현실패배 혹은 현실부정에서 遠因되어 나온 것이지만 그것은 정생 자신의 말대로 塵網(진망)으로부터 해탈하여 不○三公하는 진락을 얻는 출발점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정생은 속리산 암자에서의 靜養(정양)으로 만족하지 않고 아들을 따라 다시 絶俗世界(절속세계) 라고 생각하는 이화동에 깊이 들어가 卜居(복거)하게 되고, 여기서 參同契(참동계)에 의한 수련과 채식뿐만 아니라 童山蔘(동산삼)을 얻어먹고 成仙이 되고 그리하여 선계의 진락을 누리지만, 이런 선계진락 속에서 생을 달관한 양 자부하면서도 현세에 대한 인생포부와 생활사연들은 쉽사리 망각하지 못했고 또 망각하지 못해서 현세 인생에의 미련을 사뭇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본다.



만일 참 신선으로 成覺했다면 두 아들이 올 수도 없고 또 올 필요도 없는 그런 초현실 세계에 살아야 하며 또 아들의 봉양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뭇 俗人이 찾아오고 아들의 봉양을 받으며 정생은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정생의 成仙地點은 塵世(진세) 인생의 번뢰는 잊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진세 인생에의 미련을 불태울 수도 있었던 묘한 地點이었으며, 이 지점은 이조의 失意한 많은 선비들이 즐겨 그리던 지점인 것이다.



이런 지점이었으므로 정생은 자기 아들의 才學(재학)이 현세에 버림받는 것을 아까와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속세 인간들의 미련인 後世 세상에서의 자신의 인생여하를 알고 싶어 아들의 道術을 빌어 극락과 천국을 유람하며 정말 신선이라면 당연히 망각되고 무시될 수 있는 이조서리의 딸에 대한 죄책감도 어쩌지 못해서 그 여인의 幽界(유계)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幽界와 上界를 유람하고 그 여인과 자신의 人間緣(인간연)이 모두 불교적 인생론에 의한 定緣(정연)의 필연적인 결과로 인력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합리화하고 자위하는 것이다.



現世 인생에의 미련은 이런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정생 자신의 사후의 가문 聲譽(성예) 까지도 염려되어 작은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현세인생적 미련은 정생 자신이 처음부터 출세의욕을 안 가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젊은 날의 포부와 의욕은 누구보다도 컸었다는 것을 반증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며 그 포부와 의욕이 컸음으로 해서 失意도 그만큼 컸었고 그 失意만 안고 인생을 살아갈 수 없었으므로 환상같은 선계 진락을 찾아 입산한 것이다.



주인공 정생의 이런 인생역정은 ----- 라 한 정생 자신의 술회나 -----라 한 아들인 명승의 평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두 글에서 읽을 수 있는 생의 달관은 현세에서의 꿈을 박탈당한 채 어쩔 수 없이 自慰(자이)를 위해 지어보이는 허세로서의 달관인 것이다.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연일 수고가 많습니다.

▣ 솔내영환 -

▣ 김항용 -

▣ 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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