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134) 서거 당시 신문 발췌(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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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6-13 20:10 조회1,605회 댓글0건본문
대통령과 부인
김구선생 영전에 조문
생략
조병옥박사
김구옹 서거에 조전
생략
殺到하는 조문객
4일 현재 110만명
국가의 재건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칠십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선생의 급서의 흉변을 듣자
삼천만 게레는 가슴을 터놓고 방방곡곡에서 친상을 당한 것과 다름없이 설움에 복바쳐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는데 지난 26일에 선생이 서거한 후로 경교장 앞에 모여드는 조문객의 長蛇의 행렬은
선생이 몸소 가르치신 민족독립의 거룩한 유흔에 엄숙히 머리를 숙이고 참을 수 없는 울음에
복바쳐 있다. 그런대 래일의 장례식을 앞둔 작 4일 정오까지 조문객수는 실로 110만명에 달한다
하며 생전에 선생이 남겨 놓으신 덕을 새삼스리 느끼게 하고 있다 한다.
백범선생 묘비로
남포烏石 賻儀
2일 하오 고 백범선생 장의위원회에 묘비를 부의해 온 사람이 있다. 시내 명륜동 1가 30번지에 사는
趙容煥.조정양씨는 백범선생의 묘비를 바치겠노라고 장의위원회를 찾아왔다는데 그 비석은
남포오석이며 길이는 6자, 넓이는 2자 반이라고 한다.
김구선생 초상화
시내 아현동에 사는 金柱亨 화백은 2일 상오 고 백범선생 장의위원회에 백범선생의 초상화를 그려
왔다는데 동 초상화의 크기는 20호 정도이라 한다.
경교장에 血書接踵
3일 현재로 고 백범선생의 영전에 전해온 혈서는 무려 22통에 달하는데 4일 상오 2시에는
建實출신 林宗模씨가 [南北統一]이라고 쓴 혈서를 전달하여 왔고 또 동일 상오 10시에는
개성에 있는 金元基라는 청년이 역시 [南北統一]이라고 쓴 혈서를 전달하여 왔다 한다.
초비상경계 실시
금일 시내일부 교통차단
생략
백범묘소 산역에
청소년단체 봉사
고 백범선생이 고요히 잠잘 효창공원 안 三烈士묘지 서편 산록묘소의 산역은 지난 6월29일부터
시작되었는데 효창동민을 비롯한 청파동민 한청마포구단원, 대한소년단원등 약 500여명은 첫날부터
이에 호응하여 분묘방축공사 및 사도로 개수공사에 무보수로 노력을 제공하고 있어 장의위윈회측이
감격해 하고 있다고 한다.
창암학원에 희사금
시내 마포에 있는 창암학원에 희사금이 들어왔다. 2일 정체모를 청년이 동 학원을 찾아와
고 백범선생의 유지를 계승할 만한 인재를 길러 주시오 라고 하며 5천원을 희사 하였다는데
동청년은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한다.
국회의원 전의원이 국민장 참가
조위금 갹출
생략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발용 - 단행본으로 엮어도 베스트셀러 예감입니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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