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정동성 서(上征東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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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6-16 18:32 조회1,548회 댓글0건본문
상 정동성 서(上征東省書)
이제현(李齊賢)
고려국 늙은 여러 관원은 삼가 목욕재계하고 정동성 여러 상국 집사께 글을 올립니다. 조정 사신 두적(朶赤) 등이 교천대사(郊天大赦)의 말씀을 받들고 왕경에 옴에 있어 우리 보탑실린왕(寶塔實憐王)께서 관리를 이끌고 의장(儀仗)을 갖추어 성 밖까지 출영하고 본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조서를 다 듣고 나서 사신 등이 나아가 왕을 붙잡아 말에 태워서 돌아갔습니다. 일이 창졸간에 일어나 모든 배신(陪臣)들도 몸 둘 곳이 없었으니, 오히려 다시 어떻게 말씀드리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하면, 왕은 연소해서 많을 일을 겪지 못해서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대로 행했기 때문에 이에 이른 것이지, 원래 그 본 뜻은 또한 다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해가 위에서 내리 비치는데 어떻게 속일 수 있겠습니까. 또 생각하면 저의 나라 시조 왕씨는 바다 구석에서 개국한 것이 426년이요 자손이 28대를 대대로 계승하며, 역대로 송ㆍ요ㆍ금과 사신을 통하여 왕래하며 견제할 뿐이다가 우리 태조 성무(聖武) 황제의 왕업이 일어날 무렵에 이르러 금산왕자(金山王子)란 자가 있어 중원의 백성을 몰아 약탈하며, 망한 요의 왕업을 회복하려 꾀하다가 세력이 다하자 동쪽으로 달아나 도서에서 제멋대로 날치므로 태조께서 합진(哈眞)ㆍ찰랄(札剌) 두 장수를 보내어 죄를 다부지게 나무라게 되었는데 날씨는 차고 눈이 깊어 군량을 대지 못함에 우리 충헌왕(忠憲王)이 조충(趙沖)ㆍ김취려(金就礪) 등을 보내 군사를 돕고 군량을 주어 일거에 적을 깨쳤습니다. 이에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만세의 자손이 오늘날까지 잊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로잡은 포로를 교환하는 것으로 믿음을 삼았으니, 지금 저의 나라에 거란장(契丹場)이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세조 문무 황제께서 양양(襄陽)에서 군대를 사역하는데, 아리패가(阿里?哥)가 막북(漠北)에서 모반을 선동하자 제후들은 두려워하고 의심하며 각기 진퇴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충경왕(忠敬王)은 그때 세자였는데, 서리와 이슬을 무릅쓰고 곧장 변량(?梁)에 이르러 길에서 맞으니, 세조께서 바라보시고 놀라 기뻐서 이르기를,
“고려는 아득히 먼 나라인데도 이제 내가 북쪽으로 돌아가 장차 대통을 이으려는데, 저들은 그 세자가 스스로 와서 귀순하여 붙좇으니, 하늘이 나를 돕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충경왕이 이미 나라를 맡음에 배신 임유무(林惟茂) 부자는 항복하여 속국이 됨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강화에서 군사를 믿고 임금의 폐립(廢立)을 제멋대로 하므로 세자 충렬왕이 빨리 가서 조정에 알리자 세조께서는 격노하여 왕을 불러 복위(復位)하라 하며, 역마를 잡아타고 궁중에 들어가 임금을 뵈옵고 왕과 세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와 역적들의 무리를 사로잡아 죽임으로써 물을 버리고 육지로 나와 일심으로 공직(供職)하였습니다. 충렬왕 때에 세조께서 두 번 일본을 정벌하였는데, 왕이 김방경(金方慶) 등을 보내어 그 전함을 수리하고 매양 선봉이 되었으며, 또 내안(乃顔)의 무리 합단(哈丹)이 수달달(水達達) 여진의 땅을 쳐서 함락시키고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천위(天威)를 거스르려 하자, 왕이 출병하여 그들을 맞이해 쳐서 패전시켰습니다. 대덕(大德) 말년에 익지예불화왕(益知禮不花王)이 인종(仁宗) 황제를 도와 난을 평정하고 궁전을 청결히 하여 무종 황제를 봉영해서 일등 공신이 되었으니, 이는 왕씨가 조정에 충성함이 오래인 것입니다. 또 생각하면 세조 황제께서 홀독겁미사공주(忽篤?迷思公主)를 신하에게 시집보내어 이 이가 익지예불화왕을 낳았으며, 익지예불화왕은 아납특실리왕(阿納?室里王)을 낳았고, 아납특실리왕은 보탑실리왕(寶塔失里王)을 낳았고, 보탑실리왕은 비록 소원했지만 그 세조 때에는 참으로 골육과 같은 친분이 있었습니다. 또 생각하면 황후 기씨(奇氏)는 저의 나라에서 탄생하여 위로 지존의 배필이 되어 태자를 낳아 길러 천하께서 기뻐하고 의뢰하는 바 되었으니, 조정이 저의 나라에 대한 대접이 마땅히 여러 야만과는 같지 않아야 합니다. 또 생각하면 저의 나라는 일본과 바다를 격해 이웃했으므로 우리가 복을 받으면 저들은 그 귀화의 더딤을 부끄러워하고, 우리가 죄를 얻으면 저들은 그 고집하고 명민하지 못한 누태(陋態)를 달가워 했음은 형세가 반드시 그러했던 것입니다. 옛날에 주 나라가 위후(衛侯) 간(?)을 잡아 마침내 복위케 하고 한 나라가 양왕(梁王)무(武)를 불러 또한 양 나라로 귀부케 한 것은 왕자의 큰 도량을 보이는 소이가 있어서입니다. 하물며 우리 조정은 열성(列聖) 이래로 어진 마음이 있어 살상을 싫어하는 덕이 주 나라. 한 나라보다도 더 나음에 있어서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몸소 남쪽 교외에서 조상을 하늘과 함께 제사 지내고 대례가 이미 이루어지고 덕음(德音)을 널리 사해에 펴 춤추며 환호하는데 진실로 하나의 물건이 그 어진 은택을 입지 못함이 있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오직 성천자께서 허물을 용서하는, 보다 큼이 없는 어진 마음으로써 만약 생각을 한 번 돌려 우리 보탑실리왕으로 하여금 죄를 짓고 잡힌 것을 사면하여 놓아 주시어 은혜의 물결에서 헤엄치게 하시고, 또 왕씨의 군신과 사직으로 하여금 그 이름을 바꾸지 않아 의관 풍속을 아울러 그 제도를 따르고 산해의 어리석은 백성이 옛 생업에 편안함을 얻을 수 있게 하신다면 태조와 세조께서 저의 나라를 도탑고 가엾게 여기신 뜻이 어찌 더 밝아지지 않겠으며, 세조께서 공주를 신에게 시집보내어 자손을 낳으므로써 먼 곳의 마음을 매어 둔 그 규모가 어찌 더욱 멀어지지 않겠으며, 황후가 태자를 낳아 기르며 천하가 기뻐하고 의뢰한 마음이 어찌 더 훌륭해지지 않겠으며, 저의 나라가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적과 싸우려는 뜻이 어찌 더욱 굳어지지 않겠으며, 굴복하지 않은 일본 백성이 그 고집하고 명민하지 못함을 고쳐 귀화를 즐거워하는 그 뜻이 어찌 더욱 두터워지지 않겠으며, 4백 26년 28대를 자손이 이어 제사가 끊이지 않았던 귀신이 어찌 더욱 감동하지 않겠으며, 조정이 허물을 용서하고 보다 큼이 없는 어진 마음이 있어 살상을 싫어 하는 덕이 어찌 천하 후세에 더욱 퍼지지 않겠습니까. 엎드려 생각건대 집사께서는 무식하고 비천한 사람의 말을 굽어살펴 천총(天聰)에 달하게 하소서.
출전;동문선
▣ 김항용 -
▣ 김재원 - 연일 자료발굴에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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