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문경공(文敬公) 김수동(金壽童)할아버지 처음 시호는 경순공(頃順公)

페이지 정보

김태서 작성일03-06-25 20:06 조회1,880회 댓글0건

본문

○ 우리 나라 법에 봉상시에서 시호의 의정을 주장하게 되어 있는데, 중종이 중흥한 이래로 시호의 의정이 부정하므로, 홍문관의 응교 이상이 가서 참석하여 논박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때에 김수동(金壽童)의 시호를 경순공(頃順公)이라 하고, 유순정(柳順汀)의 시호를 무안공(武安公)이라 하였는데, 의정부에서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하지 않다고 봉상시로 하여금 고쳐 논의하게 하였다. 그 후로부터 시호를 의정할 즈음에 그 자손들이 분주히 다니며 간청하여 기필코 아름다운 시호를 얻은 후에야 말려고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뜻에 맞지 않으면 문득 다시 추개했으므로 의정한 바가 모두 정당하지 못하였다. 무관으로 정국 공신(靖國功臣)에 참여한 장정(張珽)이라는 자가 죽었는데, 안팽수(安彭壽)가 봉상시 정(正)이 되어 시호를 충렬(忠烈)이라 정하였다. 이로부터 시호에 문(文)ㆍ충(忠) 두 글자가 없으면 사람들이 모두 괴이하게 여겼다. 《음애일기(陰崖日記)


▣ 솔내영환 - 아하!!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배웠습니다.
▣ 김발용 - 좋은 공부 하였습니다.
▣ 김윤만 - 그랬었군요. 좋은 공부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