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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여름캠프2003 (02)---상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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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6-30 00:42 조회1,5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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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김씨 족보



●충렬공 遺墟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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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편에는 공의 別莊이 있던 上洛臺가 江上절벽에 우뚝 서 있으니 안동군 명소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곳에 서 있는 上洛臺碑는 수십년 전에 안동군수로 있던 ●金在煥씨와 후손 ●大容, ●範容 제씨가 이곳을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上洛臺

상락대 정상에는 낙낙장송이 우뚝 서 있고 절벽 아래는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上洛臺碑

충렬공께서 젊으신 시절에 무술을 연마하시고 공께서 거처하시던 별장이 있던 곳을 영구히 기념 보존하기 위하여 수십년 전에 안동군수로 있던 ●재환씨와 후손 ●대용, ●범용 제씨가 기념비를 세웠다.

어느 때인가 이 비가 넘어져 강으로 유실되어 1996년에 다시 세웠다. 상락대는 안동군 명승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위치 : 안동시 풍산면 회곡동 앞 낙동강 건너편에 있다.







■ 안동김씨 대종회보 제56호 (1997. 4)



●上洛臺 복원사업 완료

지난해 40만원을 예산에 반영하여 상락대를 복원한 바 복원한 그 자리가 옛 상락대 자리가 아님이 그 마을 노인들의 증언으로 밝혀져 원 위치를 확인한 바 현 장소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옛날 坐臺가 확인되어 今春 3월 9일 원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 안동김씨 홈페이지



● 대종회 연혁

---1996 上洛臺를 四十萬원을 들여 복원하였으며,

---1997

안동 上洛臺를 복원할 때 正位置를 잘못 파악하여 입석하였었는데 그 고장 노인들의 고증을 다시 들어 원 위치를 확인하여 바르게 옮겨 세웠다.



● 안동 고유제 동행기 (김발용 2003/03/29 17:30)

회곡동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상락대를 지날 때쯤 안동유사 봉수님께서 상락대에 관련해 전해오는 전설 하나를 들려주십니다. 충렬공 할아버님을 너무나 사모하던 한 낭자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낭자의 유언에 따라 상락대 인근에 장사 지냈고 그 자리에는 지금까지도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래 상락대에는 상락대비가 존재했으나 동네사람들이 일이 잘 안되면 그것이 상락대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비를 강에 버렸다고 합니다. 수년전에 봉수님과 몇분이 상락대비를 찾기위하여 상락대 정상부근을 뒤졌으나 찾지못하고, 동네의 100살이 넘은 어른으로부터 구전되어오는 위치를 전해들어 파보니 상락대비 좌대가 발견되었다고합니다. 그래서 그 좌대를 꺼내어 현재의 상락대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위치가 바로 풀이 나지않는 그 위치였다 합니다.







■ 경북마을지 下권



●풍산면 회곡리

고려 명신 충렬공 ●김방경 장군이 노시던 곳으로 경관지로 알려진 낙동강의 절벽에 상락대가 마을 앞에 있다. 마을 앞의 소는 낙연이며, 그 앞에 단호리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다. 상락대의 동편의 바위는 마암이라 가파른 절벽이 대의 경관을 더욱 높인다.



●남후면 단호리(丹湖里)

2) 마을의 역사 : 영가지의 방리조에 실리기를 " <전략> 상락대는 안동부에서 25리가 되는 檜谷村(회곡촌)의 남쪽 강가의 벼랑이다. 상락군 ●김방경이 일찍이 遊賞(유상)했던 곳임으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동쪽에 馬巖(마암)이 있어 깍아 세운 듯 천길이나 되는 바위절벽이고, 마암의 서쪽은 돌로된 臺가 둘러있어 기이한 경치가 형용하기 어려울만치 아름답고, 아래쪽의 맑은 호수는 배를 띠울 만하고, 위쪽에는 수십인이 앉을만하다. 돌 사이에 菲菜(비채, 부추의 한가지)가 많이 살아 있는데 전하는 말로는 ●상락군이 심은 것이라 한다." 라 적고 있다.









작성자 :김영환() 작성일 : 2001/12/17 09:24 (from:211.219.76.1) 조회 : 56

●충렬공 자료 (14) 상락대(上洛臺)



작성자 :김태서 작성일 : 2002/04/21 18:05 (from:211.186.2.184) 조회 : 66

●상락대(上洛臺)



단호동(丹湖洞)

상락대(上洛臺) 회곡 남쪽 강 건너 있으며 洛東江이 흐르고 마암절벽이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상락대 고려 후기의 명장 ●金方慶이 즐겨 유상하던 상락대는

豊山邑 丹湖洞 지경으로 남후면 검안 속칭 대애실 앞 眉川 물이 낙동강에 合流하는

목중이에서 서쪽으로 약 5里 지점이다.



南先面 亭上洞 앞에서 半邊川을 합쳐 영호루 앞을 지나며 밋밋하게 서남으로 흐르던

낙동강이 水下洞의 속칭 무주무 마을 앞에 이르러 우회전으로 꺾여 북으로 ㄱ자를 그려

松峴·막곡(安東市와 豊山邑의 경계) 앞까지 깊숙히 들어 갔다가 소쿠리형을 그리며

남으로 되돌아 나옴으로 완연히 ㄹ자를 그리고 나서 桂坪洞 속칭 윗절마을 앞에 이르러

완만히 굽이를 틀어 잠시 서쪽으로 흐르고 속칭 아랫절마을 앞에 이르러 북서로 방향을 바꾼다.



강굽이가 북서로 꺾이는 아랫절마을 對岸. 길게 이어진 철길 절벽이 검푸른 강물, 沼를

굽어보며 굽이굽이 山水의 寄景이 펼쳐지는데 ●金方慶이 노닐던 상락대가 바로 여기이다.

상락대에서 江기슭을 거슬러 굽이를 돌아 오르면 江心에 드리운 절벽 위에 古色蒼然한

한 채의 정자가 있는데 世宗대의 文臣 ★裵桓(杜門강洞 七十二賢인 ★裵尙志의 아들)이

은퇴하여 만년을 지내던 별장이다.



그 동쪽엔 馬岩이 있어 절벽이 천길이나 깎아지르고 마암 서쪽엔 石臺가 서려 돌아

그 기괴함이 이를 데 없다. 그 아래 못이 있는데 배를 대고 오르면 石臺는 수십명이

앉을만큼 넓다. 바위틈에는 부추가 많이 나 있는데 ●金方慶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지막한 야산을 배경으로 강굽이 절벽 아래 깃든 上洛臺 一境은 江을 사이에 둔 들녁

저편에 마을이 빤히 건너다 보이지만 고요하고 깊숙한 맛은 그대로 속세를 멀리 떠난

심산 유곡이다. 등 뒤에는 온통 울창한 숲과 천길만길의 위태로운 절벽이 저 멀리에

까지 이어 뻗고 앞은 널따란 소를 이루어 검푸른 강물이 유유히 굽이치며 太古의 자연

그대로 원시의 정적이 고스란히 이어 흐르는 천고의 秘境이다.

출처:풍산농협 (풍산읍 안교리 123. 054-858-7101)



▣ 김정중 - 감사합니다! 위 세번째 줄 미천(眉川)은 저의 고향 우리 선김 도평의공파 600년 세거지 사촌(沙村)앞을 휘감아 돌아 장장 70여리를 흘러 상락대에 도착 합니다. 지금 이순간도 미천 고향의 강물이 상락대를 지나 회곡을 거쳐 큰 낙동강을 만들어 영남인의 젖줄이 되고 있지요

▣ 김정중 - 물론 사촌 앞 영귀정(송은 김광수 선조님 정자)밑으로 흐르는 미천이지요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2/12/13 22:57 (from:211.57.153.114) 조회 : 57

●안동 상락대(上洛臺)를 노래함



<민족문화추진회 홈페이지>

1. 遊★上洛臺 示同舟人

문집번호 : 041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203

2. ★上洛臺又次一?

문집번호 : 041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217

3. 柳校理而見訪★上洛臺 有詩 求和

문집번호 : 041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251

4. 九月望 遊★上洛臺二首

문집번호 : 041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253

5. 三月望 與徐城主君受益同遊★上洛臺

문집번호 : 041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309

6. ★上洛臺

문집번호 : 048 서명 : 鶴峯集 저자 : 金誠一 페이지 : 38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홈페이지>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 분류별 > 한국문집총간 > 栢巖集 > 栢巖先生年譜

。○先生二子幾善止善。適因事上京。臨海欲救解其奴。請與相見。幾善等辭不往。臨海將?之。有一宮奴曰。異日金令公入京。吾輩皆不免於死。臨海乃止。夏游輞川絶壁。輞川在府西洛江上流。先生與府人權紀權行可金潗李明叔汎舟靑城山下。過★上洛臺。游輞川。有詩二首。李明叔作序以紀其事。與書柳西厓論圃隱鄭先生文集校正事





권호문 1532(중종 27)∼1587(선조 20).

김성일 1538(중종 33)∼1593(선조 26).

김륵 1540(중종 35)∼1616(광해군 8).



송암집(松巖集) 권호문(權好文)저 원집 6권ㆍ부록ㆍ속집 6권ㆍ별집 2권 합 5책(437판) 목판본(원집ㆍ속집) 석인본(별집). 한국문집총간 41집.

권호문(1532~1587)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 본관은 안동. 이 황의 문인.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함. 시가(詩歌)도 남김.

본 영인저본은 안동 청성서원(靑城書院)에서 1679년 간행된 원집과 후손 택부(宅孚) 등이 1809년 간행한 속집과 연보를 합편하여 후손 영갑(寧甲) 등이 1895년 간행한 별집을 합부한 것임.



학봉집(鶴峯集) 김성일(金誠一) 원집 7권ㆍ속집 5권ㆍ부록 4권 합 10책(749판) 목판본. 한국문집총간 제48집.

김성일(1538~1593)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 본관은 의성. 이 황의 문인. 사가독서 후 사성(司成)에 이름. 통신부사로서 일본에 다녀옴.

본 영인저본은 여강서원(廬江書院)에서 1649년 간행한 원집과 사손(嗣孫) 주국(柱國) 등이 1782년 간행한 속집을 후손 진귀(鎭龜) 등이 습유를 더하여 재편한 것을 1851년에 간행한 중간본.



柏巖先生文集(柏巖先生文集). 목판본. 1772年刊. 原集 6권, 補遺, 年譜, 附錄 합 4책. 10행 22자. 21.6×15.5(㎝). 上下二葉花紋魚尾. 규장각장본〈奎4317〉. 叢刊 50.

□ 저자

金? : 1540년(중종 35)~1616년(광해군 8). 자는 希玉. 호는 柏巖. 본관은 禮安. 朴承任, 黃俊良, 李滉의 門人. 시호는 敏節

栢巖集

김륵(金?) 著. 6卷·연보(年譜)·부록(附錄) 合4冊(268板). 목판본(木版本). 한국문집총간 50집.

김륵(1540-1616)의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 본관은 예안(禮安), 시호는 민절(敏節). 박승임·황준량·이황의 문인. 대사헌에 이름. 저본은 후손 휘(?)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편차하고, 연보(年譜)와 부록(附錄)을 합하여 1772년에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임.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글 감사합니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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