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캠프2003 (03)---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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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7-01 01:21 조회1,736회 댓글0건본문
작성자 :솔내영환 작성일 : 2002/09/12 10:58 (from:211.227.73.23) 조회 : 71
회곡동 할머니(충렬공 배위) 설단 고유문
■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설단 고유문(冷平國大夫人竹州朴氏設壇告由文)
생각건대 우리 先祖(선조) 忠烈(충렬)府君(부군)께옵서는
세상드문 英材(영재)로서 開國(개국)하신 元勳(원훈)일세.
資質(자질)은 智勇(지용)있고 氣槪(기개)는 山川(산천)을 움직였네.
後孫(후손)에게 蔭德(음덕)내려 代代(대대)로 높아졌네.
수많은 後孫(후손)들은 八方(팔방)으로 펴졌는데
오직 그의 현부인(賢夫人)은 竹山(죽산)에서 名門(명문)일세.
冷平(냉평)으로 받은 誥命(고명) 夫人(부인)의 尊稱(존칭)이니
거룩하신 그 淑德(숙덕)은 君子(군자)의 配匹(배필)이요
밝고 맑은 그 威儀(위의)를 이어받아 터전되니 가장 미뤄 감동되네.
幽宅(유택)은 詳考(상고)할 길 없어 花林(화림)모두 변했는데
累百年(누백년)간 恨歎(한탄)하여
★謙(겸), ★梅(매) 두어른과 ★荷潭(하담), ★訥菴(눌암)할아버님은
혹은 封標(봉표)修築(수축)하고 혹은 祭享(제향)드렸으나
어떤사람 作亂(작란)으로 바로 碑石(비석) 잃게되니
子孫(자손)들의 痛嘆(통탄)함이 어찌 極(극)에 있을 손가.
이제 檜谷(회곡) 돌아보니 우리 先祖(선조) 胎址(태지)일세.
착하신 夫人(부인)께서 이에서 늙으시니
田園(전원)에 물러나와 그 家庭(가정)을 즐기심에
需浦(수포)에서 供饋(공궤)받고 洛臺(낙대)에서 遊宴(유연)하니
江山(강산)도 생각나고 草木(초목)도 香氣(향기)나네.
世態(세태)많이 변하여서 그것마저 없어지고
平泉花石(평천화석) 그것만이 보배로 지켜왔네.
京鄕人事(경향인사)計劃(계획)으로 兩湖(양호)에다 通文(통문)해서
그의 터에 設壇(설단)해서 追慕(추모)하게 되었도다.
碑(비)에는 史蹟(사적)쓰고 壇(단)에는 祭祀(제사)모셔
百代(백대) 길이 氣通(기통)하고 八方(팔방)소리 같이하니
壽岑(수잠)은 가까옵고 花山(화산)서로 바라보니
하물며 陵洞(능동)산을 한 脈(맥)에서 갈라진곳,
儒林(유림)의 計劃(계획)으로 占(점)을 쳐서 詳考(상고)하여
아름다운 三尺碑石(삼척비석) 輝煌(휘황)하게 세우는데
이에 吉辰(길신) 擇(택)하오니 삼월 淸明(청명)시절이라.
봄비 처음 적셔주고 밤이슬은 방울지니
百代(백대)千年(천년) 길이 두고 제사드릴 땅이로다.
祭酒(제주)와 丹香(단향)으로 後孫(후손)들이 모여드니
洛東江(낙동강)물 흘러가고 騫芝山(건지산)은 푸르도다.
焚香(분향)煙氣(연기) 서리는데 先靈(선령)께서 降臨(강림)하사
行禮(행례)함이 嚴肅(엄숙)하니 福(복)을 많이 받을거요,
복많이 받음으로 尊靈(존령)또한 昭明(소명)하리.
이제부터 永遠(영원)토록 依支(의지)함이 있으리니
祭壇(제단)앞에 세운 碑石(비석) 於千年間(어천년간) 가오리다.
후손 통정대부 부호군 ★英洛(영락) 지음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2/10/01 21:33 (from:211.57.153.114) 조회 : 83
忠烈公 배위 冷平 國大夫人 (죽주박씨) 할머니는?
☞ 1300년에 이진이 찬한 충렬공 묘지명에
---전취 박씨(前娶 朴氏)는 공(公)보다 먼저 돌아가시어
또다시 손씨(孫氏)를 재취(再娶)하여 딸 한 분을 나셨는데, 그 따님은 통례문기후(通禮門 候) 채의(蔡宜)에게로 출가(出嫁)하였다.--- 라는 기록으로 볼 때
후취의 딸이 출가할 시기라면 전취 박씨는 거의 20년이상 전에 돌아가셨다고 보고, 1280년 이전에 돌아 가신 것을 추론할 수 있고,
1321년에 민지가 찬한 문영공 묘지명에
---공의 어머님은 박씨요 중서사인 지제고(中書舍人 知制誥) 익정(益旌)의 따님으로서 음평군부인(陰平郡夫人)을 봉(封)하였다. --- 라는 기록으로 볼 때
박씨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40년이상 후에 쓴 기록에도 음평군부인으로 봉해진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음평군부인(陰平郡夫人)으로 봉(封)해진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다만 냉평국대부인(冷平국대부인)이 맞다면 1321년 이후에 자손중에 누군가의 현귀로 추증 (3대 추증)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 김방경 묘지명 (1300년 이진 찬)
공(公)의 배위(配位)는 거서랑 지제고(起居郞知制誥) ★박익정(朴益旌)의 따님으로서 삼남 삼녀를 나셨으니
장자 ★선( )은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전법판서 상장군(奉翊大夫副知密直司事典法判書上將軍)을 지내시고 공(公)보다 먼저 돌아가셨으며,
차남 ★흔( )은 관고려군 만호 진국상장군 광정대부 도첨의참리 상장군(管高麗軍萬戶鎭國上將軍匡靖大夫都僉議參理上將軍)을 지내시고
삼남 ★순(恂)은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판비서시사 문한학사(奉翊大夫密直司副使判秘書寺事文翰學士)를 지내시고
딸 한분은 참지성사 ★조계순(參知政事 趙季恂)의 2자(二子) ★변( )에게 출가(出嫁)하였는데 변( )은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상장군 전리판서(奉翊大夫副知密直司事上將軍)을 지냈다.
둘째따님은 지첨의부사 ★김광원(知僉議府事 金光遠)의 장남(長男)인 조헌대부 신호위 보승장군(朝顯大夫神虎衛保勝將軍) ★김원충(金元沖)에게로 출가하였고,
셋째따님은 통례문사(通禮門事) ★권윤명(權允明)에게로 출가(出嫁)하였다.
전취 박씨(前娶 朴氏)는 공(公)보다 먼저 돌아가시어 또다시 ★손씨(孫氏)를 재취(再娶)하여 딸 한 분을 나셨는데 그 따님은 통례문기후(通禮門 候) ★채의(蔡宜)에게로 출가(出嫁)하였다.
■ 김순 묘지명 (1321, 민지 찬)
---공의 어머님은 박씨요 중서사인 지제고(中書舍人 知制誥) ★익정(益旌)의 따님으로서 음평군부인(陰平郡夫人)을 봉(封)하였다.
■ 《고려사》 제108권 - 열전 제21 >
채홍철
채홍철의 자는 무민(無閔)이요 평강(平康) 사람이다. 충렬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응선부 녹사(膺善府錄事)로 임명되고 통례문 지후(通禮門祗候)로 옮겼다가 외직으로 나가 장흥 부사(長興府使)로서 은혜로운 정치를 하였다.
이윽고 벼슬을 그만두고 14년 동안 한가하게 지내면서 중암 거사(中菴居士)라 자칭하고 불교, 선교(禪), 거문고, 글씨 그리고 약을 짓는 것으로 일상사를 삼았다.
<생 략>
처음에 김방경(金方慶)이 북방 국경 지방을 수비하고 있을 때에 용강(龍岡) 고을 관비(官婢)와 관계하여 한 여식을 낳았던바 채홍철이 그에게 장가들어 채하중(蔡河中), 채하로(蔡河老) 두 아들을 낳았다. 채하중은 따로 전기가 있다.
■ 안동김씨 족보 (1979 기미보)
冷平 국대부인 죽주박씨 (父 문하성 기거랑 지제고 ★박익정, 祖 형부시랑 ★박현구, 曾祖 복두점 녹사 ★박?개, 정신공 ★박충숙 7세손)
金方慶 할아버지는 5男(★ 선, ★ 흔, ★恂순, ★ 윤, ★惇순) 4녀(★趙 조변, ★慶綬경수, ★權允明권윤명, ★蔡洪哲채홍철)를 자녀로 두신 것으로 되어 있고,
부기를 달면서 충렬공의 묘지석(1300년 이진 찬)을 발굴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朴益旌박익정의 따님인 냉평국대부인 ★竹州朴氏가 공보다 먼저 돌아가시니 ★孫氏를 재취로 맞이하여 1녀를 낳아 ★蔡宜채의에게 출가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이 기록은 역대세보에는 보이지 않으나 지석에 기록되어 있음으로 기록하여 두고,
★慶州加氏가 2남을 기른 것은 지석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錫胤석윤의 따님인 경주가씨가 2남(★ 윤, ★惇순)을 길렀다고 (生2男이 아니고 育2男으로 표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 윤, 惇순)은 한글로는 론, 돈인데 족보에는 한글로 윤, 순이라 되어 있습니다.
■ 【고려후기 김방경의 정치활동과 그 성격】 (유선영 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대학원, 1993.8)
김방경은 첫 부인으로 ★朴益旌(박익정)의 딸을 맞이하였다. 기거랑 지제고 중서사인을 지낸 朴益旌은 무인집권기에 고급관인을 배출하여 세족으로 성장한 죽산박씨의 후예였고, 인천이씨 ★李藏用과는 사돈관계였다. 박씨는 3남3녀를 두고 김방경에 앞서 사망하였다.
박익정의 장남 ★暉(휘)가 李藏用의 딸과 혼인하였기 때문에 김방경의 처남(박휘)의 장인이 이장용이었다.
김방경의 성공에는 그의 혼인관계도 작용하였다. 그는 竹山朴氏(★김방경의 장인 박익정)를 처가로 두었고,
그의 자손들을 공암허씨(★김순의 장인 허공), 황주조씨(★김방경의 사위 조변, 그의 부 조계순), 원주원씨(★김승용의 장인 원관과 그의 부 원부), 평양조씨(★김흔의 사위 조련과 그의 부 조인규) , 청주정씨 (★김순의 사위 정책과 그의 자 정오, 정포), 염포백씨(★김순의 사위 백이정와 그의 부 백문절) 등 당대의 세력가문 및 원의 고위층(★김순의 사위인 원의 좌승상 아홀반의 아들 야영돈=별리가불화)과 혼인관계를 맺게 하였다.
그는 왕실과 권문세족, 그리고 원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함으로써 한때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였고, 그의 후손들의 활동에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 디지털한국학 홈
★박전지(朴全之) --- 충렬공의 처 조카
1250(고종 37)∼1325(충숙왕 12). 고려 후기의 재상. 본관은 죽주(竹州:지금의 竹山). 호는 행산(杏山). 전법판서를 지낸 ★휘(暉)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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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 김재원 - 아직 까지 글자료가 선두를 유지 하십니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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