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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은 어떤곳인가? 미리가보는 청송주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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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작성일03-07-01 23:59 조회1,5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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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의 연혁

주왕산 국립공원은 태백산맥의 지맥으로서 부동면 상의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해발은 720m이다. 산봉으로는 연화봉, 시루봉, 향로봉, 촛대봉, 미륵봉, 관음봉, 옥녀봉, 장군봉등이 있으며 굴로는 주왕굴, 연화굴, 무장굴, 폭포로는 제1,2,3폭포,달기폭포,계곡은 외주왕,내주왕(절골)계곡, 월외계곡, 내원계곡이 있고 기암(奇巖)으로는 기암(旗巖),부암,석병암,급수대,망월대, 신선암,학소대등이 있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또 사찰로는 신라 문무왕때 창건한 대전사와 함께 광암사가 있으며 암자로는 주왕암과 백련암이 있다. 주왕산은 1976년 3월30일 전국에서 1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바위가 병풍을 펼친듯하다하여 석병산, 옛부터 난리가 날때 마다 이곳에 피난온 사람들이 많고 선유 선사들이 이 산에 살았다하여 대둔산, 신라왕족인 김주원이 이곳에 있었다하여 주방산으로 불리다가 그후 고려때 나옹스님이 주왕의 전설때문에 주왕산(周王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주왕산의 전설

중국 당나라 덕종 12년에 진(晋)나라 왕손인 주도(周鍍)가 진의 회복을 꿈꾸며 군사 1만명을 이끌고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청하고 반기를 들고 수도 장안을 공격하던중 곽자의에 패하게 되자 요동을 통하여 신라땅에 도망을 왔다고 한다. 그후 강원도 지역을 거쳐 진성(지금의 진보)땅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들었으며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게 되자 신라왕은 마일성 장군과 그의 형제들에게 토벌을 명하니 주왕은 기암에 기를 꽂고 마씨형제들과 싸웠으나 크게 패하여 주왕굴에 숨어있다가 최후를 마쳤으며 그에게 대전이라는 아들과 백련이라는 딸이 있어서 현재 주왕산내에서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주왕산은 저마다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경쟁이라도 하듯 솟아오른 기암괴봉과 깍아지른 석벽이 둘러있어 천혜의 절경을 이루는데『전설의 산』답게 봉우리와 골짜기마다 전설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주왕산에 얽힌 전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것은 중국 진(晋)나라의 후예 주도(周鍍)가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칭하고 당(唐)나라에 반기를 들었다가 패하여 이곳으로 들어와 은거했다는 내용으로, 주왕산 일대에는 주왕에 대한 많은 전설들이 흩어져 있다. 주왕은 진나라에서 복야상서 벼슬을 지낸 주의라는 사람의 9대 손으로 태어났는데, 이름이 주도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범상치 않았을 뿐 아니라, 5세때 이미 글을 배워 11세 때에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달하였고 천문지리(天文地理)에도 능했다고 한다. 주도는 이때부터 왕후장상을 꿈꾸면서『황하강의 물을 들이마시고 태산을 갈아 없애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주도는 진나라의 후손 중에 큰 인물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그는 성인이 되자 장사 1백명을 거느리고 웅이산에 들어가 1만여 명의 군중을 모으고 남양땅에 웅거하였으니, 이때가 당나라 덕종15년(799년, 신라 소성왕1년)이었다. 주도는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장안(長安)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곽자의(郭慈儀)가 이끄는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고 말았다. 곽자의에게 패한 주왕은 요동으로 쫓겼다가 다시 신라땅으로 도망오고 말았는데, 그때 주왕을 따르는 군사는 1천여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관동(關東:강원도 지방)지역을 거쳐 진성(眞城:지금의 청송군 진보면)땅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石屛山:주왕산의 다른 이름)이 매우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숨어들었으나, 식량이 없었으므로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석병산에 많은 산적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온 나라안에 퍼졌다. 이때 당나라 조정에서 주왕이 신라땅으로 도망갔음을 알고 신라에 주왕을 잡아 줄것을 부탁해 왔다. 당나라로부터 주왕을 잡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신라왕은 석병산 일대의 산적들이 주왕과 그의 군사들임을 뒤늦게 알아 차리고 마일성(馬一聲)장군의 5형제로 하여금 토벌케 하였다. 마일성 장군이 상장군(上將軍)이 되고 이성(二聲)은 선봉장(先鋒將),삼성(三聲),사성(四聲),오성(五聲)은 후장군(後將軍)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진을 쳤다. 그러나 마장군의 군사들은 선뜻 주왕을 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주왕의 군사들이 기암봉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하여 군량미가 많은 듯이 보이게 하니, 마장군 형제들은 주왕의 군사가 많은 것으로 여기고서 감히 공격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장군은 장군봉에 올라 위장해 놓은 노적가리를 향해 활을 쏘았는데, 기암의 중간쯤에 바위가 뚝 떨어져 나간 듯한 흔적이 바로 마장군이 화살을 쏘아 바위가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한다. 그후 마장군의 군사들이 포위하고 공격하니 주왕의 군사들이 당하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주왕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서 주왕굴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주왕굴은 높은 낭떠러지에서 흐르는 폭포수가 굴 입구를 막고 있으므로 숨어 지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주왕의 천명이 다했음인지 천혜의 은신처라 방심하고 있다가 어느날 폭포수에 세수를 하기 위해 굴 입구로 나왔다가 마장군의 군사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로써 주왕은 후주천왕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마장군 형제의 철퇴를 맞고 운명을 다했다고 한다.

시루봉의 유래

주왕산 시루봉은 그 모양새가 옛날 집에서 떡을 찌던 떡시루와 비슷하다고 해서 시루봉이라고 불리어진다. 옛날 어느 겨울철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 하여 시루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루봉 밑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시루봉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아 오른다고 전한다.




▣ 솔내영환 - q백문이 불여일견.. 이번에 꼭 들려보렵니다.
▣ 김주회 -
▣ 김윤만 -
▣ 김윤식 -
▣ 김항용 - 재미있고 자세한 전설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김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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