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잡록 - 김돈(金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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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7-03 05:40 조회1,596회 댓글0건본문
김돈(金墩)
○ 본관은 안동(安東)이요, 중찬(中贊)방경(方慶)의 후손인데, 젊었을 적부터 학문에 힘썼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의 이름을 듣고 불렀으나 김돈이 사양하였다. 급제하자 임금이 불러 보고 이르기를, “내가 경을 보고자 하였으나 경이 나를 피하더니 이제는 나의 신하가 되었구나.” 하였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외직을 구하였는데, 역마를 특별히 내리어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와서 봉양하는데 편하게 하여 선비들이 영광으로 여겼다. 김돈은 의상(儀象 천문관측)에 정통하여 임금이 간의대(簡儀臺)와 보루각(報漏閣)을 만들때 참여하였다. 승지로 모두 7년 동안을 있었다.
○ 이숙번(李叔蕃)이 죄를 짓고 함양(咸陽)에 귀양갈 때 순금 띠[純金帶]를 도승지김돈에게 보내어 서울로 돌아오게 해 주기를 청하였는데, 김돈이 그 띠를 갖고 싶었으나 그 청을 아뢰기가 어려워서 매양 조회에 들어갈 때면 손으로 그 띠를 매만졌다. 때마침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짓게 되었는데 세종이 선조(先朝) 때의 일을 자세히 아는 이가 누구냐고 물었으므로 김돈이 이숙번을 천거하여 아뢰였더니 곧 그를 불러 들였다. 〈용비어천가〉의 편찬이 끝나자 귀양살이하는 곳으로 도로 보내었으므로 김돈은 마침내 그 띠를 갖지 못하였다. 《소문쇄록》
○ 세종이 김돈과 김조(金?)에게 명하여 흠경각(欽敬閣)을 창설하였는데, 그것은 《서경(書經)》의 ‘흠약천도(欽若天道)경수인시(敬授人時)’의 뜻을 취하여 이름 지은 것인데, 대궐 뜰에다 조그마한 누각 한 칸을 짓고 종이를 풀로 발라서 산을 만들되 높이가 일곱 자쯤이요, 누각 가운데에 옥루기륜(屋漏機輪)을 설치하여 물로써 부딪쳐 돌게 하고, 또 사신(四神)ㆍ십이신(十二神)ㆍ고인(鼓人)ㆍ종인(鍾人)ㆍ사신(司辰)ㆍ옥녀(玉女) 등을 만들어 모든 기관(機關)들이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저절로 치고, 저절로 운행하여 스스로 그렇게 시키는 것 같았다. 해의 도수[度]와 해시계와 물시계의 시각이 위로 하늘의 운행과 털끝 만한 차이도 없으며, 또 산의 사방에도 빈풍(?風) 칠월시(七月詩)에 의거하여 사시의 경물(景物)과 나무를 깎아 사람ㆍ새ㆍ짐승ㆍ초목의 형상을 만들어 그 절후(節候)에 맞추어 벌려놓아서 백성들의 농사짓기의 어려움을 보여 주었는데, 이름을 흠경각(欽敬閣)이라 하였다. 《국조보감》
○ 나라에서 누기(漏器)를 설치하고 이름을 보루각(報漏閣)이라 하여 2층으로 만들어 삼신(三神)이 그 위에 있는데 시간을 알릴 때에는 종을 울리고 경(更)을 알릴 때에는 북을 울리고, 점(點)을 알릴 때에는 징을 울린다 하였다. 〈김돈기(金墩記)〉
▣ 김윤식 - 태서 아저씨,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 본관은 안동(安東)이요, 중찬(中贊)방경(方慶)의 후손인데, 젊었을 적부터 학문에 힘썼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의 이름을 듣고 불렀으나 김돈이 사양하였다. 급제하자 임금이 불러 보고 이르기를, “내가 경을 보고자 하였으나 경이 나를 피하더니 이제는 나의 신하가 되었구나.” 하였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외직을 구하였는데, 역마를 특별히 내리어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와서 봉양하는데 편하게 하여 선비들이 영광으로 여겼다. 김돈은 의상(儀象 천문관측)에 정통하여 임금이 간의대(簡儀臺)와 보루각(報漏閣)을 만들때 참여하였다. 승지로 모두 7년 동안을 있었다.
○ 이숙번(李叔蕃)이 죄를 짓고 함양(咸陽)에 귀양갈 때 순금 띠[純金帶]를 도승지김돈에게 보내어 서울로 돌아오게 해 주기를 청하였는데, 김돈이 그 띠를 갖고 싶었으나 그 청을 아뢰기가 어려워서 매양 조회에 들어갈 때면 손으로 그 띠를 매만졌다. 때마침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짓게 되었는데 세종이 선조(先朝) 때의 일을 자세히 아는 이가 누구냐고 물었으므로 김돈이 이숙번을 천거하여 아뢰였더니 곧 그를 불러 들였다. 〈용비어천가〉의 편찬이 끝나자 귀양살이하는 곳으로 도로 보내었으므로 김돈은 마침내 그 띠를 갖지 못하였다. 《소문쇄록》
○ 세종이 김돈과 김조(金?)에게 명하여 흠경각(欽敬閣)을 창설하였는데, 그것은 《서경(書經)》의 ‘흠약천도(欽若天道)경수인시(敬授人時)’의 뜻을 취하여 이름 지은 것인데, 대궐 뜰에다 조그마한 누각 한 칸을 짓고 종이를 풀로 발라서 산을 만들되 높이가 일곱 자쯤이요, 누각 가운데에 옥루기륜(屋漏機輪)을 설치하여 물로써 부딪쳐 돌게 하고, 또 사신(四神)ㆍ십이신(十二神)ㆍ고인(鼓人)ㆍ종인(鍾人)ㆍ사신(司辰)ㆍ옥녀(玉女) 등을 만들어 모든 기관(機關)들이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저절로 치고, 저절로 운행하여 스스로 그렇게 시키는 것 같았다. 해의 도수[度]와 해시계와 물시계의 시각이 위로 하늘의 운행과 털끝 만한 차이도 없으며, 또 산의 사방에도 빈풍(?風) 칠월시(七月詩)에 의거하여 사시의 경물(景物)과 나무를 깎아 사람ㆍ새ㆍ짐승ㆍ초목의 형상을 만들어 그 절후(節候)에 맞추어 벌려놓아서 백성들의 농사짓기의 어려움을 보여 주었는데, 이름을 흠경각(欽敬閣)이라 하였다. 《국조보감》
○ 나라에서 누기(漏器)를 설치하고 이름을 보루각(報漏閣)이라 하여 2층으로 만들어 삼신(三神)이 그 위에 있는데 시간을 알릴 때에는 종을 울리고 경(更)을 알릴 때에는 북을 울리고, 점(點)을 알릴 때에는 징을 울린다 하였다. 〈김돈기(金墩記)〉
▣ 김윤식 - 태서 아저씨,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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