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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최초 뚝과 제방을 축조한 김방경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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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7-14 23:06 조회1,6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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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최초 뚝과 제방(좌.우둔전)을 축조한 병마판관 김방경에 대하여 연구를 하여야 한다는



공공기관 강화문화원의 자료가 있어 아래와 같이 퍼서 올렸습니다.]







▣ 뚝과 제방 ▣





--강화(江華)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항몽 유적지이다. 사면이 바다이다 보니 짠물이



수시로 넘나들어 황무지가 사방에 방치되어 있었다. 고려 고종(高宗)25년(1248년)에 북녁의



많은 민간인을 강화로 들어오게 하여 작업을 하도록 했다. 강화 변두리 연안 황무지는 갈대밭



으로 되어 곡식을 심을 수 없었다.



--이때 병마판관(兵馬判官) 김방경(金方慶)은 여러 곳을 정하여 제방과 뚝을 쌓게 하고 간척지



를 만들어 우선 돌 피씨를 심게 하였더니 민심은 심히 원망하기도 했는데 바로 이해 피가 잘



여물어 해마다 몽고의 병란으로 굶주려 왔던 강화도 군민들이 굶주림을 면하였다 한다.



--그뿐이랴 이때엔 우물이 없었는지라 축성한 뚝에 빗물을 저수하였다가 농사철에는 논에 물을



대게 하여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겨울철



에는 얼음을 깨고 그물을 식수로 이용하였다.





* 이때 축조한 제방과 뚝은 제포(悌浦) 와포(瓦浦) 이포(裡浦) 초포(草浦) 뚝이었는데 여기에



둔전(屯田-주둔병사의 군량미를 자급자족 하기위하여 마련되었던 밭)을 설정하였고 이어서



광성(廣城) 굴곶(屈串) 만월(滿月) 오두(鰲頭) 가리(加里) 뚝 등도 이때에 모두 축성 하였다.





* 뚝과제방 소재지 : 제포(悌浦) 와포(瓦浦) 뚝은 강화군 송해면 승천포부근 고려시대에 별궁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동리 이름(상관리)이 전하고 있다. 이포(裡浦) 뚝은 1256년에 선원면에



축조하였다.





* 강화도 최초 뚝과 제방(좌.우둔전)을 축조한 병마판관 김방경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강화도가 이처럼 광범위하게 바다가 옥토로 변하게 된것도 고려시대의



뚝과 제방의 축조가 있었기에 가능 했으리라 생각 합니다.





<참고문헌: 강화사(江華史) 강도의맥 (江都의脈) 발행 : 강화문화원)





≪ 출전 : http://www.kanghwado.org/main.htm≫



▣ 김항용 -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김영윤 -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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