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공(김알지) 다시보기 03---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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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7-21 02:32 조회1,621회 댓글0건본문
대보공(김알지) 다시보기 03---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
1)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1266∼89)이 1283년경에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 입니다.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이며, 김부식 주도로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언급되지 않은 고조선(古朝鮮)과 단군신화(檀君神話)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2002.12, 보급판 제4쇄, 을유문화사, 옮긴이 김원중) 해제편에 있는 다음 내용을 보면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의 의도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남의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곧바로 우리 자신의 것에 대한 비하로 이어져 우리 것은 설자리를 잃어갔다. 고려후기 이승휴에서 이규보에 이르는 몇몇 지식인들은 우리 것을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특히 일연은 중국이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던 상황하에서 화이 관념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자주 문화적 관점에 의거한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요한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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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일연의 삶은 몽골의 침략에 따른 내정 간섭과 상당히 관련된다. 그러나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 자주적 입장에 서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버금갈 만한 유구한 역사 민족임을 드러내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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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첫 번째 편인 고조선(왕검조선)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가 된 단군 신화 이야기는 사마천이 <사기> <본기>의 첫머리에 삼황오제를 그들의 조상으로 내세웠던 것과 비교하더라도 의미심장한 것이다. 아울러 고조선, 기자 및 위만조선 등에 대한 서술은 우리 민족이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수한 민족임을 다시금 깨우쳐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한나라의 전성기인 B.C.57년부터 시작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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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은 중국의 자료는 27종만 인용했지만 우리 나라의 자료는 50여 종이나 인용하였고, 고기, 향기, 비문, 고문서, 전각 등도 다양하게 인용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 사료에 대한 윤곽과 그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지 않은 조선과 단군신화 등이 <삼국유사>에 기록되게 되는 시대적 상황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3/07/08 20:21 (from:211.57.153.114) 조회 : 30
여름캠프2003 (09-1)---충렬공의 만년행적1 (동녕부를 되찾기 위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이 황해도 안악 구월산 삼성사에 고구려 고씨 시조 단군을 봉안(357년)하였는데, 신라가 삼국통일(668년) 후에도 황해도 서북부 (안악 등)는 차지하지 못하였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936년)하고 고구려의 후예임을 계승함에 따라 구월산 삼성사는 온존히 보존되어 온 것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1114년)를 편찬할 당시까지는 동이족 시조 소호김천씨는 神이 아니라 신라인의 직접적인 조상이어서 시조로 알고 있었으며, 이때까지 단군은 고구려 고씨족으로 한씨족(=일본인)의 시조이었다. 그래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1114년)하면서 단군은 동이족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삼국사기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1270년대 원나라가 동녕부(평양 일대)를 설치하자 고려에서는 동녕부가 차지가 영토를 되찾기 위해 동녕부가 원래 고려 영토라는 주장을 해야 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삼국사기가 편찬(1114년)되고 169년후인 1283년에 일연선사는 삼국유사 첫머리에 (단군 기록이 있는) [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신화를 기록하였고, 1287년에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편찬하면서 역시 단군본기를 인용하여 단군신화를 기록하였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1290년에 원나라는 동녕부를 차지한 지 20년만에 평양 동녕부를 철수했던 것이다.
■ [단군과 고구려가 죽어야 민족사가 산다] (김성호, 월간조선사)
p303
천손 단군이 동이시조가 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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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서북부 즉 안악, 은율, 신천, 송화군은 김유신의 석문패전에 이은 문무왕의 김유신 암살로 신라가 끝내 차지하지 못한 곳이다. 이중 하나인 안악군 구월산에 三聖祠(삼성사)가 있다.
고구려 고국원왕이 남평양(재령)으로 천도(343년)했을 때,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을 안악고분(357년)에 모시면서 이 일대를 성역화하려고 안악고분의 주맥인 구월산 삼성사에 고구려 고씨 시조 단군을 봉안한 것이다.
그후 신라가 안악을 차지하지 못함에 따라 삼성사는 고구려 멸망후 아무런 병화도 입지 않고 고스란히 잔존하다가 고구려 계승을 발표한 고려 현종9년(1018년)에 안악군이 설치됨에 따라 [고려사] 지리지는 "구월산 장장평의 삼성사에 환인,환웅,단군이 봉안되었다" 고 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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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성호)는 종래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단군을 말하지 않아 형편없는 사대주의 儒生으로 여겼었지만, 단군은 동이족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군 : 청주한씨 시조, 한씨족(=일본인)의 시조 천손 단군
***동이족 : 동이시조 소호김천씨는 신이 아니라 신라인의 직접적인 조상이어서 시조였던 것이다.
단군신화는 일연선사의 [삼국유사](1283년) 첫머리에 인용된 [古記]에 전해오며, 선사보다 169년 전에 김부식도 이 古記를 보았다. 허나 김부식은 삼국사기(1114년)를 쓰도록 하명한 인종에게 올린 이 책 서문에서 ----- 고 하여 古記를 노골적으로 비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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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숙종3년(1098년)에 제작된 古記의 저자는 비록 확인되지 않지만 그는 안악군 삼성사를 관할하던 평양부의 한 문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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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가 지난 묘청반란 진압후 인종은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하였다. 아마 이때 인종은 평양인이 저작한 古記에 버금가는 역사서를 쓰도록 하명함에 따라 김부식은 삼국사기 서문에서 古記를 지목하여 노골적으로 비판했을 것이다.
이러한 단군논쟁의 와중에 혜성처럼 끼어든 인물이 일연선사였다. 그의 삼국유사는 최남선씨의 지적처럼 선사가 "78세때인 1283년에 국존"으로 제수될 때 완성되었다.
선사는 그 서문에서 ----- 라 하여 김부식을 정면으로 공박하면서 김부식의 사문난적으로 낙인찍은 古記를 삼국유사 첫머리에 버젓이 인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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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강요로 일본원정용 선박을 건조하는 한편 원군과 결사항전을 벌였던 삼별초와의 싸움에 시달리던 내우외환의 위기였다. 바로 이때인 원종10년(1270년) 에 서북면절도사 최탄과 삼화현교위 이연령이 평양유수를 죽이고 서경과 여러 고을을 이끌고 원나라에 투항하니, 원군은 즉각 평양에 동녕부를 설치하고 황해도 멸악산맥 이북을 강점해 버렸으니 어처구니 없는 영토의 피탈이었던 것이다.
당시 원나라는 아마 한사군 이래의 연고권을 앞세워 평양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했을 터이지만, 고려측 정사인 삼국사기는 평양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음에 따라 동녕부에 대항할 아무런 반증자료를 갖지 못함에 따라 평양을 멀쩡하게 원나라에 뺏길 판국이었다.
바로 이 시기인 1283년에 일연선사는 삼국유사 첫머리에 古記의 고조선을 인용하면서 10개의 주석을 붙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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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의 지명들을 가급적 동녕부가 장악한 평양일대로 집중시켜 동녕부가 차지한 영역은 낙랑군 이전부터 고려의 전신인 고조선이었음을 강조한 것이었다. 따라서 선사가 단군신화를 책 머리에 수록한 의도는 실은 동녕부가 차지한 영토를 되찾기 위한 선점권의 선포였고, "원나라여! 평양 땅을 내놓고 빨리 물러가라!"는 영토반환 요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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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선사는 김부식이 사문난적으로 지목한 고기를 책머리에 인용하고서도 처벌받기는커녕 오히려 삼국유사를 완성한 바로 그해(1283년)에 승려로서 최괴직인 국존으로 제수되었던 것이다.
李承休(1224-1301)도 제왕운기(1287년) 상권에서 중국의 역사를, 하권에서 고조선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칠언한시로 읊으면서 압록강-두만강을 중국과 고려의 국경이라 했으니, 이것 역시 압록강 이남의 동녕부는 물러나라는 요구였던 것이다.
▣ 김태서 -
▣ 김윤식 -
▣ 김윤만 -
▣ 김발용 - 잘 읽고있습니다.
▣ 솔내영환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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