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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집터 답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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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8-19 23:30 조회1,5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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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집터 답사기 (2)





[혜민서 터]를 지나고 연세 봉래빌딩 앞 마당 [七牌시장 터]를 지나 [독립문]을 지나고 무암재를 넘어 갑니다. 인근에 대신고등학교가 있는데 상석 종친님이 다니던 학교라 하고, 음성 감곡 출신 김두묵 님도 이곳 출신이라는 윤만 종친님의 말씀이 등뒤에서 들립니다.



홍제원터에 도착합니다. 마을금고 앞 도로변에 [홍제원 터] 표지석이 있고, 안쪽으로 50m를 들어가면 138번지 일대가 홍제원 자리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흔적이 없어서 동네 슈퍼에 들어가 물으니 바로 옆 판소리고법보존회 간판이 있는 집 주변이 138번지 일대이고 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빌라 자리가 말을 매어 놓던 목장터 라고 합니다. 빌라가 들어서기 전에는 [홍제원 터] 표지석이 있었다고 하는데 빌라가 들어서면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곳 홍제원은 낙서공(김자점)께서 김류, 이귀 등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킬 때 반정군이 집결하여 출발한 곳이라 합니다.







슈퍼에서 막걸리 한잔씩을 걸치고, 북악터널 쪽으로 오르다 弘智門(현판은 숙종의 글씨라 함)을 지나고 1506년 연산군때 연회를 열던 장소인 蕩春臺(탕춘대) 터가 있고, 조금 못미쳐에 洗劍亭 遮日巖(세검정 차일암)이 계곡바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때 왕조실록인 1차자료인 史草(사초)나 草稿(초고)의 유출방지를 위해 물에 씻어 洗草(세초)하던 장소로, 인조반정 성공후 인조와 반정공신들이 칼을 씻고 칼집에 넣으면서 태평성대를 맞이하자는 뜻으로 연회를 베풀었다는 안내판 설명문이 보입니다. 또 일설에는 거사 전에 반정 주도세력들이 모여 칼을 씻어 거사 결의를 했던 곳이라는 내용이 인터넷 검색에 보입니다.



안내판의 설명문을 보니 인조반정의 주동자는 김류, 이귀라 되어 있습니다. 태서 종친님의 말씀으로 이귀의 딸 예순비구니는 낙서공의 ?형 김자겸의 배위라 합니다. 그리고 회룡사에 예순비구니의 전설이 깃들어있고.



항용, 윤만 종친님께서 한동안 보이지 않아서 칼을 만들러 문구사에 가셨나 보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 아래서 한분은 국그룻을 들고 한분은 막걸리를 들고 올라 옵니다. 세검정에 올라 앉아 거사 결의를 하듯 술자리가 이어집니다. 계곡바위 위 정자 안에서 막걸리와 곱창전골이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다시 고개를 넘어 성균관 인근에 도착합니다. 안정공파 금헌 김뉴 선조님의 별장터 쌍계재 자리를 찾기 위하여 절집을 찾아들고, 통장댁도 찾아들어 묻고 물어 성균관대 정문으로 들어가 구내를 올라올라 후문으로 빠져 나옵니다.



기록에 의하면 성균관(일명 반궁) 북쪽 위에서 성균관을 동서로 싸고 흐르는 개울(반수)이 둘 있었는데 동쪽 개울 가에 김뉴 선조님의 집터라 합니다. 지금은 성균관 뒤쪽이 모두 성균관대학교 구내가 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 구내 어딘가에 쌍계재 터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흔적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정문에서 후문으로 오르는 중간 위쪽에 오르면서 좌측으로 계곡 바위가 남아 있는 부분을 지나쳤는데, 그곳 어디가 아닐까 하는 혼자 생각을 해 봅니다.



다음에 성균관 인근 고지도 검색과 성균관대 홈페이지에 문의해서 성균관 인근 고지명을 찾기로 하고 창덕궁 옆 식당에서 민생고를 먼저 해결합니다.









민생고를 해결하고 (또 반주가 이어짐. 피로도 풀리고 답사기분이 무르익어감) 청계천 황학동 만물시장 가는 길에 정릉에 들립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의 능입니다. 아름드리 나무들과 구릉 높은 곳에 자리잡고 저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 파아란 능역, 시원스런 공기가 무척 시리도록 시원합니다. 머리 속이 얼마나 차가운지 얼얼합니다.



밀리고 밀리는 길을 가다 황학동 벼룩시장(일명 도깨비시장)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처녀브○(=처녀○랄) 빼놓고는 다 있다는 곳입니다. 모든 물건이 다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청계천 복원공사가 한창이어서 고가도로는 이내 다 헐려 있고 바닥까지 공사가 한창입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어질어질합니다. 혼이 다 빠질 지경입니다. (시골사람 겁 주는지? 기 죽이는지?)



태서 종친님은 급한 일이 있어 헤어지고, 남은 일행은 계속해서 만물시장을 헤매고 다닙니다. 집에 있는 아이 둘 생각이 나서 조그만 후레쉬 2개를 얼른 샀습니다. 좋아할 아이들 얼굴을 생각하니 흐뭇해 지고 두둑해 집니다.



시간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발용 종친님께서 가끔 들리시는 고서점에 도착합니다. 제학공파 김상형 님의 문집 [소하수고]를 발견하여 재빨리 구입하고(주회), 아! 경교장(윤만,항용,주회), 조선의 태실(발용), 신증동국여지승람(상석) 등을 저렴하게 순식간에 구입해 버렸습니다.









한 봉다리씩 들고 택시를 잡아 타고 강남고속터미널로 이동합니다. 청주가는 우등 버스를 항용 선생님께서 예약한 다음 터미널 2층에 올라가 에어컨 돌아가는 식당에 자리를 잡습니다. 다시 소주잔이 돌고 돕니다. 오늘은 앉았다 하면 술잔이 돕니다. (강행군에 피곤들 하실테니 당연하지요). 술에는 자신있다는 상석 종친님께서 놀라시는 눈치가 역력합니다. 나도 피곤해서인지 술이 싫지 않고 술술 넘어갑니다.



시간이 지체되어 버스출발 1분전! 후다닥 뛰어내려가 우등버스에 올라 탔습니다. 뒤따라 온 항용, 윤만, 발용, 상석 종친님께 손 흔들며 인사를 하고, 카메라 다시 찍느라고 다시 버스 타면서 폼잡고, 영화 찍는 기분입니다.



∼∼∼쿨∼쿨∼쿨∼∼∼ 잠이 깨어 일어나 보니 청주터미널입니다. 시간 맞추어 아내는 차를 갖고 대기하고 있고, 전화가 울려서 받아보니 잘 도착했느냐는 안부 전화입니다. 어디냐고 물으니 나를 보내고 터미널 2층으로 다시 올라가 지금도 마시는 중이라고. 정말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광복절 연후 3일간을 서울 인근에서 살다 왔습니다. 너무 강행군을 한 탓인지 마치 보름간의 북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고국산천을 내려다보듯,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내다보던 고향 들판의 정겨움과 정다움을!!! 아내 차 타고 집에 가는 동안 다시 한번 느껴 봅니다.













▣ 김태서 - 다음2차 답사때는 나침반과 쌍안경을 필히 지참 하겠습니다.

▣ 김정중 - 좋은곳 답사 축하 드립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김윤만 - 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답사 때 사용할 7.5M짜리 줄자를 황학동에서 구입했습니다.

▣ 김발용 - 꼼꼼히 메모하시더니...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계응 -

▣ 김윤식 - 대단들 하십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쩝~~윤만 대부님 그 다음날 전화 주셔서 "후기하고 사진 올라오면 배......" 하시더니 정말입니다. ~쩝! 잘 내려가셨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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