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렴사공파(사렴) 소개자료 14---삼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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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8-23 23:38 조회1,561회 댓글0건본문
♣♣♣08 삼산파♣♣♣
○안렴사공(사렴)--- (약)---遇周(우주)---丸(환)---宗孫(종손)---2자 현령공 휘土+遲
께서 문의현령으로 그 4자 군자감정공 휘公衍(공연)의 장자 참의공 휘繼賢(계현), 그의 아들 판관공 휘夢瑞(몽서) 후손으로 三山派(삼산파)라 한다.
○문과급제 1명(진), 생원진사 급제 1명(진), 무과급제 3명(하기, 만기, 석한)이 있으며, 봉채는 우암 송시열을, 재수는 봉암 채지홍을 사사하였다.
○公衍(공연)은 군자감정을, 繼賢(계현)은 증참의를, 夢瑞(몽서)는 판관을 지내고 묘는 오근삼산이며, 瑨(진)는 진사와 문과급제후 통정부사를, 志卨(지설)은 음사참봉 불취하고 동중추를, 夏器(하기)는 무과급제, 王+眞(신)은 현감을 역임하였다.
○志亮(지량)의 2자 相器(상기)는 3종부 志奭(지석)에게 입양되었고, 志奭(지석)은 3종부 (삼수변束)(색)에게 입양되었다.
○晩器(만기)는 무과급제, 鳳彩(봉채)는 호老梧堂(노오당)으로 우암송시열 선생에게, 在洙(재수)는 봉암 채선생에게 사사하였으며, 錫漢(석한)은 정유무과급제하여 첨추를 지냈다.
○ 公衍공연의 사손가계(인묵-재경-창회1939)이며, 泰浩1923-는 미원면장을 역임하였으며, 후손들이 오근 삼산, 제천 수산, 영월, 산청, 하동, 청원 옥산, 청원 미원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49) 김진(金瑨, 1537-1642)
자(字) 여헌(汝獻)으로 1583년 계미에 김몽서(金夢瑞)의 아들로 태어나, 1590년(경인) 진사시
에 급제하고 1623년(인조1) 개시(改試) 병과5(丙科5)로 급제하였으며 僉知事(첨지사)를 지냈다.
공은 현령 지의 증손인데, 만력 경인년(159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광해군 때에 명경과에 참여하였으나 은자를 바치지 않았으므로 과거에 이름이 제거되었으나 끝내 마음을 변치 않고 더욱 독실히 경학을 공부하였다.
인조반정 후에 은자를 바치지 아니하여 과거에 낙방한 자들을 사기를 가상히 여겨 특별히 다시 강경하게 명하니 딴 선비들은 모두 분하게 여겨 경서를 공부하지 아니하여 낙방하였으나, 공은 홀로 통달하여 명경과에 합격하니 세상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벼슬이 통정대부로 부사에 이르렀다. <오창지>
○김진(金 )
공은 부사 진의 아우인데, 음직으로 현감에 이르렀다. <오창지>
50) 김봉채(金鳳彩)
공은 현감 진의 증손인데, 우암 송시열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우암은 손수 "군자는 마음을 두기를 청천백일과 같이하여 사람들이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 는 십삼 자를 써서 주었으니, 스승의 인정하고 기약함을 상상할 수 있었다.
손자 동수는 재예가 뛰어나고 성품이 너그러웠으며 문장이 깨끗하였으나 여러번 응시하여도 급제하지 못하고 일찍 죽으니 원통하다고 말하였다. <오창지>
○김석한(金錫漢)
공은 진의 현손이다. 무과에 올라 벼슬이 통정대부로 우후에 이르렀다. <오창지>
----- 세거지 답사후 추후 보완계획임 -----
▣ 김태서 -
▣ 김윤만 -
▣ 김윤식 - 오창지 기록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계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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