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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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3-08-24 18:56 조회1,690회 댓글0건본문
일간스포츠 2003년 3월 11일자 기사
지난 주엔 ‘이름 없음’ ‘귀신’ ‘개의 자식’ 등등 몽골 사람들의 별난 이름짓기에 대해 얘기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름 앞에 붙는 성(姓)은 어떤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이하게도 몽골인에게는 성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성이 되지요.
예를 들어 ‘후영’이 사내 녀석을 낳아 ‘상용’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면, 그 아들의 성은 후영, 이름은 ‘상용’이 됩니다.
풀 네임은 ‘후영의 상용’이라고 쓰지요. 만약 후영이 손녀 ‘성연’을낳았다면, 그 손녀의 성은 후영, 이름은 성연이며 풀 네임은 ‘후영의 성연’이 되지요. 한 대만 건너 뛰어도 할아버지의 이름은 남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사촌 정도만 돼도 서로 친척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없고, 친가와 외가도 헷갈리게 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생기는 가장 위험한 현상이 바로 근친혼입니다.
몽골이 인구비율에 비해 신경정신 질환자가 많은 까닭, 혹은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 까닭을 여기에서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몽골인은 원래 가문과 집안 개념도 없는 천하의 오랑캐였을까.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몽골인은 한국인 보다 훨씬 진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민족애가 폭 넓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몽골인이 세계의 절반가까이를 빠른 시간에 정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왕과 장군에게도 ‘형님’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가족적 위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칭기스칸의 군사는 아군이 한명이라도 전사할 경우, 혈족의 희생에 대한 피의 보복으로 엄청난 파괴를 서슴지 않았다고 하니까요. 이런 가족애의 편린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상점이나 식당의 점원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 ‘누나’ ‘형님’ ‘동생’ 등이고, 시장에서 나이 지긋한상인들은 젊은 소비자에게 ‘동생아’ ‘아들아’하고 부르는 것이 일상적이니까요.
아무튼 몽골에도 20세기 초반까지 한국의 김ㆍ이ㆍ박 씨와 같은 성이 있었습니다. 성은 부족과 출신 지역을 상징하는 것이었죠. 몽골이 독립 혁명을했던 1921년 당시에도 이 같은 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몽골인의 성을 없앤 나라는 바로 혁명을 도운 소련이었습니다. 그 옛날 모스크바까지 유린했던 식민지 건설자 후손들의 기상과 기백을 가장 효율적으로, 철저하게 꺾을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소련인들은1925년 몽골인에게 성씨 제도 개혁을 종용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같은 성씨 제도(아버지 이름이 성이고 아들은 이름 뿐인)가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가족적인 단합과 기상을 꺾겠다는 소련의 의도가 약 70년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인 셈입니다. 사실 몽골어에도 고모, 이모, 형부, 올케 등 친척을 호칭하는 단어가 다수 있었지만 요즘엔 역사학자 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없답니다. 근친혼의 폐해도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고요.
/강남욱-정윤주 리포터
▣ 김상석 - 흔들리지 않는 민족정기 자주권 회복이 초석 입니다.수고가 크십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우리의 현 호주제 폐지는 곧 몽고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지름길이지요.
▣ 김윤만 - 문화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실감케 합니다. 중국 한족도 몽골, 거란, 여진족 등 수 많은 이민족의 외침속에서 자기네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배 이민족보다 월등한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흥미롭고 심각한 이야깁니다.
▣ 김주회 -
▣ 김계응 -
▣ 솔내 - 많은 생각을 불러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주엔 ‘이름 없음’ ‘귀신’ ‘개의 자식’ 등등 몽골 사람들의 별난 이름짓기에 대해 얘기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름 앞에 붙는 성(姓)은 어떤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이하게도 몽골인에게는 성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성이 되지요.
예를 들어 ‘후영’이 사내 녀석을 낳아 ‘상용’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면, 그 아들의 성은 후영, 이름은 ‘상용’이 됩니다.
풀 네임은 ‘후영의 상용’이라고 쓰지요. 만약 후영이 손녀 ‘성연’을낳았다면, 그 손녀의 성은 후영, 이름은 성연이며 풀 네임은 ‘후영의 성연’이 되지요. 한 대만 건너 뛰어도 할아버지의 이름은 남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사촌 정도만 돼도 서로 친척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없고, 친가와 외가도 헷갈리게 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생기는 가장 위험한 현상이 바로 근친혼입니다.
몽골이 인구비율에 비해 신경정신 질환자가 많은 까닭, 혹은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 까닭을 여기에서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몽골인은 원래 가문과 집안 개념도 없는 천하의 오랑캐였을까.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몽골인은 한국인 보다 훨씬 진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민족애가 폭 넓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몽골인이 세계의 절반가까이를 빠른 시간에 정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왕과 장군에게도 ‘형님’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가족적 위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칭기스칸의 군사는 아군이 한명이라도 전사할 경우, 혈족의 희생에 대한 피의 보복으로 엄청난 파괴를 서슴지 않았다고 하니까요. 이런 가족애의 편린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상점이나 식당의 점원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 ‘누나’ ‘형님’ ‘동생’ 등이고, 시장에서 나이 지긋한상인들은 젊은 소비자에게 ‘동생아’ ‘아들아’하고 부르는 것이 일상적이니까요.
아무튼 몽골에도 20세기 초반까지 한국의 김ㆍ이ㆍ박 씨와 같은 성이 있었습니다. 성은 부족과 출신 지역을 상징하는 것이었죠. 몽골이 독립 혁명을했던 1921년 당시에도 이 같은 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몽골인의 성을 없앤 나라는 바로 혁명을 도운 소련이었습니다. 그 옛날 모스크바까지 유린했던 식민지 건설자 후손들의 기상과 기백을 가장 효율적으로, 철저하게 꺾을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소련인들은1925년 몽골인에게 성씨 제도 개혁을 종용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같은 성씨 제도(아버지 이름이 성이고 아들은 이름 뿐인)가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가족적인 단합과 기상을 꺾겠다는 소련의 의도가 약 70년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인 셈입니다. 사실 몽골어에도 고모, 이모, 형부, 올케 등 친척을 호칭하는 단어가 다수 있었지만 요즘엔 역사학자 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없답니다. 근친혼의 폐해도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고요.
/강남욱-정윤주 리포터
▣ 김상석 - 흔들리지 않는 민족정기 자주권 회복이 초석 입니다.수고가 크십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우리의 현 호주제 폐지는 곧 몽고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지름길이지요.
▣ 김윤만 - 문화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실감케 합니다. 중국 한족도 몽골, 거란, 여진족 등 수 많은 이민족의 외침속에서 자기네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배 이민족보다 월등한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흥미롭고 심각한 이야깁니다.
▣ 김주회 -
▣ 김계응 -
▣ 솔내 - 많은 생각을 불러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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