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의 휘하장수들(1)서흥김씨 관조 김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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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9-03 00:53 조회1,786회 댓글0건본문
서흥군 김천록
김천록(金天祿)
생몰년 미상. 고려 충렬왕 때의 무신.
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진도에 출정, 김방경(金方慶)을 위기에서 구하였으며, 1274년(충렬왕 즉위년) 고려와 원나라 연합군의 일본정벌에도 종군하여 전공을 세웠다.
1277년 위득유(韋得儒) 등이 김방경을 참소하자 변호하기도 하였다.
서흥김씨
신라 왕실(新羅王室)의 후예(後裔)인 서흥 김씨(瑞興金氏)는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6세손으로 고려(高麗) 중엽에 금오위 중랑장(金吾衛中郞將 : 고려 때 6위의 하나로 왕도내외를 순찰·점검하는 관청의 정 4품 벼슬)을 지낸 김 보(金 寶)를 시조(始祖)로 한다.
보(寶)의 손자(孫子) 천록(天錄)은 고려 때의 이름난 무장(武將)으로 1270년(원종 11) 삼별초(三別抄 : 고려 무신정권 때 조직된 특수군대)가 진도(珍島)에서 난(亂)을 일으키자 김방경(金方慶)의 부장(副將)으로 이를 진압하는 데 공(功)을 세웠으며, 1274년(원종 15)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이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를 정벌(征伐)할 때도 참전(參戰)하여 대공(大功)을 세워 1280년(충렬왕 6) 도첨의시랑 찬성사(都僉議侍郞贊成事)·상장군(上將軍)·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로 서흥군(瑞興郡)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천록(天錄)이 봉군(封君)받은 지명(地名)인 서흥(瑞興)을 관향(貫鄕)으로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훌륭한 인물(人物)을 많이 배출시켜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졌다.
역사상 두드러진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천록(天錄)의 아들 세구(世丘)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으며, 손자(孫子) 봉환(鳳還)은 1353년(공민왕 2)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를 거쳐 대사성(大司成)에 올라, 아들 선보(善保 : 봉순대부·판서운관사를 역임)와 함께 고려조(高麗朝)에서 가문을 빛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선보(善保)의 아들 3형제중 맏아들 중건(中乾)이 세종(世宗)때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지냈고, 둘째 중곤(中坤)은 예조 참의(禮曺參議)를 역임했으며, 막내인 중인(中寅)은 1422년(세종 4)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博士)를 역임하여 이름을 날렸다.
판서(判書) 중건(中乾)의 손자(孫子) 효인(孝仁)은 성종(成宗) 때 등과(登科)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정의 현감(旌義縣監)을 지내고 1489년(성종 20) 좌리이등공신(佐理二等功臣)에 올랐으며, 유(紐)는 세조(世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한편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거두(巨頭) 굉필(宏弼)은 서흥 김씨(瑞興金氏)가 자랑하는 인물(人物)이다.
그는 1454년(단종 2) 5월 24일 한양(漢陽) 정릉동(貞陵洞)에서 절충장군 유(紐)의 아들로 출생하여 당대의 석학(碩學) 김종직(金宗直)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마한 후 스스로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칭했으며, 1480년(성종 1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494년(성종 25) 행의(行誼)로 벼슬에 천거되어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와 감찰(監察)을 거쳐 1497년(연산군 3) 형조 좌랑(刑曹佐郞)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서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서 붕당을 이루어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조의제문>의 삽입을 방조했다는 죄목을 쓰고 평안남도(平安南道) 희천(熙川)으로 유배되었다가 1504년(연산군 10)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 : 연산군 어머니 윤씨의 복위문제에 얽혀 일어난 사화)에 연루되어 순천(順天)에 이배(移配)되어 억울하게 사약을 받았다.
훗날 중종(中宗) 때 우의정(右議政)에 추종되고, 광해군(光海君) 때 전국 유생(儒生)들의 상소에 의하여 문묘(文廟)에 배향되었으나, 그는 높은 식견(識見)과 뛰어난 도학(道學)을 꽃피우기도 전에 억울하게 숨진 불행한 학자(學者)였다.
평소 그는 [육경(六經)]연구에 몰두하여 성리학(性理學)에 통달했으며, 문하에서 조광조(趙光祖)·김안국(金安國)·김정국(金正國)·이장곤(李長坤)·성세창(成世昌) 등 쟁쟁한 학자(學者)들을 배출시켜 근세유학의 거목(巨木)이 되었다.
그의 아들 3형제 모두가 벼슬에 올라 장남 언숙(彦塾)은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를 지내고 학문(學問)과 효행(孝行)이 뛰어났으며, 둘째 언상(彦庠)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했고, 막내 언학(彦學)은 선무랑(宣務郞)을 거쳐 동부 참봉(東部參奉)에 올라 나라에 공헌하였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중종(中宗) 때 예조 참판(禮曺參判)을 지낸 수열(數列)고 예산현감(禮山縣監) 건(鍵),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익(翌)·수종(壽悰), 진도 군수(珍島郡守) 선(宣)이 유명했고, 충수(忠守)는 임진왜란 때 죽산(竹山)에서 의병(義兵)을 모아 왜군과 싸워 공(功)을 세운 뒤 아들 함(涵)과 함께 순절하여 숙종(肅宗) 때 정려(旌閭)가 세워지고 1740년(영조 16) 장령(掌令)에 추증되었으며, 계조(繼祖)는 효행(孝行)이 뛰어나 호조 참판(戶曺參判)에 추증되었다.
순조(純祖) 때 사간원(司諫院)의 정언(正言)을 지낸 치곤(致坤)과 헌종(憲宗) 때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오른 대곤(大坤)은 한성부 판관(漢城府判官) 규찬(奎 ), 고종(高宗) 때의 흥해 군수(興海郡守) 희국(熙國),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규화(奎華), 현풍군수(玄風郡守) 화식(華植), 봉화 군수(奉化郡守) 규충(奎衝), 승정원 좌승지(丞政院左承旨) 장권(長權) 등과 함께 명문(名門)의 전통(傳統)을 이어 가문을 빛냈다.
▣ 김주회 - 김은열의 6세손 김보의 손자 김천록은 경순왕의 10세손이 되는 것 같습니다.
▣ 김윤식 - 대부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포천의 웃대 할아버지들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 김항용 - 김천록 잘 기억하겠습니다.
▣ 김발용 - 연재물 기대가 됩니다. 저 애독자 걸랑요.
▣ 김상석 - 김종직-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계보의 큰 축과 조선조의 사화를 생각 해 봅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충렬공과 경순왕 대수 계산에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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