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의 휘하장수들(3) 금산김씨 시조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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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9-04 18:11 조회1,733회 댓글0건본문
금산김씨
시조 김신(金侁)공은 신라 경순왕의 제4자 은열(殷說) 제15세 손으로 자(字)를 윤직 호(號)를 낙천제(樂天齊)라 하며 고려 고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을 거쳐 원종8년 정묘(丁卯 1267年)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갔다가 원제로부터 정서 대원수의 대임을 받아 만노(萬奴)의 여환(余患)을 제하고 또 강서인주적(江西 鱗州賊)을 토평한 공으로 금자광록대부 용양성참정(金紫光祿大夫 遼陽省參政) 에 제수 되었다. 원종11년 경오(庚午)에 귀국하니 공이 재원시에 국가를 위하여 공헌한바 크므로 공의 고향인 진예현(進禮縣)을 금주(錦州)로 승격하여 금주군(錦州郡: 現錦山)에 봉(封)함으로 본관(本貫)을 금산(錦山)으로 정하였다.
계유(癸酉)에 상장군 평장사(平章事)에 임명되어 하절사(賀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오고 갑술(甲戌)에 좌군사(左軍使)로 중군사 김방경(金方慶)과 왜국정벌 (倭國征伐)에 참전 하였다가 일기도(一岐島)에서 전사(戰死)하니 시호(諡號) 를 충간공(忠簡公)이라 하고 칙명(勅命)으로 사당(황풍사)을 세우고 향사(享祀) 케하여 리명(里名)도 황풍리라 칭한다. 또, 무주 유리에 죽계서원에서 향사를 하고 있다.
충간공(忠簡公) 신(侁)의 맏아들 세유(世宥)는 부원수(副元帥)를
지냈으며, 차남 광유(光宥)는 호조 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하여 가문(家門)의 대(代)를 이었다. 1370년(공민왕 19) 문과(文科)에 급제한 지(摯)는 광유(光宥)의 증손(曾孫)으로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를 거쳐 사의대부(司義大夫)·좌사간(左司諫)을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開國)하자 태종(太宗)이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제수(除授)하여 그를 불렀으나 벼슬
길에 나가지 않고 충절을 지켰다. 한편 선조(宣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희옹(希雍)은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과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냈고, 광해군(光海君) 때 등과한 감(鑑)은 광유의 11세손으로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거쳐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이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와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한 후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곡성(谷城)에서 의병장(義兵將)이 되어 아들 남식(南植)·남억(南億) 형제와 함께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외 인물(人物)로는 남억(南億)의 6세손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지낸 언장(彦章)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언태(彦兌), 좌승지(左承旨) 언익(彦翊)이 유명했고, 언익의 아들 의흥(義興)은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여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평(平 : 언태의 아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대휘(大輝)·인해(仁海)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금산 김씨(錦山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3,268가구, 14,10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충남 금산군 남일면 일원
전북 전주시, 진북면, 진안면 일원
전북 남원군 덕과면 용산리
경남 남해군 남해면, 남면 일원
전북 임실군 지사면 원산리
경남 진양군 진성면 상촌리
전남 곡성군 삼기면 금반리
경남 거창군 거창읍 송정리
▣ 대종회 -
▣ 대종회 - 김신의년대를무렀는데앞글을안보아서금산지명이부여된년도를착각했읍닏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 김윤만 - 여기서는 충렬공과 동 시대인이 은열공 15세손으로 나오고 있군요.
▣ 김항용 -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윤식 - 중요한 단서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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