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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휘하장수들(5) 박지량-함양박씨 판삼사사공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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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9-06 17:55 조회1,9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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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량 [朴之亮 ?~1292]

1271년(원종12) 수로방어사(水路防禦使)로서 경상도를 방비하였으며,
1274년(충렬왕 즉위)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이 일본을 정벌할 때 도독사(都督使) 김방경(金方慶) 휘하의 중군(中軍) 병마지사(兵馬知使)로 참전하여, 쓰시마섬[對馬島]을 공략하고 이키섬[壹岐島]을 쳐서 공을 세워 상장군(上將軍)이 되고, 원나라로부터 무덕장군(武德將軍) 관군천호(管軍千戶)의 벼슬을 받았다. 그 후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 좌익만호(左翼萬戶)를 거쳐 삼사판사(三司判事)에 오르고 동북면 병마사, 경상 ·전라 도순문사(都巡問使)를 역임하고, 1289년(충렬왕15)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합단(哈丹)이 쳐들어오자 좌군만호로서 이천(伊川)에 진을 치고 이를 물리쳐 공을 세웠다.

고려사기록
합단의 침입

 1290년(충렬왕 16) 원나라의 합단(哈丹)이 고려를 침입한 사건.
원나라의 반군(叛軍) 내안(乃顔)의 부장이었던 그는 만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원나라 장수 내만대(乃蠻帶)에게 패하자 방향을 바꾸어 고려의 동북변을 침입하였다.

 고려는 중군만호(中軍萬戶) 정수기(鄭守琪), 좌군만호 박지량(朴之亮), 우군만호 김흔(김방경의 아들)으로 하여금 각각 금기산동(禁忌山洞)·이천현계(伊川縣界)·권가현계(拳縣界)를 지키도록 하는 한편, 원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합단의 무리는 원나라의 쌍성(雙城)을 점령하고 고려의 등주(登州:안변)를 함락하였으며, 이듬해 철령(鐵嶺)을 넘어 교주도(交州道)의 양근(楊根)을 점령하였다.

 이에 왕은 강화로 파란하는 한편으로 원주별초(原州別抄) 소속의 원충갑(元沖甲)이 원주에 들어온 적을 물리쳤다. 원나라도 1만의 군사를 보내 고려를 도왔다. 원주에서 패한 합단의 무리들은 계속 남하하여, 주력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들은 다시 연기에 집결하였다가 고려와 원나라의 연합군의 급습으로 대패하였다. 그들의 기병부대는 다시 전렬을 정비하였으나 한희유(韓希愈)의 추격으로 합단과 아들 노적(老的)은 2,000여 기를 이끌고 북쪽으로 도망하였다. 이로써 1년 6개월 동안의 합단의 침입은 끝나고 9월 왕은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 김주회 - 충렬공 할아버지에 다가가는 새로운 시도! 잘 보고 있습니다. 충렬공 할아버지의 휘하장수 기록이나 문집 가운데 충렬공 할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기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척 기대가 됩니다. 또한 빌어 봅니다.
▣ 김윤식 -
▣ 김상석 - 여말 外勢의 각축장에서 참모들과 군운의 소용돌이 속에 고뇌 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합니다.
▣ 김영윤 - 저의 처가가 함양박씨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그동안 우리 중심으로의 역사 발굴에서 이제 한 단계 진 일보한 차원의 역사 연구를 보여주셨습니다.
▣ 김윤만 - 그렇습니다. 외연을 넓혀나가는 작업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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