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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밭에서 비석발견(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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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3-09-08 01:25 조회1,4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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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212가 있기 1년 전 당시 언론은 시끄러웠다.

현재는 충주댐 건설로 이전한 단양中學校(당시 相錫은 1학년 재학중)의 校舍 뒷산,정상에는 赤城(둘레922m,자연割石으로 포개며 쌓은 內外築夾式임)에서 단국大 박물조사단이 "新羅赤城碑"를 발견 한 것이다.**적성비----높이;93cm,윗너비;107cm,아래너비;53cm

진흥왕6(545년)이전,550년,551년으로 건립시기를 달리 봄(비문의 내용에 열거된

장수와 관등명을 볼 때 <삼국사기>와 당시의 기타 비문으로 유추 했을 때)

현 상태로는 288字와 주변의 발굴을 통해 21字가 수습되어 합309글자가 남아 있고

원래는 직경 2cm 내외의 크기로 新羅式 吏讀文과 한문이 혼용된 음각이며 서체는

남북조의 해서체이며 예서풍이다.

*당시 국보 제198호로 지정되기 전 본인이 확인 하였을 때는 음각도 뚜렷했고 글자의

판독이 건립시기에 비해 온전 하였다.(비각을 세우기 전 방치상태)

*내용 ---이사부,김무력(유신의 祖父)등 신라장수들이 왕명으로 출정하여 당시 고구려

땅이던 적성(지금의 세칭 舊丹陽,본인의 고향인 적성면은 남한강 건너에 있고 現단양

군에 편제 되어 있으나 아마 당시 적성에 세도가가 있어 지금의 赤城面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단양우씨의 중시조 우탁의 탄생지로도 유명하다)을 공략 후 그 지방의

민심을 위해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출신의 也이次와 가족,주변인물들을 포상하

고 위로 할 목적으로 세웠다.

*****발견당시 단양의 D女高 2년의 누이의 단짝 친구(김자옥;가명)가 몇 해 동안 콩,

옥수수,특히 고구마(황토흙임)를 경작하며 늘 보던 돌덩어리라 했으니 아마도 일찍

先賢들이 발견 했다면 추정하는 430字 내외가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

쉬움이 있습니다.*****

***신라가 당시 군사적 요충지인 조령과 이곳 竹嶺을 넘어 이십여리 지나 남한강을

굽어보며 大業을 꿈꾸는 장면을 실감 할 수 있는 발견으로 서거 1년 전 護國에 불타

던 朴統의 의지 인지는 몰라도 매스컴은 시끄러웠고 곧바로 국정교과서에 실렸다.

****공지사항

""금수산(錦繡山;1016m)감골 축제로의 초대""

2003년 10월 18일~19일 양일간에 걸쳐 금수산 인근에서 향토 축제를 여는데 등산과 함께 가을 날 단풍으로 어우러진 남한강과 청풍명월의 고향,월악산 국립공원의 북동쪽 끝자락이며 단양 쪽에서 등반하면 뒤편은 "드라마<태조앙건>의촬영지","<야망>촬영지",특히 우리 할아버지께서 水沒 전 자연을 노래한 현장인 (한벽루)를 비롯한 관아등이 이전 복원된 朝鮮조의 청풍현을 관망 할 수 있다.

국립공원이지만 입장료 없이 등산 할 수 있도록 지시 해 놓았다

*이곳 또한 9시 뉴스<여름무렵>단골로 소개 되는 "얼음골"이 있는데 4월 초 까지 얼음이 얼다가 처서가 지나면 녹는다(현지에선 하양池라 불린다)

*본인도 中3,高 1(당시 단양공고 화공과 한학기 수료 후 자퇴) 2회에 걸쳐 일주일 정도씩 천렵을 하였다.

*선친(1930~1987)께서 어린 시절에는 호랑이가 많았다며 하루는 밭가의 닥나무에 새끼 두마리가 있어 어미나 수컷의 출현이 의심스러워 저녁에는 일찍 귀가를 서둘렀다 하시며 생전에 회고 하셨고,본인의 청년기에도 멧돼지,노루,토끼등은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어 우리집 똥개(당시 犬名YES)는 산에 가서 토끼 잡는게 일이어서 1960~1970代 蠶業,양계,양어를 하면서도 할 수 없이 소꼴을 베며 토끼풀도 베야했다.



********단양팔경**************************************************************************

제1 경---도담삼봉(島潭三峰)--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이 어린 날 청유 하였다 하여 그의 호를 "삼봉"이라하

였고 애국가나 달력(특히 1월분),이발소,제약화사CF배경화면에 많다.

제2 경---석 문(石 門)--마치 무지개 같은 아치형의 풍광이 수려하다.

제3 경---구 담 봉(龜 潭 峰)--퇴계 이황이 물 속에 비친 바위가 마치 거북 무늬를 띠고 있어 "구

담"이라 명 하였다.

*이황의 시에------

碧水丹山界 푸른 물은 단양의 경계를 이루고

淸風明月樓 청풍에는 명월루가 있는데

仙人不可持 지







▣ 김윤만 - 시간을 30-40년 전으로 거스러 오르게 하는 글 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상석 - 첫 줄 1212는 "12.12"사태로 이해,재원형님! 잘 지내시죠?.윤만님 자주 뵙고요,지난 번 부탁하신 턴테이블 만나는 대로 드릴께요.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솔내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단양의 역사 자료 잘 보았습니다.

▣ 김주회 -

▣ 김윤식 - 상석 대부님 글 잘 읽었습니다. 꿈 속 같은 옛날로 갔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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